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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Dec 08. 2019

낭만주의 음악의 보혁갈등 사용설명서

핵심은 알고 보면 다 섞여있다는 것!



 바흐가 확실히 틀을 만들고 베토벤이 그 틀의 완성도를 극대화시킨 독일-오스트리아계 음악의 계보는 슈베르트까지는 그것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이렇게 과거와 틀은 대동소이한 채로 내용만 눈에 띄게 바뀌어가던 낭만주의 음악은 1810년을 전후로 출생한, 빽빽하게 몰려 있는 낭만주의 음악가들(멘델스존, 베를리오즈, 쇼팽, 슈만, 리스트, 바그너, 베르디 등)이 등장하면서 각자의 강력한 개성을 무기 삼아 치열한 파벌경쟁을 펼치게 된다. 각기 개성이 너무나 뚜렷하여 각자의 매력이 넘치는 이 작곡가들은 크게 나눠서 “브람스파”와 “바그너파”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등)는 고전적인 틀은 지키는 범위내에서 음악을 만들어낸 좀 보수적인 트렌드였고, 후자(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 브루크너, 말러 등)는 기존의 틀을 부정하고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음악을 추구했던 진보적인 트렌드였다. 이들의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물론 이전 베토벤의 시대에서도 이런 유사 부류의 대결구도는 있었다. 베토벤과 활동시기가 정확히 겹쳤던 베버가 베토벤을 작정하고 디스하는 상황은 있었지만(베버가 베토벤의 교향곡 7번을 듣고 “이 인간이 드디어 미쳤구나”며 작정하고 까버린 일화 등등) 베버는 절대로 베토벤을 뛰어넘을 수는 없는 인물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의 대결은 서로 대등한 힘을 가지고 장군멍군을 외치는, 말 그대로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했다.

https://youtu.be/45mWi4qY5v0

브람스 : 교향곡 1번 c단조 op.68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그 계보를 살펴보자. 브람스 파는 빈 음악계를 펜대로 좌지우지했던 보수적인 음악평론가 에두아르드 한슬리크(1825~1904)가 브람스를 바그너 파의 대항마로 내세우면서 형성된 파다. 한슬리크는 모차르트를 매우 높게 평가했고, 고전주의 음악 양식에 경도된 학자였다. 그런데 한슬리크의 등장 이전, 유럽 음악계의 주도권은 바그너 파에 약간이나마 쏠려 있었다. 바그너의 혁명적인 오케스트레이션 기법은 온 유럽을 뒤집어 놓았고, 점점 더 시민들의 참여도가 높아지던 당시의 민중들의 반응도 날이 갈수록 열광적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한슬리크는 어린 시절 바흐와 베토벤만 엄격하게 배우면서 성장했던 신인 음악가 브람스를 전면에 내세워 바그너 파와 전면적인 대결을 선포한다. 여기에 고전적인 양식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멘델스존과 그의 절친 슈만은 전폭적으로 브람스를 지지하면서 브람스의 선배인 이들이 브람스 파로 분류됐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브람스 파에 힘이 실린 의미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독일 낭만주의 시대의 최고의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1830~1894)는 바그너의 제자로서 열렬한 바그너 파의 거두였고, 리스트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로서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결혼했다. 그런데 코지마가 바그너와 불륜을 저질러 바그너의 부인으로 환승을 해버리는 엽기적인 일이 일어나고 말았으니, 이 충격은 뷜로에게는 엄청나게 큰 것이었다(바그너가 누구냐는 질문에 그의 대답 “내 와이프의 남편이오!”). 이 충격으로 인해 뷜로는 바그너와 손절을 해버리고, 브람스 파의 지지자로 돌아서게 되었다. 정치역학적으로 본다면, 과거 후삼국시대에 치열하게 대립했던 견훤과 왕건의 싸움 끝에, 견훤이 왕건 밑으로 자존심 죽이고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대사건이었던 것이다. 이 거물급 지휘자가 브람스 파로 돌아선 사건은 분명 브람스 파에게는 결정적인 터닝포인트였다는 것. 이 외에도 독일 낭만주의의 브람스 파와 바그너 파에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은 흥미로운 것이 너무 많아 모두 언급하려면 밤을 새도 모자른다!


 그런데 좀더 크게 보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가십거리로나 흥미가 있지, 음악적으로 들어가보면 사실 크게 의미가 없다. 그들이 두 파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웠다고 해도, 요즘 사람들이 누구나 브람스를 좋아하면 바그너를 싫어하고, 바그너를 좋아하면 브람스를 싫어하는가? 그런 구도 자체가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음악적으로 따져보면 정말 복합적이다. 간단히 설명하면, 브람스 파에 속한 음악들은 겉모양은 보수적이지만 속은 매우 진보적이고, 반대로 바그너 파에 속한 음악들은 겉모양은 상당히 파격적이지만 속은 반동적이라 할 정도로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 차에 비교해 보자. 브람스 파는 디자인은 오랫동안 비슷한 형태를 유지하면서 파워트레인, 편의장치를 바쁘게 업그레이드하는 차에, 바그너 파는 오랫동안 파워트레인과 편의장치를 비슷한 형태로 유지하면서 디자인을 자주 바꾸는 차에 비유할 수 있다. 메이저급 자동차 회사만 봐도, 저런 형태의 특징을 회사 철학처럼 쭉 가져가면서 한치의 양보없는 판매경쟁을 벌인다. 여기서 그 어느 쪽 차를 나쁘다고 말할 수 없듯이, 음악도 마찬가지다. 결국엔 내용이 중요한 것이다. 그들은 두 개의 파로 나뉘어 경쟁하면서도 서로의 장점은 거리낌없이 흡수했다. 이건 피아노를 쳐 보면 느낀다. 슈만이나 브람스의 작품들을 연주해 보면 겉으로는 온건한 모양을 하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 정말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한다. 반대로 리스트의 작품을 연주해 보면 처음 악보를 받아들었을 때 몰려오는 멘붕이 장난이 아니다. “대체 이걸 어떻게 쳐내란 말야?” 따위의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치다 보면 사용한 화성은 거의 모차르트 시대 수준으로 심플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복잡해보이는 기교를 상당히 단순한 패턴으로 풀어 놓는다. 이것이 핵심이다. 다 섞여 있다. 말러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쯤 가야 비로소 둘 다 진보적으로(복잡하게) 변한다. 그 마무리는 쇤베르크의 12음기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 진보의 끝판왕인 쇤베르크는 브람스를 존경했다는 괴랄한(?) 기록이 있다. 실제로 쇤베르크는 브람스의 피아노 쿼텟 g단조를 관현악곡으로 편곡하면서 브람스의 원곡 속에 숨겨진 래디컬한 혁신성을 재조명한 바 있다.

https://youtu.be/W8EQcMurhAI

바그너 :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과 사랑의 죽음

게오르그 숄티, 지휘

빈 필하모닉


 서로 처절하게 물어뜯고 싸웠던 브람스파(보수)와 바그너파(진보). 그렇지만 이런 대결구도는 적어도 현재 시점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고, 되레 정반합(서로 모순되거나 대립되는 두 의견을 절충해서 둘을 모두 포괄하는 결론을 내리는 방식)의 모범사례가 될 뿐이다. 이들의 뿌리는 모두 바흐와 베토벤인데, 나눠 본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좀 괴랄하고 아스트랄한 결론을 내려본다. 늘 진영논리로 물어뜯고 싸워대는 정치인들이 클래식 음악, 특히 낭만주의 음악들을 좀 많이 듣고 공부하면 좋겠다. 뜻있는 정치인이 새로운 정치를 하고자 할 때, 인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면 나는 기쁜 마음으로 강의를 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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