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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Aug 31. 2018

강인한 슈베르트

슈베르트는 아프다?  오히려 가장 강한 사람이다!


https://youtu.be/e52IMaE-3As

슈베르트:피아노 트리오 2번 Eb장조 op.100

트리오 반더러

 우리에게 슈베르트의 통상적인 이미지는 좀 연약해보이는 소녀감성이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슈베르트가 구사하는 멜로디는 다분히 감성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강인한 맛이 없다. 달콤한데 또한 상당히 높은 확률로 아프고 슬프게 느껴지곤 한다. 우리의 마음이 슈베르트의 포로가 되는 이유는 십중팔구 그 연약해보이는 아리디 아린 멜로디의 존재감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슈베르트와 함께하며 이불 속에 얼굴 파묻고 엉엉 울어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https://youtu.be/nApOrjkGJMw

슈베르트:피아노 소나타 Bb장조 op.960

잉그리드 해블러, 피아노


 그러나 여러 연주자들 중 이러한 슈베르트의 이미지에 의문을 강하게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면 크리스티안 짐머만, 잉그리드 해블러 같은 사람들 말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슈베르트는 멘탈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음악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짐머만은 아예 슈베르트를 근육질의 남성을 연상시키는 역동성을 대폭 부여해서 해석하고, 해블러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우리가 모차르트에게서 주로 느낄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우아함과 정갈함을 불어 넣는다. 이러한 해석은 도식적인 상식에 반기를 든 아주 참신한 아이디어다.

https://youtu.be/QAKb26e9fEA

슈베르트:피아노 소나타 A장조 D.959 중 4악장

크리스티안 짐머만, 피아노


 나는 슈베르트를 아픔이 아닌 건강함으로 해석하는 것에 강한 타당성이 있다고 본다. 비록 호소력으로 놓고 보자면 “아픈 슈베르트”컨셉이 훨씬 강하고 직접적이지만 말이다. 그건 슈베르트 음악의 내면을 조금만 눈 크게 뜨고 보면 답이 보인다. 일단 가곡은 차치하고서라도, 결코 머릿수가 적지 않은 슈베르트의 기악곡들을 보면 상당히 많은 곡들이 길이가 정말 길다. 한 악장이 15분,20분을 넘어가는 경우가 숱할 정도. 그렇다고 긴 길이로 악명 높은(?) 말러처럼 고도의 작곡기법을 사용한 스펙터클함이 있는 것도 아니다. 늘 소박함을 유지한다.  이 긴 길이를 가진 음악 속의 슈베르트는 대부분의 경우 슬프고 아린 감정을 절절하게 풀어 놓는다.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하다. 슬프고 아리고 땅이 1미터는 밑으로 꺼질 듯한 그 아픔 중간중간에, 슈베르트는 항상 희망을 찾는 화성을 보물찾기처럼 숨겨 놓는다. 그리고 일반적인 기승전결을 생각하고 있는 듣는이의 허를 찌르는 조바꿈, 악상 변화 따위가 항상 존재한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슈베르트는 긍정적인 미래를 항상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때로는 중구난방으로 보일 만큼의 악상 상의 변화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걸 보면 슈베르트는 연약하다기보다는 오히려 극히 강인한 인물이라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수 있다. 흔히 하는 말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고들 하는데, 슈베르트는 전형적인 “살아남았기 때문에 강한”인물인 것이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기본적으로 방랑벽 또는 역마살이 존재해서 베토벤 식의 논리적인 기승전결은 확실히 덜하지만, 대신 어떤 목표 혹은 목적을 향해 어떻게든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긴다. 일상에서 뭔가 계속 힘들어하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고 생각해 보자. 옆에서 보고 있으면 안쓰럽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징징대다가도 어떻게든 끝까지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로 그것이 슈베르트의 음악과 일맥상통한다. 어떻게 가든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든 기어가든 중간에 한눈을 팔든 끝까지 가니까.

 슈베르트가 연약하다는 이미지가 존재하는 이유에는 아마 그가 극히 이른 나이(31세)에 세상을 버렸다는 사실이 상당히 많은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거기 끼워맞춰 음악을 접하다 보니 연약하게 느껴질 수밖에. 그러나 실제로는 슈베르트만큼 멘탈리티가 강인한 작곡가도 드물다. 긴 러닝타임 속에 가슴을 부여잡기도 하고 방황도 할지언정 슈베르트는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달리던, 의지력이 남들보다 몇 곱절은 강한 강인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자신이 의지력, 끈기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지금 이 시간 슈베르트와 진지하게 대화해 보자. 어떤 식으로든지 얻어가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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