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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Nov 27. 2018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음악, 브람스 독일 레퀴엠

레퀴엠의 음침한 이미지는 가라!

https://youtu.be/08qM54vEvLw

브람스:독일 레퀴엠 op.45

바버라 핸드릭스, 소프라노

호세 반 담, 바리톤

빈 징베라인

빈 필하모닉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레퀴엠에 대한 거부감?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레퀴엠”이라는 형식을 가진 명작들은 대단히 많다. 모차르트부터 시작해서 케루비니, 베를리오즈, 브람스, 베르디, 포레, 브리튼에 이르기까지 대 작곡가들은 자신의 예술혼을 아낌없이 이 형식에 투영했다. 그러나 이 형식에 대한 거부감도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레퀴엠은 본래 가톨릭의 “망자를 위한 미사곡”을 뜻한다. 죽은 사람의 원혼을 위로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어 유독 죽음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우리네 문화 가운데 쉽게 섞이기는 힘들다. 이러한 꺼림칙한 느낌을 걷어내고 접해도 대개 레퀴엠들은 분위기가 대단히 무겁고 장중하며 진지해서 쉽게 들을 음악은 못 된다.
 
일상의 언어로 쓰인 따뜻한 위로, 독일 레퀴엠
그러나 브람스 합창음악의 꽃이라고 일컬어지는 “독일 레퀴엠”은 이야기가 다르다. 여타 레퀴엠들처럼 진지하고 장중한 분위기가 깔려 있다는 건 마찬가지지만, 이 형식을 다루는 브람스의 방식은 다른 레퀴엠들과는 차이가 있다. 브람스는 독일 레퀴엠을 쓸 때 종교적 양식을 상당부분 버리고 일상적인 언어로 가사를 쓰는 방식을 택했다. 라틴어로 된 전례의 가사가 아닌, 루터가 일상적인 독일어로 번역한 성경의 가사를 썼으며, 이 가사들도 브람스가 직접 고른 것이다. 즉,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을 음악 안에 녹여냈기 때문에 보다 더 리얼하고 서사적이며, 브람스 특유의 따뜻한 소리가 성경 곳곳에서 채택된 가사들을 감싸고 있다.
 

이와 더불어, 작곡 배경을 보면 말로는 형언 못할 먹먹함이 느껴진다. 브람스가 이 레퀴엠을 구상한 시점은 스승 슈만의 사망을 접한 직후였다. 그러나 작곡에 극도로 신중했던 브람스는 당장 작업에 착수하지는 않았다. 남편을 잃고 비탄에 빠진 클라라의 옆을 지키며, “죽음”이란 단어를 수백 수천 번이고 숙고하며, 성경책을 옆에 끼고 살다시피 했다. 선배 작곡가 케루비니의 레퀴엠을 면밀히 연구했고,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모테트와 합창곡 몇 곡을 쓰면서 스스로를 철저하게 시험했다. 이렇게 보낸 시간이 무려 9년. 그런데 이 시간이 지나고 브람스는 모친상을 당하고 만다.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브람스는 마침내 작업에 속도를 내어 드디어 전곡을 완성했다(초연 뒤 현재의 5악장을 추가한다). 즉, 이 곡 안에는 누구보다 가까운 두 사람, 스승 슈만과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브람스가 경험한 의식의 흐름들이 솔직하게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브람스의 진실성을 알아챈, 브레멘에서의 초연에 온 청중들은 브람스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냈고, 당시 없던 5악장이 추가된 현재의 형태가 갖춰진 라이프치히에서의 공연 이후 이 레퀴엠은 10년 동안 독일어권 국가에서만 100회 이상 공연됐다. 한 마디로 브람스의 출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프지만은 않다,그리고 따뜻하다
이렇게 쓰여진 독일 레퀴엠은 절대로 음침하거나 대책없이 슬프지 않다. 망자의 원혼을 위로하는 레퀴엠의 본래 기능을 살려 놓으면서도, 살아있는 자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다. 세상을 살아가는 그 어느 누구라도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가 건네는 위로 한 마디는 새 힘을 얻는 가장 큰 원동력인 법인데, 브람스가 쓴 이 명작은 너무나 따뜻한 위로를 품고 있다. 꼭 주위의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상황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 마음을 위로하기에 더없이 좋은 곡이다. 브람스의 음악이 본래 어떤 곡을 접하든 따뜻함이 공통적으로 다 있지만, 나는 이 독일 레퀴엠보다 더 따뜻한 느낌으로 쓰여진 음악을 하나도 알지 못한다. 브람스의 다른 곡들은 물론이고, 여타 그 어떤 작곡가들까지 범위를 넓혀보아도 말이다. 죽음을 논한다는 일종의 공포감은 적어도 이 곡에선 내려놔도 좋다. 누구보다 가까웠던 사람들을 잃는 체험은 그 어느 누구라도 힘들지만, 브람스가 독일 레퀴엠에서 그려내는 정서는 결코 슬픔의 배설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초월한 따뜻한 위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누군가를 조문할 때 이 곡을 듣고 가기를 추천한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말랑말랑해진다. 문상객으로 가서 상주에게 건네는 눈빛부터 따스해질 것이다. 본래 결혼식에 온 사람은 기억을 못해도 상갓집에 찾아온 사람은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거기에 따뜻한 눈길과 위로의 한 마디면 상주가 크게 위로받을 것이다. 나는 브람스 독일 레퀴엠이 이것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체험했다. 관계까지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위대한 음악인 것이다. 쓰디쓴 소주를 들이키는 것보단 이것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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