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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Sep 24. 2018

졸부들과 싸울지라-베토벤 현사 라주모프스키 3부작

베토벤의 취미는 졸부들 물먹이기

https://youtu.be/msR8ItbSlPg

베토벤:현악 4중주 9번 C장조 op.59-3 “라주모프스키”

알반 베르크 콰르텟



졸부들, 존재만으로 느껴지는 민폐의 악취
 일상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씩 매너라고는 집구석에 던져 놓고 다니는 듯한 천박하고 속물적인 졸부들을 본다. 그런데 지금 이 사회가 뼛속까지 자본주의다 보니, 그들의 개념 상실한 짓꺼리들을 보고도 어쩔 수 없이 부글부글하고 말아야 할 때가 다반사다. 한 번씩 매스컴에 재벌 3세들의 어이없는 갑질 행태가 보도될 때 온 국민들이 성난 황소마냥 길길이 날뛰는 걸 보면, 이건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천박한 졸부들에게 속절없이 당하고 살고 있다는 증거다.

 이렇게 천민자본주의가 세상을 지배하다 보니, sns에도 억대를 호가하는 수입차, 수백 수천만원짜리 명품백, 수십억대는 가볍게 넘기는 집 등을 찍은 허세샷들이 홍수처럼 넘쳐난다. 심지어 예술의 영역도 예외는 아니다. 예술의 본질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허세로 연주회장이나 전시회에 들러서 보란 듯이 인증샷을 떡하니 남기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나 역시도 이런 부류들을 공적인 자리가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메스껍기 짝이 없다. 다만 침묵하고 있을 뿐이다. 평화(?)를 위해서 말이다. 부자들을 싸잡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인성이 된 부자들은 비난할 필요가 없다. 그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졸부들은 얘기가 다르다. 존재만으로도 민폐 끼치는 작자들을 받들어모실 이유가 전혀 없다는 얘기다.


베토벤이 선물하는 사이다 대리만족
 가끔씩 졸부들을 보고 기분이 언짢을 때, 베토벤 라주모프스키 현사 3부작은 종종 대리만족을 시켜준다. 겨우 현악기 네 대가 사자후처럼 뿜어내는, 교향곡에 버금가는 스케일이 남다르다. 여기엔 베토벤의 남다른 진보성과 위풍당당함이 깔려 있는데, 이는 제목으로 붙어있는 피헌정자 라주모프스키 백작과의 에피소드를 역추적해 보면 답이 나온다. 라주모프스키 백작은 베토벤의 후원자 중 한 사람인데, 베토벤이 혐오하는 졸부근성이 좀 있는 귀족이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후원을 받는 처지에 라주모프스키 백작에게 대놓고 싫은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마침 이 사람이 베토벤에게 현악 4중주를 작곡해달라고 요청했다. 베토벤은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작곡할 때 극도로 신중했던 그답지 않게 빛의 속도로 세 곡을 완성해 버렸다. 러시아 출신인 라주모프스키 백작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러시아 민요 주제를 삽입하기도 했지만, 당시까지 인식되던 살롱 음악으로서의 스트링 쿼텟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엎어버리는 혁명적인 내용이 담겼다. 완성 후 라주모프스키 백작의 저택 공사가 늦어지는 바람에 초연이 다른 곳에서 슈판치히 쿼텟에 의해 이뤄졌는데, 연주자도 청중들도 모두 당황했다.

 베토벤은 당황스러운 청중들의 반응에 오히려 기뻐했다. 이것이 자신의 의도였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졸부근성을 가진 라주모프스키 백작을 음악으로 당당히 물먹이려 했던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트링 쿼텟이란 프레임은 그 이전까지는 귀족들의 부의 상징으로서의 살롱 음악으로 기능했다. 좀 더 래디컬하게 표현하면, 귀족들의 “가오 잡는”도구였던 것이다. 베토벤의 눈에 음악을 이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귀족들이 곱게 보일 리 없었다. 따라서 당시로서는 말도 안되는 난이도와 파격적인 내용을 담아 거들먹거리는 귀족들을 골탕먹여주려 했던 것이다.

졸부 물 먹이기가 낭만주의의 개막으로
 어찌됐든 베토벤의 “졸부 물 먹이기”로 동기부여가 된 이 세 곡의 현사들은 결과적으로 실내악사에 굵은 한 획을 그었다. 이후의 모든 실내악들이 이 세 곡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족들에게 고개를 숙였다는 이유로 괴테도 자신의 인맥에서 눈도 하나 깜짝 않고 쳐내버릴 정도로 강직했고 졸부근성을 극도로 혐오했던 혁신주의자 베토벤은 이 모멘텀으로 스스로 고전주의의 시대를 마감하고 낭만주의의 문을 활짝 열어제쳤다. 이 스토리만으로도 짜릿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베토벤이 현재 생존해 대한항공의 조씨 남매 같은 금수저 졸부들을 본다면, 그가 음악으로 남겨놓을 논평은 어떤 것일까? 이미 베토벤은 무덤에 있으니 현실화될 일이야 없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베토벤은 “졸부들 물 먹이기”가 취미(?)였고 그 힘으로 작곡활동의 동력을 얻어갔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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