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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Dec 03. 2018

스케르초와 유모레스크, 사전적 의미는 어디로?

낭만주의의 몽니

https://youtu.be/QtxNKHW0zyw

드보르작:유모레스크

안네 소피 무터, 바이올린


https://youtu.be/irSqIydc0ko

슈만:유모레스크 op.20

손열음, 피아노


https://youtu.be/CH7z8UryU-c

쇼팽:스케르초 전곡

미하일 플레트뇨프, 피아노



원래는 웃는 음악, 스케르초와 유모레스크
 스케르초와 유모레스크라는 제목, 또는 프레임을 가진 음악들을 떠올려보자. 일단 베토벤부터 교향곡의 3악장에 주로 쓰는 형식이 스케르초다. 그리고 유모레스크 하면 누구나 가장 먼저 드보르작의 저 유명한 소품을 떠올릴 것이며, 슈만의 피아노 대곡 또한 이 제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있다. 그런데 이 두 프레임은 낭만주의 시대로 가면 재미있게도 원래 의미와 상당히 거리가 멀어진다. 스케르초와 유모레스크는 원래 해학과 위트가 들어가 있는 개념이고, 스케르초의 경우 베토벤 시대까지는 그러한 성격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낭만주의 시대의 가운데로 들어와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거, 세상에서 제일 심각한 음악들 아냐?
 먼저 쇼팽의 네 곡의 스케르초가 눈에 들어온다. 이 곡들은 형식상으로는 스케르초의 폼을 취하고 있지만, 말 그대로 껍데기만 남겨놨다.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다. 네 곡 모두 10분이 넘어가는 대규모에 쇼팽의 모든 작품을 통틀어 가장 심각하다고 할 수 있는 내용들이 가득차 있으며, 쇼팽이 쓸 수 있는 최대한의 감정과 최대한의 기교가 아낌없이 난사되어 있다. 절대로 가볍게 듣거나 쉽게 연주할 곡들이 아니다. 이러다 보니 듣다 보면 이 곡들이 스케르초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다.

 유모레스크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드보르작의 그것은 원래의 사전적 의미에 부합할 수도 있겠다. 작은 규모에 경쾌한 리듬으로 채워져 있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아무런 생각 없이 들었을 때나 수긍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 짧은 소품은 듣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배후에 숨어있는 애수가 점점 노골적으로 이빨을 드러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훔치게 되니까. 그런데 드보르작의 유모레스크는 처음에는 이 슬픔본능을 보여주지 않지만, 슈만의 유모레스크는 엄청나게 심각한 곡이다. 30분이 훌쩍 넘어가는 장대한 규모의 틀 아래 슈만은 자신 내면 깊숙한 구석에 있는 감정까지 토설하듯이 죄다 끄집어낸다. 셀 수도 없는 가짓수의 감정들이 마치 축구에서 패스를 주고받듯이 교차하는 곡이라, 유모레스크의 본래 의미와는 아예 안드로메다로 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느낌을 사실상 슈만 자신도 인정했다. 이 곡은 웃음보다 눈물이 담긴 음악이라고 스스로 말했으니.


정답은 낭만주의의 몽니
 이것 참 모순에 빠지는 느낌이다. 재치, 해학의 뜻을 품은 스케르초, 유모레스크란 프레임을 가지고 작곡가들은 아예 목숨 걸고 이보다 더 심각할 수 있을까 싶은 곡들을 써제꼈으니 말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것이 낭만주의의 본질이다. 형식보다는
감정의 자유로운 분출을 더 높은 가치로 여겼던 낭만주의의 패러다임에 형식이 통제력을 상실한 것이다. 조금 중2병스럽게(?) 생각해 보면 형식에 대한 낭만주의 작곡가들의 반감이 음악에 작용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해학과 재치의 뜻이 담긴 프레임 안에 어떻게 심각한 요소는 죄다 때려박아놓은 음악이 나오겠는가?  난 이걸 “낭만주의의 몽니”라 워딩하고 싶다. 이런 몽니가 있기에 듣든 연주하든 언제나 낭만주의 음악이 제일 재미있나보다. 나 또한 체제순응적인 성격은 못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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