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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Aug 31. 2018

바그너의 열등감, 그 무시무시한 나비효과

개인과 개인 간의 증오가 인류적 파멸도 불러올 수 있다

https://youtu.be/5C5FOW2ekHo

바그너: 로엔그린 중 “혼례의 합장”


결혼식에 나란히 울려퍼지는 저 두 곡이 철전지 원수?

(지금은 아닌 경우도 많지만) 결혼식의 신부입장에서는 바그너, 부부의 퇴장에선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을 연주하는 건 관례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결혼식이란 화합의 장소에서 나란히 연주되는 이 두 곡을 썼던 두 사람은 생전에 견원지간이었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물론 크게 보면 저 두 남자는 독일 낭만주의를 선두에서 이끈 인물들이다. 그렇지만 저들 둘은 자란 환경도, 가치관도 너무나 달랐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멘델스존은 뼈대있는 유대인 가문 출신의 "금수저"였고, 바그너는 잡초처럼 자란 "흙수저"였다. 출발부터 달랐던 두 사람은 하필이면 라이프치히에서 격돌한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바그너는 라이프치히 출신이다. 그런데 바그너는 젊었을 때 온갖 사고를 치면서 온 유럽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 생활을 했다. 이런 상황에 바그너의 고향 라이프치히의 음악계는 사실상 멘델스존이 접수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고작 네 살. 그야말로 또래다. 자신은 고향에 발도 못 붙이고 온 유럽을 떠돌아다니는데, 그곳에 웬 또래의 돈많은 외지인이 와서 음악계를 호령하고 다니고 있다는 것은 바그너에게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자존심의 문제였다.


https://youtu.be/z85QVFf3-2M

멘델스존: 한여름밤의 꿈 중 결혼행진곡

쿠르트 마주어,지휘/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바그너의 열등감이 소환한(?) 악마 히틀러

 그런데 정통 독일 음악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바그너에게 멘델스존의 결정적인 하자가 눈에 쏙 들어왔으니, 멘델스존은 유대인이라는 것이었다. 멘델스존의 아버지가 유대인의 신분으로서는 독일에서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개신교로 개종을 시켰지만, 유대인의 혈통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일단 바그너는 궁시렁대고 다니는 것부터 시작했다. 자신의 일이 꼬일 때마다 "독일 음악의 전통을 멘델스존이 헤집고 다니고 있다"고 발언하기 시작하더니, 멘델스존이 마흔도 안 된 나이에 급서하기가 무섭게 바그너는 노골적으로 "멘델스존 죽이기"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음악에서의 유대정신"이라는 제목을 단 논문을 음악계에 발표하면서 멘델스존을 작정하고 까버렸던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논란이야 됐겠지만 위력은 생각보다 미미했다. 그러나 세월이 한참 지난 후 독일에서 히틀러라는 천하의 악마가 집권하면서 그저 술자리에서나 가볍게 오갈 가십거리에 불과했던 바그너의 견해에 강한 정당성이 부여되는 엽기적인 일이 일어났다. 바그너의 이 치기어린 행동이 집권자에 의해 정당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멘델스존에 대해 기록된 수많은 기록들이 히틀러에 의해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오직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무슨 아이러니한 비극인가?

개인 간의 열등감의 무시무시한 나비효과
 이 사건의 시작은 별달리 의미부여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었다. 그저 바그너의 열등감이 멘델스존을 보고 폭발한 것 뿐. 개인과 개인의 에피소드쯤으로 이해하고 웃고 넘기면 될 일이다. 하지만 후세에 히틀러라는 악마가 등장한 게 화근이었다. 한 흙수저의 "열폭"이 전 인류적 재앙을 불러온 무시무시한 나비효과가 된 셈이다. 이쯤 되면 사람을 괜히 미워하는 것도 엄청나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죽고 나서 내가 일으킨 에피소드 하나가 인류 전체를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역사는 돌고 돈다"는 사실을 이걸 통해 깨달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괜히 사람 미워하지 말고, 너그러이 용서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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