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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Aug 10. 2019

극일할 거리는 클래식 음악에도 많다

서양 음악을 왜 일본식으로 배우나?




 음악을 업 삼는 사람이자 클래식 음악팬의 입장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수많은 음악컨텐츠들을 보면 여기에도 일본의 입김이 적지 않음을 수월하게 알
수 있다. 일단 서점에 가서 보면 유명한 클래식 음악해설서는 거의 대부분이 일본의 것들을 번역한
것들이다. 나도 어렸을 땐 그러한 책들을 거의 달달 외우다시피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지금 읽어보니 구역질이 몰려온다. 일본식 한자들과 일본식 번역문이 난무하고 심지어는 사실과 다른 정보도 적지 않다.

 음악 교재는 또 어떠한가? 피아노를 예로 들어 보자.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피아노 교육은 초지일관 바이엘-체르니 100-30-40-50 코스를 그대로 쓴다. 부분적으로 바이엘을 대체하는 교재들은 여러 종류가 있고 여러 곳에서 쓰이지만, 체르니의 저 코스는 아직도 일반인의 피아노 실력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 체르니의 연습곡들 자체가 엉터리라고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다. 중요한 사실 첫째는 저것이 구한말에 건너온 일본의 방식이었다는 걸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저자인 체르니조차 저런 방식으로 교재를 사용하라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다시 저 체르니 교재들을 보면 알겠지만, 저기에 수록된 곡들은 대부분이 템포가 무식하게 빠르다. 체르니가 요구하는 테크닉들을 빠른 템포와 올바른 주법으로 쳐낼 수 있을 때 목표가 달성되는 것인데, 느리게 치든 잘못된 터치로 치든 일단 완곡만 하면 다음 곡으로 패스한다. 그런데 체르니 교재들에 들어있는 곡들은 목표가 오로지 테크닉 연마이기 때문에 음악적인 감성이 전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러니 초등학교 중,고학년 정도 되면 피아노 그만두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는 아이들과 부모들의 광경이 예나 지금이나 숱하게 보인다. 재미가 없는데, 미쳤다고 계속 하겠는가?

 그 뿐만이 아니다. 전공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아이들은 작품들의 악보를 대부분 일본인이 편집한 태림판 악보부터 본다. 일단 악보값이 싸고 동양인의 체질에 맞는 핑거링을 쓴다는 등의 이유로. 그러나 이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클래식 음악은 엄연히 서양음악이다. 당연히 서양의 권위있는 전문가들이 편집한 악보로 배우는 것이 타당하다. 처음부터 일본의 방식으로 시작해서, 작품을 치면서도 일본식 방법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의 판소리를 일본인에게 배우는 꼴이요 성경의 표현을 빌자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꼴이다. 이런 환경에서 세계의 정상급 콩쿨을 휩쓸고 다니는 괴물들이 화수분처럼 끝도 없이 나오고 있는 것은 기적이다!(물론 최근 10여년 동안 체계적인 한예종의 영재 커리큘럼이 크게 기여하기는 했다)

 바이올린을 봐도 마찬가지다. 피아노에 체르니가 있다면, 바이올린에는 스즈키와 시노자키가 있다. 이 교재들을 몇 권까지 나갔느냐로 실력을 가린다. 진짜 우스꽝스런 일이다. 바이올린도 피아노와 마찬가지로 최근에 걸출한 연주자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나오고 있는데, 교재의 “국산화”는 정녕 불가능한 걸까? 바이올린의 경우에는 내 분야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쓰여온 그 일본인이 쓴 교재들이 얼마나 좋고 나쁜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굳이 일본의 교재로 악기를 배워야 하는가 하는 의문 말이다.

 지금 엘리트 연주자들의 수준은 대한민국이 일본의 수준을 넘어선 지가 오래다. “클래식 한류”라는  표현은 이제 식상할 정도다. 그런데 쓰이는 교재들이 일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때로는 화가 난다. 무엇이든 도식화해서 주입식으로 만들어버리는 일본의 방식은 이제 졸업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싶다. 한국인의 기질은 도식화된 주입이 잘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부터 가르치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자 한다. 그리고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 나라의 유능한 젊은 연주자들이 한 명이라도 더 교수직에 임용되길 바란다. 정통으로 음악을 배운 그들의 선순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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