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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Nov 19. 2018

쇼팽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를 찾다-녹턴 13번

나의 쇼팽포비아 극복기

https://youtu.be/tSAwZP8e-zQ

쇼팽:녹턴 13번 c단조 op.48-1

조성진, 피아노


쇼팽 발라드에 멋모르고 덤볐다가 피를 보다

같이 피아노를 전공하는 동료들을 보면, 동갑내기 슈만과 쇼팽은 은근히 호불호가 엇갈리는 것 같다. 슈만을 좋아하는 사람은 쇼팽에 별로 공감을 하지 못하고, 쇼팽을 좋아하는 사람은 반대로 슈만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 말이다. 물론 나는 둘 다 좋아한다. 슈만을 훨씬 더 좋아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직접 손을 움직여 연주해볼 때는 얘기가 다르다. 완벽히 슈만 편에 붙는다. 성향에 영향을 크게 받겠지만, 나의 경우 슈만은 아무리 어려워도 걸어가든 기어가든 어떻게든 쳐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쇼팽은 뭔가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벽이 느껴지곤 한다. 이건 아마 대학원 첫 학기 과제곡 발라드 1번에서 뼈저리게 느낀 한계가 크게 각인된 건지도 모르겠다. 박자를 잡아 놓으면 음악이 목석처럼 딱딱하고, 음악을 좀 만들어볼라치면 박자가 여지없이 가출을 해버리고 만다. 거기다 변칙적인 꾸밈음과 성가신 폴리리듬, 한 프레이징 안에 병치해 놓은 불규칙한 스케일과 반음계까지... 정말 죽다 살아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한동안 고질병이 된 쇼팽포비아
 그래서 나는 한동안 필수로 쳐야 하는 에튜드들을 제외하면 쇼팽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물론 듣기는 여전히 열심히 들었지만 이미 만인에게 검증된 그 압도적인 감동의 배후에 도사리는 거북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쇼팽을 잘 치거나 즐겨 치는 사람을 보면 적지 않은 컴플렉스를 느끼곤 했다. 그들이 쇼팽을 열심히 치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나는 슈만의 대곡을 2년 가까이 파제꼈는데도 말이다. 설상가상으로 한 곡을 오래 파면서 다른 사람이 치는 쇼팽을 자세히 보니 극히 섬세한 표현이 필요한 부분, 엄청난 테크닉이 필요한 부분들이 체계적으로 딱 보였는데, 그것이 되레 자괴감을 불러일으켰다. 몇 명의 동료들은 슈만 판타지 같은 대곡은 건드려볼 생각도 못 하는 사람도 많다며 나를 위로해주기도 했지만, 인기가 많은 쇼팽의 대곡들을 마주하면 넘을 수 없어 보이는 벽을 느끼는 내겐 별로 위로가 되지는 못했다. 아니, 대곡은 고사하고 조금 피아노 배웠다는 사람들은 누구나 치는 즉흥환상곡조차 버거움이 느껴졌다. 이정도 되면 그야말로 제대로 “쇼팽포비아”가 온 셈이었다.
 

쇼팽 잘 치는 남자는 연애 고수?
 나는 남자치곤 상당히 감성적인 사람이다. 쇼팽 음악 역시 지극히 감성적이다. 그런데도 나와는 어딘지 모르게 자꾸 엇박자를 타는 것만 같은 쇼팽.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궁금했다. 테크닉적인 문제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객관적인 난이도로만 따지면 슈만이 쇼팽보다 더 어려운 곡이 많다.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기를, 나는 쇼팽 음악의 전체적인 감성에 취했을 뿐이지, 프레이징 또는 아티큘레이션 하나하나에 대한 공감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쇼팽의 표현은 극히 섬세하다. 약간 남녀의 차이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 보통 남자는 여자를 볼 때 좋다, 아니다로 판단하는 반면, 여자는 남자를 볼 때 싫다, 싫지는 않다, 그냥 편한 오빠다, 좋아지려고 한다, 좋아한다 등의 아주 디테일한 감정이 있다고 하는데, 쇼팽의 음악에 여자의 이런 심리들이 섬세하게 반영된 것 같다는 뜻이다. 소위 말하는 "여자어"의 어법으로 쓰여졌다는 것이다(그런데 쇼팽은 엄연한 남자인데?).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니 꽤나 괴랄한 유추에 이르게 된다. "쇼팽을 잘 치는 남자는 보나마나 연애 고수다!"

녹턴 13번, 쇼팽포비아를 날려버리다
 어찌 됐든 쇼팽에 상당한 부담감을 갖고 있던 내게 어느 날 녹턴 13번 c단조가 갑자기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녹턴 전곡을 상당히 많이 들었지만, 여태껏 집중해서 들은 기억은 잘 없었던지라(거의 BGM처럼 들었을 때가 많은 것 같다) 신선한 체험이었다. 땅이 100미터는 밑으로 꺼질 것만 같은 구슬픈 정서가 최근 인간관계에서 꽤나 힘든 일을 겪은 나의 마음 속 중심을 정통으로 노리고 들어온 것이다. 보통 나는 이러한 정서의 합일을 느꼈을 때는 그 곡을 꼭 쳐보곤 한다. 그러면 익히는 속도가 열 배는 빨라진다. 당연히 녹턴 13번도 악보를 찾아 쳐 보았다. 피아노 앞에 앉아서 이 곡의 악보를 읽기 시작하니, 굉장한 몰입감을 체험할 수 있었다.  현재 상태에서는 내 마음을 온전히 공감해 주는 유일한 쇼팽 곡이었다. 마지막 부분의 두터운 화음의 진행들이 테크닉적으로 굉장히 부담되기는 했지만, 정서적으로 공감이 됐기 때문에 집중해서 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이 곡 아닌 다른 곡에 나타난 쇼팽의 정서도 이 곡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앞서도 언급했듯 녹턴 13번은 굉장히 슬픈 곡이다. 그러나 쇼팽의 감성을 공감하는 실마리가 되어준 곡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즐겁고 홀가분했다. 이제는 쇼팽에 공포감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되었으니 말이다. 혼이 다 빠져나간다고 느꼈을 만큼 어려웠던 발라드 1번도, 다시 악보를 펴서 쳐 본다면 이제는 조금은 마음 편하게 칠 수 있지 않을까?


https://youtu.be/I4G6sUTMlOg

쇼팽:발라드 1번 g단조 op.23

스타니슬라프 부닌,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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