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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Sep 13. 2018

물과 기름의 꿀케미, 쇼팽과 조르주 상드

사랑은 쇼팽처럼!

https://youtu.be/pCx5g4FnAXU

쇼팽:빗방울 전주곡

조성진,피아노


동갑내기 두 로맨티스트의 상반된 러브스토리
 슈만과 클라라의 러브스토리만큼이나 많이 회자됐고, 호사가들의 멋진 안주거리가 됐던 쇼팽과 조르주 상드 커플. 그런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저 두 커플의 에피소드들을 모아서 살펴보면 참 평범하지만 본질적인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냥 성격대로 연애하고 결혼한다는 거다. 좀더 세부적으로 논해보자. 슈만은 몽상가 기질이 강했고, 쇼팽은 감성적으로는 슈만과 유사했지만 어느 정도의 사회성은 지니고 있으면서 상당히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면도 있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슈만과 클라라의 러브스토리는 박진감 있고 극적이지만 현실성이 결여된 맛이 있고, 쇼팽과 상드의 그것은 생각보다 극적이지는 않지만 의외로 현실적이고 현명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 중에서 핵심 중 핵심은 비슷한 부류끼리 붙었는가 아니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붙었느냐 하는 문제다. 전자가 슈만 커플이고, 후자가 쇼팽 커플이다. 슈만과 클라라는 음악이라는 매개체가 두 사람을 강하게 결속시켜 놓았다. 그런데 쇼팽과 상드는 그렇지 않다. 일단 활동 필드부터 완전히 다르다. 음악과 문학은 크게 보면 모두 예술의 영역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그걸 제쳐 놓고 보더라도 성격부터가 너무 달랐다. 쇼팽은 내성적인데다 감성적으로 대단히 섬세한 사람이었고, 상드는 소위 말하는 “쎈 언니”, “걸크러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기가 센 여인이었다.  더군다나 꽤나 보수적인 마인드가 베어 있었던 쇼팽과는 달리 상드는 사회적 관습 따위는 정면으로 부정해버리는, 반골기질이 다분한 사람이었다.

물과 기름도 꿀케미가 될 수 있다?
 쇼팽과 상드가 처음 만났을 때, 쇼팽은 상드에게 거부감을 느꼈다고 한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나도 남자치고는 감수성이 상당히 예민한 사람이라 그런 사람을 만나면 도망갈 궁리만 하기 일쑤인데, 살짝만 툭 건드려도 터질 것만 같은 감성을 가진 쇼팽이 상드를 보고 느꼈을 감정이 능히 상상되고도 남는다. 더군다나 쇼팽은 옛 연인 보진스카를 잊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래저래 쇼팽의 마음에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상드는 “전투적으로”쇼팽에게 구애했고 결국 두 사람은 연인이 되어 9년 동안 마요르카 섬에서 동거했다.

 그런데 놀라운 건 이렇게 기가 센 상드가 병약한 쇼팽에게 매우 헌신적이었다는 점이다. 상드의 정서적 서포트를 받은 쇼팽의 음악에는 물이 올랐고 주옥같은 명작들이 끝을 모르고 줄줄이 탄생했다. 물과 기름 같았던 저 두 사람이 알고보니 최고의 꿀케미였던 셈. 동갑내기 슈만의 음악과 비교해 보자. 똑같이 뜨거운 사랑 끝에 결혼한 슈만의 음악에는 터질 듯한 감성이 있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진 같은 불안정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쇼팽이 상드와 동거하던 시절 생산된 곡들은 섬세한 감성이 극한까지 발휘되었을지언정 큰 틀이 흔들리는 경우가 거의 없다. 감성은 살아 있으되 멘탈리티가 안정을 찾았다는 이야기다. 나는 개인적으로 슈만을 쇼팽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 적어도 음악적으로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의 필터를 설치한 인생을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누가 더 지혜로운 삶을 살았는가 하는 질문에 부딪히면, 쇼팽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기에...

 이것은 무엇을 시사할까? 개인적인 경험에 적용해서 생각해 본다면, 너무 비슷한 사람보다는 나와 좀 다른 면이 있는 사람을 짝으로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울 수가 있다는 얘기다. 마치 축구에서 투톱 전술을 짤 때, 피지컬 좋고 파괴력 있는 선수와 체격은 작지만 테크닉이 좋은 선수를 같이 배치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늘 나와 성격이 비슷한 사람만 찾아다니곤 했고 또한 내 성격이보편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그런 사람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어느 순간 감정의 회오리같은 화학작용이 집착으로 발전해 가까워지다가도 소원해지기 일쑤였다. 반면 나와 너무 다른 사람에겐 좀체 곁을 내주려 하지 않았다. 내가 다치기 싫었으니까.

https://youtu.be/n2ERP_kVOnI

쇼팽:뱃노래 op.60

마우리치오 폴리니

크리스티안 짐머만

에프게니 키신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마르타 아르헤리치, 피아노(위 순서대로 연속재생)


그런데 쇼팽과 상드의 에피소드들을 음악과 함께 상고해 보니, 나와 많이 다른 사람에게도 어느 정도는 마음을 열어놓을 필요성을 느낀다. 아니, 거기에 익숙하지 못했던 것이라 봄이 더 맞겠다. 늘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만 곁에 두려고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게 좋은 건 아니란 사실을 이제는 통감한다. “극혐”으로 다가오는 나와 확연히 다른 면을 가진 사람이 내게 일등공신이 될 수도 있음을, 쇼팽과 조르주 상드는 증명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여전히 내 가슴을 움직이게 하는 이는 쇼팽보단 슈만이다. 결론을 내자. 음악은 슈만처럼, 사랑과 인생은 쇼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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