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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Aug 31. 2018

츠비카우로 날 이끈 슈만의 존재감

츠비카우, 슈만의 고향이기에...


슈만의 존재감이 이끈, 운명처럼 들를 수밖에 없던 츠비카우
 나는 여행을 정말 좋아하지만, 여행사의 패키지를 이용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여행의 참맛은 의외성이라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 가는 곳과 일정이 딱 정해져 있는 패키지 상품은 전혀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이동 수단과 숙소는 내 마음대로 결정하는 것이 내 여행이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때로는 길을 잘못 들기도 하고 어처구니없이 질이 낮은 숙소에 묵기도 하지만, 이건 여행의 소소한 재미다. 어차피 미지의 세계에 던져진 몸, 일상과 다를 게 없으면 그게 더 재미없는 것 아니겠는가?
 
 츠비카우는 그렇게 발을 들여 놓았던 곳이다. 사실 이 작은 도시는 슈만의 고향이란 것 외에는(물론 이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대중에게 거의 아무것도 알려진 바가 없다.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폭스바겐의 대규모 공장이 있는 도시라는 것 정도는 알려져 있겠으나, 자동차 공장 보자고 츠비카우까지 차비 들여가며 여행할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츠비카우에 간 날 아침, 나는 헨델의 고향 할레에 들렀다. 할레는 상당히 작은 도시라서 세 시간 이내로 웬만한 건 다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로 기차를 타고 바이마르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역에서 엉뚱한 탑승구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급히 제자리를 찾아 뛰어갔지만, 바이마르행 열차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다음 바이마르행 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꽤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기다릴까 다른 곳으로 갈까 고민을 하던 찰나, 앞에 “츠비카우”라고 쓰인 열차가 딱 그 플랫폼으로 유유히 들어왔다. 운명이다 싶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열차에 올랐다. 원래 내 여행 일정에서 츠비카우는 빼둔 터였다. 그토록 슈만을 좋아하는 나조차 츠비카우는 슈만의 고향이란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판단을 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황이 이렇게 풀려갔다. 순간 든 생각은 “슈만은 그냥 내 운명이구나” 였다.
 
열차는 할레 역에서 두 시간 가까이 달려 츠비카우 역에 이르렀다. 내려 보니 진짜 황량하다. 누가 구동독 지역 아니랄까봐, 흡사 버려진 땅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휴대폰의 구글맵을 켜고 시가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겨 본다. 조금씩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 눈앞에 펼쳐진 구시가지는 다행히 역에 처음 내렸을 때의 황량함과는 다르다. 할레 역에서 시간을 좀 끌어서 그런지, 시간이 꽤나 늦었다. 눈앞에 슈만의 생가를 발견하고도 폐장시간이 넘어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보지 못해 좀 아쉽다. 아쉬운 대로 구시가지를 걸었다 벤치에 앉았다를 반복해 본다. 츠비카우의 구시가지는 결코 황량하지 않다. 의외로 넓고 컬러풀하고 아기자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또 마냥 밝지만도 않다. 뒷골목으로 가보면 으슬으슬한 음침함이 존재한다. 치안이 위험하지는 않지만 느껴지는 분위기가 상당히 음침하고 어둡다.
 
머리보다 영에 각인된 도시, 츠비카우
불과 백 미터도 안되는 공간 안에서 극적으로 교차되는 명암이 있는 츠비카우. 슈만의 성장에는 분명 이러한 환경이 크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그 좁은 공간에서 쉴새없이 교차하는 명암이야말로 슈만을 상징하는 두 개의 내면,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의 뿌리가 아닐까? 그걸 느낀 것만으로도 츠비카우에 온 이유는 차고도 넘쳤다. 그런데 숙소가 있는 라이프치히로 돌아가는 길, 마치 마라톤 풀코스를 뛴 듯 지치는 느낌이다. 이건 부정적인 의미의 피로감이 아니다. 그만큼 츠비카우에서 슈만과 열심히 영적인 대화를 나눴다는 것이다. 슈만의 음악은 언제나 “내 얘길 들어 줄래요?” 이 느낌이다. 그리고는 엄청나게 디테일한 감정을 토로한다. 거기에 나는 폭풍 공감을 한다. 슈만과 카페에 앉아 몇 시간을 이야기한 느낌이다. 츠비카우 구시가지의 거리를 걷는 그 행위가 말이다. 이래저래 내겐 슈만은 운명적인 작곡가인가 보다. 피아노를 연습할 때나 음악을 들을 때나 똑같이 말이다. 슈만 생가 외에는 진짜 아무것도 없는 츠비카우에서, 내 몸이 아닌 영이 쓰러질 지경이 될 만큼 열심히 일했으니 말이다. 지금 이 순간도 츠비카우를 여행지로서 들를 생각을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겐 유럽의 수많은 어떤 유명 관광지보다도 강렬했던 도시가 츠비카우였다. 비록 기차 놓쳐 대신 간 도시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슈만과 영적인 대화를 치열하게 주고받았던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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