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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Sep 02. 2018

그래도 나는 Goodbye보단 So long을 소망한다

멘델스존 현사 6번,그리고 베토벤 고별소나타



https://youtu.be/I9LvDatOFyw

멘델스존:현악 4중주 6번 f단조 op.80
에머슨 스트링 쿼텟

So long이 주는 강력한 여운
 시계를 좀 많이 거꾸로 돌려 2002 한일 월드컵을 소환해 보자. 여태껏 월드컵 본선에서 1승도 하지 못했던, 어쩌면 한국축구의 씻기 어려운 트라우마일지도 모르던 그 괴물 같은 징크스가 한 네덜란드인 히딩크 감독에 의해 거짓말처럼 깨졌다. 감격적인 1승을 드디어 거둔 그 이후에 축구대표팀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이라는 전통의 강팀들이 신바람을 탄 대한민국 대표팀의 거센 기세에 줄줄이 나가떨어졌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월드컵 4강신화를 이룬 히딩크 감독은 문자 그대로 열렬한 박수를 받으며 한국을 떠났다. 히딩크 감독은 떠나면서 짙은 여운을 남기며 이렇게 말했다.
“Goodbye가 아닌, so long이기를 바란다”

 만나면 헤어짐이 있고, 헤어지면 또 만남이 있다. 세상은 그렇게 돌고 돈다. 그런데 또 헤어지면 영영 못 만날 인연도 안타깝지만 존재한다. 어느 한 쪽이 세상을 떠남으로써 헤어지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사소한 오해 따위로 갈라서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그리 느끼는 소망이리라. 지금 현재, 안타까운 결별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멘델스존 현사 6번을 이야기해 본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작별에 울부짖다
 멘델스존 현사 6번은 이미 작곡자 자신이 “파니(멘델스존의 누나)를 위한 레퀴엠”이라 명명했다. 여기서 잠시 그 때를 짚고 넘어가보자. 전날까지 아무런 이상한 시그널을 느끼지도 못하던 파니는 갑자기 죽음을 맞게 된다. 사인은 고혈압에 의한 뇌졸중. 파니는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랐고 결혼도 잘 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던 여인이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부잣집에는 매우 가부장적인 아버지가 존재하기 마련. 동생을 능가한다고 할 정도의 음악적 재능을 가진 그녀였지만 아버지는 딸에게 순종적인 현모양처로 성장하기를 요구했다. 그런 아버지를 거역할 수 없던 착한 딸 파니는 아버지의 요구대로 살았다. 그러던 도중 아버지가 사망했다. 아버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된 파니는 비로소 자신의 공개 연주회를 의욕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날벼락 같은 죽음을 맞은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동생 멘델스존은 충격을 크게 받았다. 이 두 오누이의 서로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는데(일설에는 이 두 남매가 서로를 이성으로 봤다는 가설도 꽤나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누나가 42세의 젊은 나이로 뜬금없이 가버렸으니, 멘델스존은 몸을 가누기 힘들 만큼 그로기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고 네 명 현악기 주자가 활로 처절하게 울부짖는 이 곡을 쓰기 시작했다.

 첫 소절부터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슬프고 혼란스럽다. 엄격하기만 했던 아버지 밑에서 서로를 위로하고 끌어주고 밀어줬던 지난 수십 년의 애틋한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하다. 비록 가설에 불과하지만, 친남매의 어떤 애틋한 감정의 선을 넘어버린 격정적인 감정들도 포르티시모와 격한 리듬을 타고 절절하게 전해져 온다. 내게 이 격정은 어찌 다가오는가 생각해 본다. 사실 나는 외동이라 이것과 똑같은 일은 겪을 소지가 없다. 그래도 프레이징 하나하나에 감정이 이입된다. 최근에 10년지기 같은 친구를 잃은 듯한 그 감정으로 들어간다. 그러니 매치가 된다.

Goodbye라 단정짓지 말고, So long이라 믿자
 그러나 마음을 고쳐 먹어 본다. 나의 상황은 앞서 언급한 10년지기 친구를 죽음으로써 잃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 살아 있는 이상, 재회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비록 그 확률이 낮을지라도, 적어도 0퍼센트로 갈 일은 없겠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또 하나의 곡을 소환해본다. 베토벤 고별 소나타다.

https://youtu.be/Z26dfRI9rqg

베토벤:피아노 소나타 26번 Eb장조 op.81 “고별”
알프레드 브렌델, 피아노

 32곡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들 가운데 작곡자 자신이 제목을 붙인 유이한(다른 한 곡은 비창) 곡 중 하나. 절대음악 신봉자였던 베토벤이 직접 제목을 붙였다는 건 베토벤이 이 음악을 통해 하고픈 이야기가 뚜렷했기 때문이리라. 베토벤의 절친이자 충실한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은 빈에 전쟁이 터지자 피난을 가게 된다. 루돌프 대공을 많이 의지했던 베토벤은 그가 빈을 떠나자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니,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루돌프 대공은 전쟁통에 피난을 가는 것이다. 까딱 잘못하면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다. 이 와중에 베토벤은 전쟁통인 빈에 남아 있었다. 충분히 자신도 피난을 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신은 포탄이 난무하는 빈을 지키고 있을 테니, 꼭 무사히 살아 돌아오라는 무언의 당부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나타에 나타나는 정서는 절절하게 슬프지는 않다. 비록 아쉬움은 짙게 나타나지만 담담함을 유지한다. 베토벤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을까. 전쟁이 끝나고 베토벤과 루돌프 대공은 드디어 재회한다. 그 뛸 듯한 기쁨이 3악장에 생생히 나타나며 음악은 찬란한 해피앤딩으로 마무리된다.

 서로의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감성이 거리낌없이 오고 갔던 10년지기 같던 한 친구. 비록 지금은 어떠한 이유로 인해 상당히 소원해져 있지만, 나는 소망한다. 그리고 믿는다. 둘 다 시퍼렇게 살아있는 한 다시 만나 하하호호 웃을 날이 올 것임을. 그 순간을 기대하며, 감사함으로 살아 보자. 어차피 둘 모두 건강히 살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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