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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Nov 27. 2018

엘가 수수께끼 변주곡 안의 또다른 수수께끼

“님로드”가 왜 추모곡?

https://youtu.be/aQWAO9d43LY

엘가:수수께끼 변주곡 중 9변주 “님로드”

사이먼 래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엘가의 장난?
 “위풍당당 행진곡”으로 널리 알려진 영국의 작곡가 엘가는 적어도 영국에서는 베토벤급으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물론 그가 전 세계적으로 보면 s클래스급이라고 논하기에는 상당히 무리가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엘가를 좋아한다. 그 특유의 따스한 소리 때문이다. 그의 음악은 일단 모난 면이 거의 없고 어두운 듯하면서도 난로처럼 따뜻하다. 그런데 그의 유명한 관현악곡 “수수께끼 변주곡”은 제목처럼 곡 안에서 다시 한 번 장난 같은 수수께끼를 툭 던진다. 이 곡 안의 9번째 바이레이션 “님로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추모곡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님로드
 놀랍게도 이 변주는 따로 떼어 추모의 용도로 단골로 쓰이는 곡이다. 망자의 넋을 기리는 자리에 이 곡을 깔아놓으면 아무리 냉정한 사람도 안구 깊숙한 곳에서 마그마처럼 끓어오르는 뜨거운 액체를 통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만큼 한국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이 곡이 수없이 연주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훔쳤다. 그만큼 감성이 충만한 곡이다. 그런데 엘가의 본 의도는 추모용이 아니었다. 자신의 절친 오거스터스 제거와의 우정의 징표였다. 그리고 이 "수수께끼 변주곡"의 각 바이레이션은 모두 엘가의 가까운 지인들을 묘사한 것인데, 이로 봐서는 엘가는 과업 중심이라기보다는 관계 중심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 지인들을 살뜰히 챙기는 엘가의 따스한 면모가 느껴진다.

 그런데 유독 "님로드"가 작곡가의 의도와는 다르게 망자를 추모하는 용도로 널리 연주된다는 건, 몰랐다가 알게 된다면 약간 카오스 상태가 되기도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내 생각은 이렇다. 엘가는 토박이 영국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퍼셀 이후 최초로 등장한 순수 영국인 혈통의, 영국이 자랑하는 작곡가다. 그런데 영국인의 태생적인 기질 은 상당히 다크하다. 섬나라인 데다 여름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햇빛을 볼 수가 없는 나라가 영국이다. 그것이 음악에 드러나는 것이다. 영국 음악인들이 대륙에서 퍼셀 이후 인정받는 작곡가가 엘가가 등장하기까지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영국인 특유의 다크함이 대륙에서 보편타당하게 인정받지 못한 게 이유인 듯하다. 퍼셀과 엘가 사이의 300년에 근접한 시간 동안 영국에서 유능한 음악인이 없었던 건 아닐 것이다. 단지 정서적으로 대륙과 맞지 않았을 뿐.



영국인의 다크함이 만든 수수께끼
 그런데 이런 악조건을 뚫고 엘가가 위대한 영국의 작곡가로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새긴 건 특유의 다크함을 따뜻함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 아닐까? “님로드”역시 더없이 따뜻한 음악이다. 그런데 영국인 특유의 다크함 또한 묻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이 대륙의 사람들에게 추모곡으로 인식되어버린 것으로 보여진다. 비록 "님로드"가 엘가의 의도와는 다른 의도로 쓰이고 있지만, 영국 음악의 중흥기를 이끈 엘가의 공로까지 왜곡된 건 아니다. 어찌 됐건 엘가는 대중이 사랑하는 음악인으로 존경받고 살다 간 인물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도 “님로드”가 왜 추모곡으로 널리 연주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음악 그 자체가 추모의 분위기에 더없이 적합하다는 데만 동의할 뿐. 아마 메스컴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을까 싶지만, 어찌됐든 사람의 영혼을 움직이는 예술의 본연의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엘가는 계속해서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엘가의 의도인 걸로 간주하자. 제목부터가 “수수께끼”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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