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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Sep 25. 2018

플랜 A를 찾기 위한 베토벤의 집요한 여정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작품 31 3부작

https://youtu.be/6vYDC_Xg59Y

베토벤:피아노 소나타 16번 G장조 op.31-1

다니엘 바렌보임,피아노

https://youtu.be/ONudqz4kRCk

베토벤:피아노 소나타 17번 d단조 op.31-2 “템페스트”

마우리치오 폴리니, 피아노


https://youtu.be/whOU8XNgKFo

베토벤:피아노 소나타 18번 Eb장조 op.31-3

빌헬름 켐프, 피아노


베토벤이 복수의 곡을 묶어놓는 이유
 잘 살펴보면, 베토벤이 하나의 작품번호 안에 복수의 곡들을 묶어놓는 경우는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매우 명확함을 알 수 있다. 작품 59로 묶인 라주모프스키 현사 3부작 시리즈는 귀족들을 조소하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고, 지금 논하려는 피아노 소나타 작품 31의 세 곡 또한 큰 그림으로 보면 잡히는 이야기가 존재한다. 이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는 베토벤이 작곡가로서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과정이 서사시처럼 녹아 있는데, 그걸 느낄 수 있다면 베토벤과의 진정한 영적 대화가 가능하다.  비록 한 곡씩 떼어놓고 미시적으로 보면 영 싱겁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세 곡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생각해 보면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세 소나타의 각기 다른 캐릭터
 이 세 소나타가 작곡될 즈음, 베토벤은 저 유명한 “하일리겐슈타트의 유서”를 쓴다. 그런데 말이 유서지, 내용을 보면 베토벤의 새 삶을 향한 굳은 의지가 배후에 숨겨져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것이 이 세 곡에 그대로 증명된다. 첫 곡인 16번 G장조를 보자. 매우 우아하고 고전적이면서 해학적이다. 주어진 틀 안에서 형식미의 극치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음악이 전악장에 걸쳐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생동감이 있다. 정밀하게 움직이는 엣지있는 리듬들은 박자가 정확히 맞아들어갔을 때 느낄 수 있는 쾌감의 극단을 보여준다(이러한 이유로 음대의 입시곡으로 널리 쓰인다). 이어지는 17번 d단조 “템페스트”는 완전히 대조적이다. 소나타의 탈을 쓴 판타지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낭만적이고 자유로우며 정서적으로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후일 제자 신들러가 베토벤에게 이 곡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베토벤은 이렇게 대답했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 보라”. 이 에피소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곡은 다분히 암시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렇게 쓰여진 17번 소나타는 언제 들어도 웬만한 낭만주의 캐릭터피스들보다 더 낭만적이다. 이렇게 앞 두 곡에서 극단적인 대조를 시전한 베토벤은 마지막 곡 18번 Eb장조에서는 앞의 두 곡의 절충을 시도한다. 고전적인 미도 살리고,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면도 살려놓는 균형감을 보여준다. 그래서 여러 가지의 얼굴을 가진 곡이 되었다. 이러한 18번의 성격 때문에 앞의 두 곡이 입시곡으로 널리 쓰이는 반면, 이 곡은 좀더 깊이 음악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곡으로 인식되어 있다. 베토벤 정체성의 오버뷰를 보여주는 곡이기에.

마침내 찾아낸 베토벤의 플랜 A
 이러한 베토벤의 “정체성 찾기 여정”의 데이터는 다음 곡인 21번 C장조 “발트슈타인”에 가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다(19,20번은 그 전에 작곡된 것들이 나중에 출판된 것이어서 이 흐름에 넣을 수는 없다). 여기서는 말 그대로 베토벤이 하고 싶은 대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베토벤이 100% 그대로 드러난다.  그 기초공사가 작품 31의 세 곡에서 완벽히 이루어진 것이다. 우아하고 고전적인 16번, 낭만적이고 자유로운 17번,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18번 이렇게 세 곡 모두가 뛰어난데, 이것을 한 데 버무려 베토벤만의 위대한 아이덴티티가 완전히 새로 탄생한 셈이다.

 이 세 곡의 소나타를 이렇게 큰 그림으로 보고, 다시 따로 떼어 접근해보면 모 아이스크림의 광고 문구처럼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즐거운 방식으로 접근해보면 이런 재미가 있고, 진지하게 접근해보면 자신만의 플랜 A를 찾아내려는 베토벤의 집요한 의지가 느껴져 숙연해지기도 한다. 더 크게 보면, 이것이 베토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악성으로 추앙받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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