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마드뮤지션 Oct 31. 2019

숨기고 싶지만, 또 알아줬으면 좋겠는데…

지천명을 지난 베토벤의 담백한 내면의 고백, 피아노 소나타 31번


 누가 나에게 32곡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중 가장 좋아하는 곡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망설임없이 31번을 꼽는다. 언제 들어도 좋지만 난 가끔씩 베토벤의 이 말년 작품이 마치 나와 한 몸인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앞선 글에서 나는 베토벤 교향곡 2번을 듣고 베토벤이라는 이 거인이 내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피아노 소나타 31번을 들을 때면 베토벤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믿음직한 멘토처럼 느껴진다. 교향곡 2번은 현재의 나와 비슷한 나이에 쓴 작품이고, 피아노 소나타 31번은 그의 말년에 쓴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간추리자면, 30대의 베토벤과 50대의 베토벤은 둘다 내게 친밀하게 다가온다는 것. 그리고 이 두 작품에는(다른 작품들도 대동소이하겠지만) 20년이 넘는 시간차가 있어도 하나의 공통적인 내러티브가 있는데, 바로 베토벤의 멘탈이 바닥을 쳤을 때 쓴 곡들이라는 것이다.

https://youtu.be/Xv-uEXy1UDM

베토벤:피아노 소나타 31번 Ab장조 op.110

다니엘 바렌보임, 피아노



 악보를 보고 얼른 알 수 있는 피아노 소나타 31번의 가장 큰 특징은, 피헌정자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베토벤은 이 곡을 써서 바로 출판사에 넘겼지, 어느 누구에게도 헌정하지 않았다. 이건 팩트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넘기기엔 적잖이 의미심장하다. 그리고 곡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략 그 이유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베토벤의 전투적이고 당당한 이미지와는 달리, 그의 지극히 내밀한 내면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20세기 전반에 걸쳐 베토벤 소나타 해석의 권위자로 존경받은 피아니스트 빌헬름 켐프는 “이 곡은 베토벤의 가장 은밀한 고백”이라 지적한 바 있다. 자연스럽게 깊이 생각하게끔 만드는 악구들이 가득하기에, 베토벤의 진정한 내면의 모습이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분명 러블리한 주제를 던져주지만 그 안에 감질나게 슬픔을 살짝살짝 드러내는 1악장, 뭔가 신경질적으로 퍼부어놓고 뒷수습이 안돼서 얼버무리듯이 끝나는 2악장, 그리고 아리오소와 푸가라는 상반된 음악 양식(전자는 자유롭고, 후자는 엄격하다)을 한 악장에 병치하면서 담담하게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는 짙은 페이소스를 지닌 3악장을 거쳐오면 듣거나 연주하는 자는 작곡가의 내면을 일대일로 눈을 보면서 마주하게 된다. 모든 걸 오픈하고 솔직하게 다가오는 사람, 설령 베토벤 같은 위대한 인물이 아니더라도 그 누가 거부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란 누구나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내면 버림받을까 두려운 것이 원초적인 본능. 작곡가가 자신의 작품을 누군가에게 헌정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엔 신뢰감이 두텁게 형성된 친밀한 사람에게나 하는 행위다. 베토벤은 누군가 자신의 말못할 어려움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우면서도 또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바랬던 겉 같다. 그래서 누구에게 헌정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피헌정자 없이 출판사에 바로 넘겨버린 것 아닐까?


 이 곡을 작곡할 당시, 베토벤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몸 곳곳이 성한 곳이 없었으며, 동생이 형 베토벤에게 자신의 아들의 친권을 넘긴다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는데, 제수인 요한나라는 여인이 거기에 불복해 5년 가까이 법정에 끌려다니면서 번아웃이 온 상태였다. 설상가상으로 베토벤이 승소하여 조카를 데리고 와서 양육했지만, 조카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만 치고 다녔다. (여성비하발언이 될까봐 상당히 조심스러운 발언이기는 하지만) 갈등의 상대가 애엄마이면 정말 힘들 때가 많다. 더군다나 상대가 막무가내로 막 나오면 몸과 마음에 엄청난 과부하가 걸린다. 지금 내가 그런 상황이다. 애엄마라는 여인이 별것도 아닌 오해 가지고 막무가내로 나올 때의 그 난감함이란 정말 대책이 없다. 그 상황 가운데 지천명의 나이를 지난 베토벤의 관조적이고 담담한 음악으로 풀어내는 담백한 이야기는 내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위로를 준다. 지금 내가 처한 상황에, 나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속된말로 “다 부셔버릴거야”라고 생각할 만큼 말이다. 이런 정신 못 차리는 나의 내면 속에 베토벤은 피아노 소나타 31번으로 조용히 끓어오르는 내 내면을 달래 주고 있다. 이것이 바로 “늙은 말의 지혜”인 것일까? 이 곡을 더 듣고, 더 열심히 연습해야겠다. 이 순간, 소나타 31번을 나의 이야기로 풀어내고픈 열망이 점점 뜨겁게 올라온다.

매거진의 이전글 토스카니니를 넘어선 사나이,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