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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Sep 01. 2018

끝없는 발걸음이 지쳐갈 때쯤-슈베르트 3개의 소품

조급한 한 젊은이의 처절한 절규



https://youtu.be/86CNMb6J7Iw

슈베르트:3개의 피아노 소품 D.946

마우리치오 폴리니, 피아노


언제나 꿋꿋이 걷는 슈베르트
 슈베르트는 음악을 듣다 보면 끊임없이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발바쁘게 뛰지도 않고 교통수단의 힘을 빌리지도 않는다. 그저 방랑자처럼 걸을 뿐이다. 걸어가다 깔딱고개를 만난다 한들 가쁜 쉼을 몰아쉬거나 잠시 멈출 뿐 꿋꿋이 가던 길 계속 간다. 그런데 그 발걸음은 계획적이지는 않다. 만나는 모든 것들-식물이든 동물이든-과 늘 대화한다. 그러니 중간에 삼천포로 빠지기 일쑤. 그러나 슈베르트는 음악 안에서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끝까지 간다.

지친 슈베르트의 조급한 절규
 그런데 슈베르트의 말기 작품에 속하는 이 3개의 피아노 소품들에서는 느껴지는 게 좀 다르다. 어떻게든 끝까지 가던 ‘가늘고 긴’의지력에 조금씩 균열이 가는 그림이 희미하게나마 포착된다. 그 균열은 음악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노후된 건물에서 진행되는 그것처럼 틈이 더 벌어져간다. 첫곡, 극히 빠른 템포로 어지러이 돌아가는 왼손의 셋잇단음표 로테이션 위로 형언할 수 없는 조금함의 감정이 가슴을 서서히 옥죄어온다. 평소 알고 있던 슈베르트의 정서와 분명 확연히 다른 생경하기 짝이 없는 조급함은 듣는 이의 심장박동수를 한껏 올려놓는다. 이러다가 잠시 이완한다. 그런데 속편하게 쉬는 느낌의 이완이 아니다. 단지 강박적으로 나타나던 슈베르트답지 않은 조금함이 배후로 숨어들어간 것 뿐이다. 두 번째 곡은 한결 평온하게 시작하지만 뱃노래를 상징하는 6/8박자의 박자표를 취하면서 마치 너울성 파도가 치는 바다를 쪽배 한 척에 의지해 건너가는 듯한 불안감도 아울러 느낄 수 있다. 이것이 아예 슈퍼태풍의 전야였던 것인가? 음악이 Eb장조에서 c단조로 바뀌며 뜬금없이 풍랑주의보가 발효된다. 이렇게 위태롭게 이어져가던 음악 한가운데에서, 슈베르트는 갑자기 당황스러울 정도의 신파조에 가까운 악상을 등장시키면서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음악을 끌고 가버린다. 이정도 되면 음악에 몰입하기도 전에 뇌의 적응 기능에 버퍼링이 뜨는 체험을 하게 된다. 이어지는 세 번째 곡이야말로 혼란의 절정이다. C장조의 밝은 악상을 취했는데, 초반부터 싱코페이션이 난무하며 불안한 마감으로 치달아 간다. 뭔가 급하게 끝내고 싶다는 눈치다. 원래 슈베르트는 이 세트를 네 곡으로 계획했었다고 하는데, 결국 출판된 건 세 곡이다. 미완성인 것이다. 슈베르트의 저 유명한 “미완성 교향곡”과는 느낌이 다르다. 미완성 교향곡이야 슈베르트가 본래 두 악장만으로 완성된 것으로 간주했다는 썰도 있지만, 이 피아노 소품의 세 번째 곡은 뭔가 빨리 끝내고 싶어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마치 시청률 안 나오는 드라마의 담당 PD가 극의 진행을 억지로 빨리 시켜놓고 종영하려는 것처럼.

시시각각 다가오는 그의 최후
 지금의 슈베르트는 무한한 추앙을 받고 있지만, 그가 생존한 당시에는 인생 대부분을 인정받지 못한 채 살다가 말년에 가서야 겨우 대가들에게 인정을 받은 대기만성형 인물이었다. 이제 자신의 이상을 펼칠 만하니 건강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그 본인도 얼마나 초조했으랴. 자신의 인생의 봄날만을 기대하며 외로워도 슬퍼도 꿋꿋이 버텨온 슈베르트. 그러나 그의 봄은 짧았다. 보통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모든 것에 달관하기 마련인데,  이 때의 슈베르트는 자신의 코앞에 온 죽음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젊었다는 게 안타깝다. 하염없이 걸어왔던 지난 날이 너무 아깝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갈 때 가더라도 뭔가를 크게 보여주길 원했던 슈베르트의 조급한 마음이 귀를 거쳐 너무도 절절하게 심장의 정중앙을 꿰뚫으면서, 그의 지친 두 발에서 나오는 회한어린 발걸음의 구둣발 소리가 음성지원이 되는 듯 뚜렷하게 내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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