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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Oct 09. 2018

금수저 멘델스존은 마냥 행복하기만 했을까?

행복하지 않은 금수저의 증거,오라토리오 엘리야

https://youtu.be/z-wsKU-N8dY

멘델스존:오라토리오 엘리야 op.70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필립 헤레베헤, 지휘


금수저 멘델스존 뒤의 짙은 그림자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은 서양음악사 전체를 통틀어 봤을 때 참으로 유니크한 인물이다. 일단 그는 “예술가는 고달프다”는 공식처럼 인식된 패러다임을 가볍게 비웃어 버린다. 다른 음악가들이 고달픈 삶을 살다 가는 경우가 많은 데 반해, 그는 요즘으로 치면 대치동의 부유층 집안에서 태어난 금수저였던 것이다. 그의 할아버지 모제스 멘델스존은 유명한 계몽 운동가였고,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은 함부르크의 부유한 은행가였다. 이러한 엄청난 재력으로 멘델스존의 집에는 당대 각 분야의 최고의 지식인들이 제 집처럼 드나들었고, 자연스럽게 멘델스존은 다양한 분야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그가 되어서는 지금도 한 번 가려면 몇 년을 벼르고서 가야 하는 유럽여행을 밥먹듯이 다닐 정도로 그는 부유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은 어떤 걸 들어도 한음 한음에 럭셔리함이 넘쳐 흐른다(좀 속되게 표현하면 돈 냄새가 풍겨난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그의 음악을 예술적인 고뇌가 부족하고 깊이가 없다며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권위적인 아버지가 잉태한 불행한 씨앗
  하지만 멘델스존을 어려움 없이 살다 간 음악가로만 바라봐서는 곤란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부유하게 자랐을지언정 그의 집안이 마냥 행복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그들의 일화들을 조금이라도 관심있게 본다면 물음표를 붙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부유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은행가였던 그의 아버지는 심히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인물이었다. 멘델스존에게는 파니라는 이름을 가진 누나가 한 명 있었는데, 누나도 남다른 비쥬얼을 가진 것은 물론 동생 못지않은(어쩌면 능가할지도 모르는) 음악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아버지 아브라함은 딸의 재능을 권위로 눌러 버렸다. “여자는 남편 내조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세뇌시키듯 주입한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멘델스존의 누나는 재능을 숨기고 살아야만 했던 것이다. 이것은 파니가 15살 때 아버지가 딸에게 쓴 편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요즘의 시각으로 본다면 경악스러울 정도로 가부장적이고 남성 중심의 마인드!

“펠릭스에게는 음악이 직업이 될 수 있지만, 네게는 그저 장식품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네 명예는 네 처신과 분별에서 얻어야 한다. 펠릭스가 찬사를 받을 때 너도 기쁨을 느끼지 않느냐. 너도 똑같이 찬사를 받을 수 있었을 거란 뜻이니 그렇게 느끼고 처신하도록 해라. 이것이 여성성이며, 진정한 여성성만이 너희 여자들을 빛나게 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누나 파니의 남편이 된 사람은 역시 부유한 재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음악의 “음”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파니의 시집살이가 고달팠던 건 말해 무엇하랴? 동생인 멘델스존의 입장에서는 어린 시절 자신과 같은(어쩌면 능가할지도 모르는)재능을 가진 누나가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태도와 남편의 몰이해 속에 재능을 꽃피워보지도 못하고 눌려 사는 것을 보고 아마 말할 수 없는 애틋한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누나 파니도 자신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였던 남동생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던 모양이다. 그것은 파니가 결혼을 하면서 남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잘 알 수 있다. “내가 정말 사랑한 사람은 너 뿐이야” 라는 내용. 얼마나 애틋한가.

 그러나 멘델스존은 누나를 안쓰럽게 여기면서도 완고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표면적으로는 누나가 작곡가로서 활동하는 것을 반대해야만 했고, 그 자신도 아버지의 권위에 일정부분 눌려서 살아야 했다. 그가 20대 중반에 건강상의 이유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지휘자 자리를 사임하려고 하자, 아버지 아브라함이 책임감을 강조하며 멘델스존을 엄히 꾸짖었고 그는 아버지의 꾸짖음에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 직책을 유지해야만 했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엄하고 꼬장꼬장한 아버지와 음악에 대한 한이 맺힌 누나 사이에서 번뇌하는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그와 누나의 관계는 남매관계를 넘어선 연인 같은 관계로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고, 나 역시 거기에 동의한다. 심히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내 친구들이 누나나 여동생과 연인으로 보일 만큼 친밀한 경우를 심심찮게 보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누나 파니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애써 억누르며 비밀리에 많은 곡들을 작곡해두고 서재에 숨겨두며 겉으로는 평온하게 살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마자 아버지에 의해 좌절됐던 음악활동을 조금씩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비교적 건강하던 그녀는 42세 때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누나의 죽음을 접한 멘델스존은 크게 충격을 받아 불과 6개월 후 그도 38세의 아까운 나이로 누나의 뒤를 급히 쫒아갔다.

누나를 추모하며, 아버지에 대한 한을 담다
 그의 최후의 작품군에 속하는 오라토리오 “엘리야”. 기독교적인 내용을 담은 성령충만한 오라토리오이지만, 나는 이 대작에서 종교적인 열기를 느끼는 것과 더불어 멘델스존의 누나에 대한 뜨거운 애틋함과 엄격한 아버지에게 받은 두 남매의 상처가 동시에 느껴진다. 일단 성경 인물 중 엘리야를 골랐다는 것부터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움켜쥐고 야훼를 조롱했던 바알신과 한판 대결을 펼치지만 도저히 답이 안 나와서 우울증에 걸린 채로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하나님께 부르짖는 엘리야의 그 모습에서, 아버지의 가부장적인 마인드와 누나의 못다핀 꿈에 대한 미안함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죽을 지경이 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 아닐까. 멘델스존은 이 대작에 자신의 답답한 심경과 사랑했던 누나의 상처를, 피로에 쩔어버린 자신의 몸을 채찍질해가며 모두 투사해서 담아냈다. 그래서 오라토리오 “엘리야”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의 정서가 진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정서는 누나가 죽은 후 작곡된 현악 4중주 6번 f단조 op.80 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지만, 유명한 성경 인물에 자신의 내면을 투영한, 작곡가의 통탄의 슬픔을 오롯이 느끼기엔 “엘리야”의 강렬함을 따라갈 수가 없다. 그는 이 곡을 초연한 뒤에 누나의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렇게 할 의도는 없었겠지만 이 곡이 담고 있는 한의 정서에 비추어 볼 때, 사실상 “엘리야”는 사랑했던 누나에게 바친 대규모의 레퀴엠이 된 셈이다.

 나는 이 곡을 상당히 자주 듣는다. 집에서, 또는 운전을 하면서 수도 없이 반복해 듣고 감동받고 울고 웃은 그런 곡이다. 이러한 감동을 지속적으로 누릴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한편으론 결과적으로 걸출한 자식들 두 명의 인생을 단명에 끝내버린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이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신도 분명 아브라함에게 그 책임은 묻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식이 가고 싶은 길을 막는(특히 고정된 틀에 박힌 생각으로) 부모는 결코 좋은 부모가 아니다. 결론을 내자. 금수저라고 무조건 행복한 것이 결코 아니다. 집안에 돈이 많은 것보단 인성이 좋은 부모를 둔 게 더 큰 복이다. 그런데 이건 또 인간이 마음대로 선택할 수는 없는 문제니, 이 또한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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