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가 사망한 그 나이의 나의 단상
지금 내 나이 서른다섯(한국 나이로는 서른여섯이다). 그런데 올해가 유난히 지내기가 힘겨운 느낌이다. 나이가 먹을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하지만, 올해는 예외인 것 같다. 아직도 11월인가 싶다. 나에게 연초부터 불운한 일들이 뻥뻥 터졌고 멘탈은 극히 무기력해져 우울증 치료를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그 와중에 건강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건 참 다행이다. 그런데 어느 날 지인이 카톡을 보내 왔다. 탈베르크가 편곡한 모차르트 “레퀴엠”의 라크리모사 피아노 버전을 쳐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라크리모사는 모차르트가 “레퀴엠”을 쓰면서 앞 열두 마디까지 쓰고 세상을 떠난 부분이다. 뭔가 번쩍하는 기분을 느꼈다. 지금은 11월이고 모차르트의 사망일은 12월 5일인데, 지금 내 나이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 나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모차르트의 이미지는 밝고 명랑하다는 것이다. 거기에 가끔 극단적인 슬픔이 녹아든 몇몇 곡들이 우리에게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내게는 특히 올해, 모차르트 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밝고 명랑한 곡들에서조차도 마냥 기쁨만을 느낄 순 없었다. 본래 배후에는 항상 옷깃을 여미게 하는 애수가 깃들어 있는 것이 또한 모차르트의 음악인데, 이러한 면이 내게는 늘 고성능 현미경으로 뭔가를 관찰하는 것처럼 분명하게 내 가슴 속에 박혀들어오곤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차르트라는 인물은 너무나 불행한 삶을 살다간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아예 생계형으로 여행을 다니면서 건강을 다 망쳤지, 윗사람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성격 때문에 젊은 시절 고용주에게 폭행까지 당했지. 거기다가 좀 살만해지니 이제는 도박에 빠져 버는 돈보다 쓰는 돈이 더 많은 삶을 살면서 그것을 무식하게도(?) 엄청난 작곡량으로 이겨내려고 하다가 결국 번아웃으로 세상을 떠난 인물이 모차르트다. 이건 범상한 세상 사람들이 감당 못할 광기어린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난 자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는 음악에 관한 한 시대를 백 년은 앞서간 인물이었다. 그런데 장성한 모차르트는 한동안 고향 잘츠부르크에 갇혀 있어야 했고 오스트리아 중부의 이 작은 시골도시는 모차르트라는 거인을 품을 그릇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를 갈며, 목숨을 걸며 잘츠부르크를 탈출해 빈으로 간 것이다. 그런데 잘츠부르크를 직접 가보면, 이 작은 도시는 모차르트 홀로 먹여살리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츠부르크의 낭만적이고 아기자기한 풍경에 감동을 받다가도, 모차르트를 살아생전 푸대접했던 도시가 모차르트의 이름을 팔아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뭔가 뒷맛이 씁쓸해지는 느낌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이래저래 모차르트만 생각하면 머리로는 몇백 년 전에 사망한 인물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늘 가슴이 아려오는 “원치 않는 오지랖”을 스스로 부리게 되는 날 발견한다. 여기에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모차르트는 바로 지금의 내 나이에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내게 있어 모차르트는 자신을 품을 수 없는 세상에 스스로를 구겨 넣다가 일찍 갔다는 느낌이다. 물론 사망 당시의 그의 나이가 당시 유럽 남성의 평균수명은 간신히 채웠다고는 하지만, 당시는 신생아 사망률이 지금보다 압도적으로 높던 시기다. 살아남은 사람들 중 오래 살 사람들은 오래 살았다. 베토벤만 해도 모차르트보다 20년 이상 더 살았고, 모차르트에게 아버지뻘이었던 하이든은 70대 후반까지 살았다. 나의 2019년이 이렇게 힘든 건 영혼이 지금 내 나이에 사망했던 모차르트에게 반응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비록 지금의 30대는 그 때 당시와는 개념이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는 아직 미혼이고, 어디서 큰어른 대접 받을 위치도 아니다. 아직 갖추어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느껴질 때가 다반사인데, 그 위대한 모차르트는 내 나이에 죽었다. 좀 억지로 끼워맞춘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유달리 올해 모차르트가 나에게 다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마냥 억지 논리만은 아닌 것 같다.
빈의 슈테판 성당 바로 옆에 있는 모차르트 박물관 피가로하우스에 가보면 모차르트가 여행한 도시가 연도별로 쭉 나와 있는 전시물이 있다. 나는 여행할 때 그것을 사진으로 남겨놓았다. 지금 돈과 여유가 있다면 그 코스 그대로 다 여행해보고 싶다. 그런데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설령 최고급 대형 세단 벤츠 s클래스를 렌터카로 빌려서 저길 다 다닌다고 해도 워낙 지역이 광범위하기 때문에 극도의 피로감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여행 코스가 모차르트가 어릴 때부터 다닌 연주여행 코스다. 최신 운전장비들과 안락한 서스펜션으로 무장한 신차로 돌아다녀도 피곤할 판에 덜컹거리는 마차 따위에 의지해 저 코스를 다 다녔으니, 단명에 안 가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거기다가 빈에 정착한 후의 모차르트는 그야말로 워커홀릭이었다. 두세 곡을 동시에 쓰는 건 다반사였고 돈이 되는 건 닥치는 대로 다 하고 살았다. 앞서 언급한 “레퀴엠”은 익명의 돈많은 백수(?)가 선불로 거액을 던져놓고 청탁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 요청을 받을 당시 이미 모차르트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바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일단 덥썩 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부탁을 받고서 모차르트는 작업에 바로 착수할 수 없었다. 오페라 “마술피리”와 클라리넷 협주곡의 작곡과 초연을 다 끝낸 다음에야 모차르트는 비로소 레퀴엠 작곡에 착수할 수 있었다. 이미 번아웃되어버린 몸을 이끌고 레퀴엠을 쓰기에는 시간과 기력이 모자랐다. 결국 모차르트는 “라크리모사”를 쓰는 도중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모차르트 : 레퀴엠 d단조 K.626 중 "라크리모사"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스웨덴 방송합창단
바이에른 방송합창단
써놓고 보니 내 스스로도 유난히 이 글이 맥락없이 중구난방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를 구한다. 범상치 않은(불행한) 삶을 살다가 딱 지금의 내 나이에 간, 특히 그 기일이 시나브로 다가오는 모차르트에게 느끼는 복잡다단한 감정을 풀어본 것이다 보니 글이 정제된 상태로 쓰여지기가 어렵다. 아니, 이 상태로 논리적으로 정리된 상태의 글이 나오는 것이 (적어도 내게는) 비정상일 것 같다. 곧 다가올 2019년 12월 5일, 딱 내 나이에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의 기일 그 당일에 내가 느낄 감정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