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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Sep 03. 2018

클라라, 당신은 대체 어떤 여자야?

오직 두 남자만의 뮤즈


눈이라는 하드웨어를 고장내는 원흉(?)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하는 연인의 존재는 수많은 예술품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다. 단순히 남녀의 사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이 예술품이 되는 체험. 하다못해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시 한 수만 나와도 선생님 눈 피해 꾸벅꾸벅 졸기 바쁘던 감성 둔감한 사람이라도, 일단 사랑을 체험하는 순간만큼은 이미 죽은 하이네를 소환할 기세가 된다. 그 감정이 끝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갈지라도!
https://youtu.be/BTghQEzMEqw

클라라 슈만: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로망스 op.22

클라라 주미 강,바이올린

손열음, 피아노


 사실 아무리 상대에게 이성으로 보여도 그(그녀)도 제3자가 보기엔 그냥 또 한 명의 남자이거나 여자다. 이게 당사자에게도 있는 그대로 보이면 얼마나 속이 편할까? 그러나 그 두 명의 당사자의 눈은 이미 서로를 향해서라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한다. 자동차의 소프트웨어가 잘못되어버리면 기계적으로 아무리 잘 만들어도 늘 고장이 나서 정비소를 밥먹듯 들락거리듯이, 사람의 소프트웨어도 그렇다. 가슴이 명령하는 세팅값 자체가 바뀌어버린다.


늘 혼자였기에 더 소중했던 슈만
 클라라(슈만의 부인)은 그런 여인이었다. 남편 슈만과 그의 제자 브람스를 평생토록 속앓이하게 만든 이 여인. 초상화를 보자. 예쁘다. 남자들이 좋아할 만하다. 그런데 이 여인이 마치 조선시대의 기생들처럼 남자의 마음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갖고 노는 끼있는 여인이었을까? 일말의 의심도 없이 확신컨데 그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반대였다. 클라라는 철저하게 어렸을 때부터 만들어진 연주기계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 피아노 연습을 거의 두문불출하다시피 했다고 전해지고, 따라서 세상 물정을 알 길이 없었다. 바깥 세상 돌아가는 것 전해 주는 이는 자신의 아버지의 제자의 신분으로 자신의 집에 드나드는, 미래의 남편 슈만이 거의 유일했다.

 피아니스트란 모름지기 혼자에 익숙해야 하는 것이 숙명이다. 그런데 그 외로움을 옆에서 달래 주는 사람은 늘 슈만이었다. 클라라의 마음은 슈만에게만큼은 자동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건 슈만도 마찬가지였다. 극히 예민한 감성을 갖고 있어 누구에게도 자신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었던 슈만은 클라라와 보내는 시간이 쌓여 가면서 드디어 감정이 폭발하고 말았다. 서로 뜨겁게 사랑하게 되었지만, 이번엔 예비 장인 비크의 반대에 부딪혔다. 가슴이 제대로 폭발한 슈만은 법정 소송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맞불을 놓은 끝에 그 두 사람은 결국 화촉을 밝혔다.

부족한 2%를 채워주는 브람스의 등장


 하지만 클라라에게 있어 슈만은 좋은 남편은 되지 못했다. 너무나 예민한 성격 때문에 사회생활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생활력이 없는 사람이 슈만이었다. 그런데 그들 둘 사이에는 무려 7남매가 탄생했다.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했다. 이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나타난 사람이 남편의 제자 브람스. 브람스는 남편과는 달랐다. 남편처럼 감성은 풍부했지만 브람스는 겉으로는 잘 정돈되어 있었고 헌신적이면서 현실적인 면도 있었다.

 20대 초반의 브람스는 스승 슈만의 아내 클라라에게 연정을 강하게 느꼈다. 하지만 금지된 사랑이었다. 사랑의 대상이 하필이면 스승의 아내라니, 무슨 얄궂은 운명인가. 하지만 브람스는 슈만 집안의 집사를 스스로 자처하며 그 마음을 조금씩 표현해 갔다. 스승 부부의 자녀들을 부모처럼, 형처럼, 오빠처럼 헌신적으로 돌봐줬고 집안의 모든 대소사들을 매끄럽게 처리하며 생계를 위해 열심히 연주여행을 다녀야 했던 클라라의 공백을 완벽하게 메웠다. 모름지기 여자는 특히 나이를 먹어갈수록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채워주는 사람에게 끌리는 법. 이 정황을 봤을 때, 비록 정확하고 자세한 것은 현재 무덤에 있는 당사자들만이 알겠지만 브람스가 클라라를 사랑하는 마음보다 반대의 그것이 훨씬 더 컸으리라고 짐작된다.

멀리하고 싶지만 가깝기를 원했던 존재

 슈만이 사망한 후, 본격적으로 자신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브람스. 그러나 클라라는 밀어낼 수밖에 없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못했다. 관계는 계속 유지되어 갔다. 어찌 됐건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음악적 동료였다. 브람스는 새로운 곡을 쓰면 언제나 클라라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곤 했다. 브람스의 음악에 언제나 나타나는 가슴 찡한 아련함은 클라라만을 가슴속에 타임캡슐처럼 숨겨두고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브람스의 오마쥬였으리라. 두 사람은 음으로 양으로 이미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1896년, 클라라는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듬해, 충격을 받은 브람스도 클라라를 따라가고 말았다. 브람스가 클라라의 사망에 얼마나 상심했는지는 그의 말기작 “4개의 엄숙한 노래”가 말해준다. 원래 가곡이지만, 다닐 샤프란이 첼로로 편곡한 버전을 들어보면 그 충격이 더욱 실감난다.
https://youtu.be/QR4kMNk2E24

브람스:4개의 엄숙한 노래 op.121

다닐 샤프란,첼로

안톤 긴즈버그,피아노


그녀의 팔자는 오직 두 남자의 뮤즈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클라라와 슈만, 브람스의 관계를 역추적해 보면, 클라라는 남자를 홀리는 팜므파탈이 절대 아니었다. 다만,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저 두 거목에게만큼은 음악적 영감의 원천이 된 뮤즈였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어떻게 보면 슈만이기에, 브람스이기에 클라라가 주는 영적인 포스를 감당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다른 남자라면? 솔직히 어림도 없다. 클라라의 팔자란 오직 슈만, 브람스 이 두

남자만의 뮤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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