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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Sep 15. 2018

여러 감정들의 티키타카, 슈만 유모레스크

있는 그대로의 슈만의 마음

https://youtu.be/JCJ8atkdIIk

슈만:유모레스크 op.20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슈만이 말하는 감정 사용설명서
 인간의 뇌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은 수천억을 호가하는 슈퍼컴퓨터보다도 훨씬 많다고 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일상적으로 컴퓨터의 도움을 받는다. 아니, 그러다 못해 스마트폰 같은 it기기의 노예처럼 살아가기도 한다. 나는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 박사가 아니라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다만 유추는 가능하다. 인간의 뇌를 통해 출력되는 정보는 마음과 감정이 개입되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은 때로는 객관적으로도 잘못된 결과물이 나오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 관계상의 감정 상함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는 건 참 힘든 건가 보다. 우리네 일상에서 답답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보이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슈만 유모레스크는 그런 면에서 아주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곡이다. 이 꽤나 긴 대곡은 슈만의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충돌했던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의 병치 구도로 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실로 다양한 감정이 솔직하게 다 드러난다. 이 곡을 듣거나 실제로 쳐보면 나는 매번 놀라곤 한다. 음악이란 언어를 가지고 뽑아내는 인간의 감성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사실에! 그렇다고 막 게워내듯이 중구난방인 것도 아니다. 한때 세계축구의 전술을 선두에서 이끌었던, 수많은 짧은 패스로 아기자기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티키타카 전술을 보는 것처럼 그 수많은 감정들이 아기자기하게 패스하듯 오고 간다. 비유를 하나만 더 해보자. 하이네, 괴테, 쉴러의 각기 다른 느낌을 가진 여러 개의 명시들을 어떤 걸출한 작가가 하나의 스토리로 묶고 연결시켜 재구성해놓았는데, 그것이 하나의 또 다른 걸작이 된 느낌이랄까?

청운의 꿈을 안고 빈에 입성한 한 청년의 일기장
 이 곡이 이런 성격을 가지고 있는 데는 작곡 당시의 슈만의 환경이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슈만은 이 때 빈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것이 가장 중요한 단서다. 빈이라는 도시는 예나 지금이나 “음악인의 파라다이스”다. 음악가로서 대성하려는 청운의 꿈을 안고 입성한 빈이라는 도시가 슈만에게 주는 자극은 하루가 달랐다. 그러나 그 마음의 배후에서는 떨어져 있는 클라라를 향한 그리움, 자신의 불안한 미래를 두고 느끼는 조바심 따위의 감정들이 늘 세트로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 감정들이 이 곡 안에 모두 녹아있다. 이런 걸로 봐서, 문자가 아닌 음표로 쓰인 슈만의 일기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산발적인 감정의 조각들이 통일성을 가지고 있는 틀 안에서 오밀조밀 왔다갔다하는 그 느낌은 바로 초등학생들이 방학숙제로 쓰는 일기장의 그것과도 같지 않을까?

솔직함은 최고의 매력이다
거듭 언급했지만, 슈만 유모레스크는 참으로 다양한 감정이 절묘하게 교차한다. 마치 간선 고속도로가 서너 개 교차하는 분기점처럼. 그런데 감정의 무게중심은 밝음보다는 어두움, 슬픔 쪽에 미세하게나마 쏠려 있다. 이것을 슈만도 직접 이야기한 바 있다. “웃음보다 눈물이 담긴 음악”이라고. 이건 슈만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뜻도 된다. 자. 이 하나의 음악을 사람에 비유해보자. 이렇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사람은 정말 매력적이다. 이런 내면의 이야기들을 적당한 수사법을 쓰면서 재미있게 풀어내는 사람이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으랴. 나는 학교에서 이 곡의 스토리가 딱 연상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조금 친해진 뒤에 이렇게 말했다. “Xx씨, 슈만 유모레스크 쳐 봐요. 왠지 딱 어울릴 것 같아” 그런데 얼마 뒤 레슨에 들어갔더니 교수님이 진짜로 이 곡을 내주더란다. 요즘 유행하는 키워드 “소확행”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곡 안에도 “소확행”은 상당부분 녹아 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녹아 있는 이 곡 안에 “소확행”또한 빠질 수 없지 않겠는가?

 피아니스트 김다솔 씨는 개인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마다 이 곡을 연습실에서 혼자서 치며 위로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제 그게 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내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슈만이 유모레스크를 통해 보여준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마음에 대한 현미경 같은 직면이었다. 그 행위가 지금의 내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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