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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Nov 24. 2019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위상?

오페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서는 모차르트에 이를 수 없다!


 지인 중에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재미있게 치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그 음악들에 숨어 있는 매력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서 나와 공유하곤 한다. 가만히 보면 좀 신기한 현상이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전체 음악사적인 위상과 사람들의 인식이 뭔가 좀 복잡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웬만한 사람들은 모차르트 소나타를 쉽게 여기거나 심지어 별볼일 없는 음악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것 없는 모양이다. 이걸 두고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은 따끔하게 일침을 가했다 “아이가 치기엔 쉽지만, 어른이 치기엔 너무나 어려운 음악이다.” 전공자들에게도 이런 현상은 큰 그림으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전공자들은 일반인들과 달리 모차르트 소나타가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너무나 어렵다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모차르트 소나타를 경외감으로 대하는 경우는 (적어도 내 주위에서는) 의외로 많이 보지 못했다. 조금 래디컬하게 표현해서 “별 매력도 없는데 어렵기는 더럽게 어렵네”이런 느낌이랄까?

https://youtu.be/bZZqSZqJz4Y

모차르트 : 피아노 소나타 8번 a단조 K.310

다니엘 바렌보임, 피아노


 이건 정리하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라는 화두를 두고,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노는 상황이다. 나도 이런 문제에 대해서 피아노를 치는 사람으로서 많은 고민을 했던 바 있다. 나 역시도 모차르트 치기가 꺼려질 떄가 많다. 이건 둘 중 하나의 경우다. 음악 자체에 매력을 못 느끼거나, 내 실체(?)가 자비없이 노출되어버릴까 두렵거나. 그런데 좀 거시적으로 바라보니 입장 정리가 된다. 어쩌면 나의 실제 연주 행위나 레슨할 때와 크게 관련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의 전체적인 위상을 생각해보면 나름대로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간추려 이야기하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들은 모차르트의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서 차지하는 중요도가 높지는 않다. 이건 팩트다. 모차르트의 주력분야는 어디까지나 오페라였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의 음악들은 오페라에 쓰인 어법을 적극적으로 차용해서 응용한 성격이 강하다고 봐야 한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를 비하하자는 것이 아니다. 차로 비교해 보면, 현대자동차의 주력 모델은 그랜저, 쏘나타, 싼타페, 아반떼 등이 있다. 그런데 현대자동차의 라인업에는 저 차종들 외의 수많은 다른 모델들이 존재한다. 판매량 통계를 찾아보면, 현대자동차에서 저 네 차종이 전체 현대차 판매량의 절반을 훌쩍 넘어간다. 그렇다고 다른 차종들이 다 품질이 떨어지는 차들인가? 그건 아니다. 정말 안 팔리지만 품질에서 저 네 차종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차종도 있다. 모차르트도 마찬가지다. 모차르트의 작품목록은 쾨헬번호 기준 무려 626곡에 이른다. 저 수많은 곡들 중 모차르트가 가장 공을 들인 분야가 오페라이고, 실제로 그의 오페라들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성공을 거뒀다. 즉, 모차르트는 어떤 음악을 접하더라도 오페라라는 전체집합 안에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다시 피아노 소나타로 화제를 전환해 보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는 모차르트의 인생에서 상당히 산발적으로 쓰인 작품들이다. 베토벤의 그것처럼 뭔가 강하게 응집된 느낌이 아니다. 쉽게 말해 모차르트가 좀 “힘을 빼고”쓴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쓰다 보니 모차르트 특유의 번뜩이는 아이디어들도 요란하게 등장하는 느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숨어서 등장한다. 


 그런데 모차르트 소나타를 모차르트의 작품목록에 한정하지 않고 건반음악사라는 카테고리에서 보면, 중요도가 엄청나게 막중해진다. 일단 모차르트 시대는 현재의 피아노라는 악기의 위상이 요즘 같지 않던 시절이었다. 아직까지는 하프시코드가 건반악기의 주축이었고 따라서 현대적 피아노의 폭넓은 다이내믹을 낼 수 없었다. 그런데 주지했다시피 모차르트는 오페라의 어법을 다른 장르에도 녹여내려 했던 작곡가였기 때문에, 당연히 표현의 욕심이 많았다. 그런 과정에서 모차르트는 분위기를 고조시키려는 의도로 스케일을 상당히 많이 사용했고, 극히 섬세한 아티큘레이션을 음악 안에 지시해 놓았다(모차르트 소나타를 한 곡이라도 공부해 보면 너무나 섬세하고 오차없는 아티큘레이션 처리에 기가 질린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모차르트 소나타는 탄탄한 테크닉적 기본기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며, 기본기 연마용 교재로서 바흐 인벤션과 신포니아, 평균율과 대등한 수준의 중요도를 가지고 있다. 당시 건반악기의 표현 영역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쥐어짜낸 엄청나게 섬세한 악보의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기본기 연마용 교재가 된 셈이다. 이것 또한 자동차와 운전에 비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차를 좀 안다는 사람들은 첫차 사는 사람들에게 “범퍼카”가 되어도 좋을법한 중고차를 권하는 경우가 많은데, 면허를 갓 딴 초보운전자가 제로백 3~4초를 찍는 고성능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건 의외로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엑셀페달을 조금만 밟아도 용수철처럼 튀어나가는 차를 초보운전자가 무슨 수로 능숙하게 다루겠는가? 모차르트는 아직은 완전히 뿌리내리지 못한 당시의 건반악기의 기능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꼭 필요한 기본테크닉을 가득 담아놓은 것이다. 마치 10년을 탄 고물차를 능숙하게 운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https://youtu.be/ySp3eOQLqg8

모차르트 : 피가로의 결혼 K.492

리카르도 무티, 지휘

빈 슈타츠오퍼



 이제 결론을 내 보자.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들은 모차르트의 작품목록 안에서는 중요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건반음악사에 있어서는 막중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투트랙으로 생각해 보면 생각이 좀 정리가 된다. 그래도 모차르트 소나타를 치거나 들으면서 별 매력을 못 느끼겠다면? 듣거나 연주하는 행위를 잠시 멈추고 오페라를 한 곡 골라 들어보자. 시간 없으면 아리아 몇 곡이나 서곡만이라도 좋다. 그리고 다시 피아노 앞으로 돌아와 보자. 음악이 달리 보일 것이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자신의 오랜 파트너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리허설 중 모차르트가 자신이 없다고 호소하자 “아버님이 성악가이시고 너도 노래 잘 하잖아. 딱 그거 상상하면서 하면 돼”라는 아주 심플한 코멘트를 남겼던 바 있다(손열음은 클라라 주미 강이 그 코멘트 한 마디에 차원이 다른 소리를 내 줬다고 회상한다). 이말인즉슨 모차르트는 모든 길이 오페라로 통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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