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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Sep 02. 2018

그래도 멘토는 바흐다...

바흐 뒤에 숨다



https://youtu.be/9vsaDIs_1-I

바흐:교회칸타타 147번 “마음과 입과 행동과 생명으로”
톤 쿠프만,지휘/암스테르담 바로크 오케스트라&합창단

그 어떤 것도 고철덩어리로 만들어버리는 교과서의 위력

 솔직하게 고백하건데, 나는 학창시절 음악 교과서에 나오던 “음악의 아버지 바흐”따위의 표현에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 워딩을 부정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외우기 좋게 표현된 이런 류의 워딩이 내게 주는 느낌은 말 그대로 주입식 교육의 오마쥬였기 때문이다. 바흐라는 위대한 인물을 이렇게 무미건조한 한두 단어로 표현해 버리다니! 제아무리 예술적이고 영적인 어떤 것도 교과서라는 텍스트 안에 들어가버리면 여지없이 습기와 온기라곤 1도 없는 고철덩어리가 되고 마니, 이것 또한 참으로 불가사의한 매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바흐는 the great요, 멘토다
 이와는 별개로, 바흐의 위대함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교과서의 딱딱한 워딩으로 말미암아 주입된 팩트가 아닌, 진정 가슴 한가운데에서 느껴지는 위대함 말이다. 그것은 3D 서라운드 화면처럼 입체적으로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온다. 바흐의 위대함을 자세히 논하자면 며칠 밤은 꼬박 새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심플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어 몇 개를 찾는 것이 훨씬 낫다. 나는 바흐의 위대함을 정의하는 간단한 단어를 딱 두 개 설정했다. “The great”와 “mentor”다. 개인적으로는 후자 “멘토”가 더 맘에 든다. 서양음악이 일시에 다 불타 없어진다고 해도 평균율 48곡만 남아 있다면 충분히 모든 음악의 복원이 가능하다는 그 마르고 닳도록 듣던 문장, 이 선에서 모두 정리되는 것이다.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바, 모든 서양음악의 멘토는 바흐 아니겠는가.


바흐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경지를 넘어...
 이 정도로도 이미 바흐를 가슴으로 흡수할 필요조건은 됐다고 생각했다. 바흐라는 이 위대한 인물은 이 정도의 깨달음만으로도 수없는 몰아일체의 경험을 선사했으니까. 그런데 여기 내가 정말 소중히 여기는 동료 한 사람이 어느 날 나의 바흐관에 부드럽지만 강력한 위력을 가진 감성을 추가로 불어 넣었다. “바흐 뒤에 숨다”. 이 얼마나 감성을 붙들어매는 문장인가. 난 이 문장을 처음 들었을 때 거의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나 느낄 수 있는 감성이 가슴속으로 확 몰려 들어왔다.

 마치 영어 단어를 외우는 학생처럼 혼자서 몇 번이고 “바흐 뒤에 숨다”를 되뇌었다. 곱씹을수록 너무나 낭만적이고 감성적이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음악의 아버지 바흐”라는 문장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던 내가 “바흐 뒤에 숨다”는 문장에 온 마음을 다 뺏겼다. 고백건데 저 워딩을 동료에게서 접한 뒤 들은 바흐의 감동이란 차원 자체가 달랐다. 그런데 실제로 두 문장의 뜻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바흐는 위대하다는 사실 말이다. 이 감성 가득한 멋진 문장을 표현했던 그 동료에게 소정의 저작권료를 지불하고서라도 내 표현으로 만들고 싶은 심정이다! 흐름상 이상할 수도 있지만 당연한 결론을 내고자 한다. “어쨌든 바흐는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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