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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Sep 01. 2018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 베토벤 현사 15번

몸만 움직일 수 있어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하다

https://youtu.be/kiVbMB6iLPc

베토벤:현악 4중주 15번 a단조 op.132

알반 베르크 콰르텟



강철 의지의 사나이 베토벤을 쓰러뜨린 병마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 할정도의 꼬인 상황이 오면 일단 속된 말로 “멘붕”이 온다. 뭐 이런 상황은 크고 작음의 문제지 항상 있다. 사실 작은 건 힘들어하다가도 대개는 액땜이려니 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렸다거나, 죽을 병에 걸렸다거나, 실연이나 이혼을 경험한 경우에는 얘기가 다르다. 말 그대로 심판주인 절대자를 알현하기 일보 직전까지 가는 상황이 오면 남은 인생은 완전히 새 사람이 된다.

 나는 지금 베토벤의 후기현사에 속하는 현악 4중주 15번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곡을 논하는 데 있어 현학적인 접근은 전혀 필요가 없다. 앞서 언급한 저 벼랑 끝의 상황만 상상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다. 베토벤의 말년은 그야말로 무슨 짓을 해도 꼬이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귀는 완전히 멀었지, 건강상태는 걸어다니는 종합병원 수준이지, 설상가상으로 법정 투쟁 끝에 빼앗다시피 양육권을 가져온 조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를 치고 다니지... 이런 꼬이고 꼬이는 상황이 누적되다 보니 제 아무리 강철멘탈인 베토벤도 결국 자리 깔고 누워버리게 된다.



펜대 굴릴 힘만 남아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하다
 잠시 시간을 그때 당시로 돌려보자. 이 곡의 1,2악장을 쓴 다음 베토벤은 병석에 눕고, 작곡은 당연히 중단되었다. 그러다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렇다고 해서 늙은 베토벤이 건강이 씻은 듯이 나은 건 아니었다. 그저 작곡할 펜대 굴릴 정도 힘만 남아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어쨌든 베토벤은 즉각 작업을 재개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3악장에 감동적인 신을 향한 찬미를 삽입했다. 베토벤 하면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전투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 베토벤은 펜을 다시 들 수 있음에 감사했던 것이다. 비록 온 몸은 다 죽어가고 있었을지언정!

 이건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감사하는 자세다. 신을 향한 찬미가 감동적으로 엮어지는 동안, 음악의 불순물은 1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마치 열목어가 서식하는 내린천의 1급수 물처럼, 지극히 투명하고 순수한 음률만이 귀로 들어와 마음을 씻어낸다. 이 곡 안에서의 베토벤은 누구보다 순수하고 솔직해진다. 겁나서 숨기는 행위 따위는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실로 종교적인 체험이다.
 

바다를 건널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다.
 베토벤이 말년에 겪은 고초에 비하면 비록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도 최근에 심장 한가운데가 텅 비는 듯한 상실감을 느낀 바 있었다. 이 심란함을 극복하고자, 예정에도 없던 북해도 여행을 급히 갔다왔다. 이 여행은 정말 쉽지 않았다.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웠다. 그러나 북해도의 청정 자연 아래 호흡하며 깨달았다. 그 몸도 못 가눌 것 같았던 심한 상실감 가운데서도 여행 갈 계획과 실천을 바로 실행에 옮길 힘과 결단력이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데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그 깨달음의 줄기를 타고 베토벤 현사 15번은 신께 드리는 감사의 길로 나를 인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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