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싸움은 전부 널 위해서였다

<사마에게, 2019>

by 떠돌이별

어떤 싸움에는 때로 패자만 남는다. 무너진 도시, 잊혀진 사람들, 빼앗긴 미래, 폐허가 된 마음을 뒤로한 채.

영화 <사마에게>는 시리아의 동알레포가 포위된 2016년 6월부터 모든 주민들이 철수한 12월까지 6개월의 기록을 담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민간인들이 남은 도시 전체를 포위하고 공격한 것이다.


사람들은 피난길에 오르고 도시는 텅텅 비었지만 그곳엔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저널리스트인 와드는 이 도시에 남기로 택한 사람들 중 하나이다. 알레포의 마지막 병원을 지키기 위해 남은 의사 함자와 함께 "인사이드 알레포"라는 채널을 통해 알레포에서 일어나는 참상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기로 한다.


기록하고 사람을 살리는 것, 이것이 그들의 투쟁이다.


와드는 이 파괴된 도시에서도 사랑에 빠지고 꿈을 꾸며 아이를 낳는다. 사마. 와드는 카메라 앞에서 불안함과 행복을 말한다. 이런 세상에서 사마를 태어나게 한 것을 미안해 한다. 폭격으로 아이를 두고 죽은 엄마를 보며 아이를 묻을 필요 없이 죽어버린 것이 차라리 부럽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마의 탄생은 부부가 지옥에서 건져낸 희망이자, 이 곳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가 된다.


와드의 일기와 같은 이 자전적인 다큐멘터리 필름에는 모든 일상의 순간, 사람들의 삶이 날 것으로 담겨있다. 무고한 죽음과 남겨진 사람들의 비애를 그대로 보여준다.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은 내가 그러했듯 참을 수 없는 슬픔과 공포, 분노를 경험했을 것이다. 가장 고통스럽고 외면하고 싶은 지점은 그 모든 것이 정제되지 않은 '실제 일어났던 일'이기 때문이다.


강으로 떠내려 오는 고문당한 시체들, 폭격으로 동료들을 잃은 사람들의 표정, 주검이 된 작은 손과 작은 발, 죽은 동생의 시신을 끌어안고 눈물 흘리며 입맞추는 소년들, 폭격소리와 흔들리는 화면, 죽을 것이라고 확신하던 순간들,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절규...


이 영상물이 빈곤 포르노로 소비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카메라를 든 사람이 알레포의 비극에 맞서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찍어달라 외치는 자들의 비통함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거기에 있었기에 6・25를 증언할 책무가 있었다는 박완서 작가의 말처럼, 와드의 증언을 통해 우리는 지옥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고결한 눈빛을 본다. 그리고 그녀가 찍은 사람들은 영원히 필름 위에 남아 증언한다. 무엇을 위해 전쟁이 있느냐고. 이 상처와 희생이 대체 무슨 의미이냐고.


그리고 삶을 여전히 삶이게 하는 건 희망의 순간들 때문이다.


무너진 건물 틈으로 건져올린 생명, 폭탄으로 불타버린 버스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물자가 끊긴 가운데 발견한 감 한 알, 폭격으로 실려온 산모의 몸에서 꺼낸 아이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을 때, 살아남은 모든 숨결들과 잊혀지지 않은 모든 기억들.


우리가 자라나고 사람들을 만나며 사랑했던 공간은 우리의 정체성과 육체의 일부가 된다. 때문에 도시는 단순히 지리적 위치나 국가영토의 개념이 아니라 안식처의 표상이자 그 자체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떠나가고 땅이 파괴될 때, 우리는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과 상실을 맛본다.


이 부부에게 알레포는 꿈을 꾸고, 정의를 위해 연대하며, 사마를 낳고, 삶의 뿌리를 내린 터전이다. 그래서 이들이 남기로 한 결정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사마가 살아갈 앞으로의 세계를 위한 투쟁이 된다.


시리아 내전은 올해로 9년 째 끝나지 않고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와 난민을 낸 최악의 전쟁 중 하나이다.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북아프리카 및 중동 지역에서 민주화 운동을 촉발했고, 이 영향으로 시리아에서도 아사드 정권에 장기독재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개되었다. 그리고 2011년 담벼락에 혁명 구호를 쓴 13세 소년을 정부가 고문치사한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민주화 운동이 퍼져나가게 된다. 정부군과 시민군의 분쟁이었던 초기 내전은,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개입, IS 문제, 급기야는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 양상으로 사실상 국제전으로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이렇듯 시리아는 이제 무엇을 위해 싸우며 결과가 어떻게 될 지, 어느 누구도 함부로 정의내리기 어려운 지리멸렬한 교착상태에 이르렀다. 국제사회는 장기화된 시리아 사태에 지쳤으며 주변국 역시 끊임없이 넘어오는 난민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이토록 많은 상처가 세상으로 쏟아져 나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시리아라는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는 <사마에게>를 본 우리에게 남겨진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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