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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Oct 18. 2018

사람에 치이는 날, 일에 치이는 날

기운 빠지는 그런 날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갑자기 연타를 맞는 것처럼 이렇게 저렇게 치여 유난히 어깨가 처지는 날.

결정적인 한 방을 크게 얻어맞은 것은 아니지만 얕은 잽을 연달아 맞아 괜스레 무너지고 싶은 날.

얕은 잽을 내리꽂는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얕은 잽이라고 하면서도 그 잽에 무너지는 나를 탓하는 것이 맞는지 헷갈리는 그런 날. 내 맷집이 약한 건지, 전적이 길지 않은 경험 부족에서 오는 노련함의 부재 탓인지 (죽자고 버티면 나아지려는지), 그냥 애초에 잘못된 싸움을 택한 것은 아닌지 기본조차 헷갈리는 그런 날 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날 좋아할 수는 없고, 똘아이 질량 보존법칙에 따라 어느 곳에나 균등하게 존재한다는 똘아이 구성원도 잘 다독여 데려가야 하는 입장에서, 내 약한 맷집이 원망스러운 그런 날 말이다. 하필 전날 맞은 잽이 다 낫지 않아 욱신거리는데 연달아 계속 돌아가며 맞는 듯한 날들. 웃으며 대해야 하는 것이 힘든데 잽이 훅훅 들어와 웃는 얼굴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뭐 그런 날들.


내가 하는 일은 마음으로 하는 일이다. 내야 하는 성과도 마음에서 내야 하고, 해야 하는 일들도 마음을 들여서 해야 한다. 마음이 맞는 그 순간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을 주는, 그런 일이다. 항상 내 마음을 열어서 상대를 대해야 하는, 매 순간 상대를 한없이 끌어안기를 노력해야 하는, 뭐 그런 류의 일이다. 그렇다 보니 허점투성이의 싸움이 된다. 공격당할 곳을 최소화해야 하는 경기에서 나는 두 팔을 벌리고 상대에게 다가선다. 동시에 두 팔을 벌리고 마주하는 상대를 만나면 그 순간 그 경기는 서로의 윈윈이 된다. 꼭 껴안을 수 있고, 두 손을 맞잡을 수 있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렇게 마주할 때 무수한 이김을 얻는다.

그러나 두 팔을 벌리고 다가선 내게 상대가 잽을 먹이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뭐 많지는 않지만 간혹 그런 사람들이 있다. 대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다. 아픈 사람이 주는 아픔은 아픔이라기보다는 그의 상처로 보아야 할 텐데, 그래도 아프긴 아프다. 계속 사랑하기를 선택하고, 계속 믿기로 선택하지만, 가끔은 꽤 아프게 훅이 들어와서 내가 고꾸라지는 일도 생긴다. 


말하자면 오늘 같은 날이다.

이렇게 아파서 고꾸라질 것 같은 날은, 마음을 조금 닫아볼까도 생각한다. 애초에 마음이 약한 성정인 내가 이런 통증에 면역이 없는 것이 당연한데, 조금은 나를 보호해보는 것은 어떨까도 생각해본다. 간혹은 나도 모르게 상대에게 주춤거리며 다가서며 내 몸을 보호하는 제스처를 취할 때도 있다. 나를 보호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상대에게 얕은 잽을 여러 번 맞아 이번에도 맞을까 봐 멀찍이 거리를 두는 것이다. 잽이 들어올까 봐 나도 모르게 가드를 올리고 상대를 경계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나 

마음의 온도는 잃고 싶지 않은데.

그 사람들을 느끼지 못하는 순간 내가 이 일을 하는 의미도 사라지는데.


마음의 온도는 잃지 않되, 마음의 강인함을 기를 수는 없을까.

웬만한 쨉이나 훅 정도는 코웃음 치며 넘길 맷집은 기르고, 그들의 눈물 한 방울에 같이 눈물 한 방울 흘릴 녹아있는 마음의 온도를 가질 수는 없을까.


진심과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지난 몇 년간 살펴보니 마음이 다친 사람들은 상처 난 자리에 남아있는 딱지 때문에 진심이 어그러져서 자란다. 상처 입은 나무가 상처 입은 밑동을 피해 옆으로 누워 자라는 것처럼, 예쁘고 곧은 마음으로 자라지 못한다. 그 상처 밑의 여전히 남아있는 순수한 진심을 사랑하며 그 상처를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그 낫지 못한 상처에서 흘러나온 독으로 나를 공격하는 것을 보면, 참 기운 빠진다. 하는 모든 일에 재미가 사라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일러서 이 서운한 마음을 달래 보고도 싶지만, 그런 마음은 꾹 참아본다. 그래도 내가 그러면 안되지. 참아야지.


오늘은 참 일에 치이고 사람에게도 치인, 그런 날이었다.

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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