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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솦 솦 Nov 06. 2018

온도

고양이 아홉 마리를 돌보고 있다.

그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리 되었다.


지난여름에 집 마루 아래에 자리를 잡은 엄마 고양이가 낳은

다섯 마리 꼬물이들을 본 순간부터

그 어린 생명에 반해버렸다.

다섯 마리가 누가 누구랄 것도 없이 뭉쳐 꼬물거리는 모습에

뭔지 모를 것에 대한 경탄을 내뱉으며

그날로 물과 사료로 키우며 그 아이들이 더 잘 클 수 있기를 바라게 되었다.  



엄마 고양이도 아직 냐옹-이라고 울지도 못하는 어린아이였다.

야옹-이 아닌 옹냐-라고 울었다. (그럼 어린 아이라던데)

누가 봐도 몸도 작고 얼굴도 어린, 어린 고양이였는데 

길거리에 살면서 엄마가 된 것 같았다.

'아기가 아기를 낳았네-'하며 그 안쓰러운 엄마가

조금이라도 젖이 더 잘 돌 수 있도록

황태포를 끓여먹이고, 따뜻한 치킨 수프를 끓여 먹였다.


다섯 마리가 무럭무럭 커서 캣초딩이 되던 무렵에는

두 마리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고,

한 마리는 새벽에 차에 치여 바로 집 앞 길에서 발견됐다.

밤까지 마루로 돌아오지 않던 그 녀석이 걱정이 되어 

새벽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길을 내다보았더니 아이가 덩그렇게 길에 누워있었다.

슬리퍼를 앞뒤 가리지도 못하고 끌다시피 달려 나가 안아보니 이미 몸은 굳었고,

아이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75불을 내고 아이를 화장했다. 예쁜 통에 담기고 부드러운 벨벳 천에 쌓여서 아이가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남은 두 아이는 그렇게 위험하게 살게 하고싶지 않아

집 안에서 키우기로 했다.

길거리에서 태어나 길거리 엄마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그래도 집안을 무서워하지 않고,

이제는 팔을 베고 잠을 청한다.

 

생전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내가 키우다 보니

한 달 만에 비만 고양이가 되었길래 

오늘부터 둘은 (그리고 나도)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그리고 엄마 냐옹이는 그새 여섯 마리의 새끼를 또 낳았다.

어제는 처음으로 영하로 온도가 내려갔는데-

여섯 마리의 또 다른 꼬물거리는 생명이 있는 걸 확인하자마자

생명을 감사하기는커녕 걱정과 부담이 앞선다.


그래도 생명인데-

겨울은 넘길 수 있게 도와줘야겠다 싶어

야외용 고양이 집을 사서 방석을 깔아서 넣어주고, 

아침저녁으로 엄마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를 밥을 준다.


어제는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셌다. 

이 영하의 날씨에 저 어린 생명이 어떻게 버티지, 하며 걱정하지만, 

오늘 낮에 보니 꼬물이들은 마치 오월이 봄볕 인양 11월의 인색한 햇빛 틈으로

바싹 마른 겨울 가지를 시소인 양 양쪽에서 타고 논다.

마치 내 모든 걱정이 괜한 것인 양 무안할 만큼 꼬물이들은 행복해 보인다.


맘씨 좋은 옆집 할아버지가 새끼 고양이를 보고 자기 창고에서 겨울을 보내게 해 주시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할아버지, 잡히지가 않아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그저 손사래를 치고 돌아서는 할아버지.

꼬물이들은 우리가 이런 대화를 하는 줄이나 알까.


존재와 존재 간의 온도.

꼬물거리는 몸짓에서 느껴지는 충만한 온도,

가물거리는 눈을 내리깔며 내 팔을 베고 눕는,

이제 집고양이 한 달째인, 곧 비만 예정 고양이의 온도,

길고양이를 걱정하는 할아버지의 웃음의 온도,

11월의 이른 아침 차가운 공기에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치킨수프의 온도.


'내년 봄이면 아이들이 충분히 클 테니까 그때가선 사료도 주지 말아야지-' 혼자 다짐을 한다.

못 지킬 다짐인 줄 내가 먼저 안다.


존재가 다른 존재를 걱정하는 그 마음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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