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차이는 아무것도 아닌 음악적 견해의 차이
결국 결론은 정반합이다
지금 현재 누군가와 관계를 정리하고 싶은가? 정말 간단하고 효과 만점인 방법이 있다. 정치 이야기, 종교 이야기를 하면 된다. 불과 1시간 전까지 자석처럼 붙어 죽고 못사는 사이였더라도 정치적 견해 혹은 종교적 견해가 충돌해서 소원해지는 경우는 숱하게 많이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냥 각자의 이념을 존중해 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것의 전제조건은 웬만해서는 정치, 종교 등의 화제를 아예 입에 올리지 않는 것이다(견해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다면 예외지만). 서로 성향이 확연히 다른데 그 주제들을 입에 올렸다간 “갑분싸”되기 딱 좋다. 이런 상황이 우리 주변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영향력 있다는 사람들이 묘하게 선동하는 데 기인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전 정부의 교육관련 관료 한 사람이 “민중은 개돼지”라고 발언했다가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던 바 있는데, 이건 표현방식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그렇지 사실 완전히 틀린 이야기는 아니라고 보여진다. 사회적 리더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99퍼센트의 평범한 사람들은 뭔가 선동하는 바가 있으면 “팔랑귀”가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다만 그 정보를 받아들인 다음 얼마나 자체 필터링을 할 수 있느냐의 개인적인 능력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데 음악의 흐름을 쭉 살펴보면, 이러한 이념차이와는 질적으로 다른 무수한 근본적인(또는 세부적인) 대립들이 존재한다. 정치, 종교와 같은 이념차이는 차라리 어느 정도 이분법적으로 구분할 수 있어 상당히 간단하지만 음악적 견해 차이는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내가 보기에 이러한 이분법으로 구별할 수 없는 세부적인 음악적 견해의 대립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인물은 딱 한 사람, 바흐밖에 없다. 그렇기에 “음악의 아버지”라는 명예로운 칭호가 붙은 것 아니겠는가. 첼리스트 요요마가 역설한 바 “바흐가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는 발언은 바로 이러한 면을 뒷받침하는 아주 심플하고도 강력한 발언이다. 바흐를 기준으로 그 후대의 음악가들 가운데 바흐를 대놓고 비판한 인물은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내에서는 단 한 사람도 찾을 수 없다.
반면 동서고금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천재 모차르트와 악성이라 일컬어지는 베토벤조차 이러한 이념 차이에서는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근거가 있다.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기본적으로 존경하면서도 모차르트의 짧은 아티큘레이션과 우아함을 강조하는 견해에 반대 입장을 밝히면서 유려한 레가토를 강조했고, 모차르트가 평가절하해버린 클레멘티를 높이 평가했으며, 쇼팽은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들을 가리켜 지나치게 연주효과만 노렸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여기에 음악사적인 대립의 핵심, 낭만주의 시대의 바그너파vs브람스파의 대립은 더 이상 재론할 필요도 없다. 그 뿐인가. 동갑내기 베르디와 바그너의 대립도 볼 만하다. 베르디는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의 오페라에 현실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소재로 음악을 쓰고자 노력했고, 바그너는 독일의 신화를 대거 차용한 곡들을 쓰면서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해 본의 아니게 정치적으로 대립하기도 했으며, 멘델스존은 바그너에 의해 완전히 사상적으로 난도질을 당했던 바 있다. 또 조금 깨는 이야기이지만, 뛰어난 지휘자였던 말러는 브람스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자신의 활동에 조직적인 방해공작을 당하기도 했다. 가히 요즘의 더불어민주당vs자유한국당의 대립 정도는 신사적으로 보일 만한 피터지는 대결이 음악사 전체를 놓고 있어왔던 것이다. 이런 유명한 거물들까지 갈 것도 없다. 음악 좀 공부했다는 사람들끼리 음악 얘기를 해보면 정말 견해들이 천양지차로 다르다. 예를 들면 피아노를 배우는 데 있어서 체르니와 하농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들이 백해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나는 후자에 속한다). 신기한 건 이런 정도의 견해차이는 정치, 종교 이념 대립처럼 서로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크게 일어나는 일은 (개인적으로는) 별로 보지 못했다는 것.
이것의 근거는 있어 보인다. 이런 음악적 대립들은 늘 시간이 지나고 보면 정반합의 결론이 내려지곤 해왔기 때문이다. 음악사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앞서 언급한 음악가들은 서로에게 날선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면서도, 근본적으로 서로에 대한 존중을 잃지 않았던 훈훈한 미담도 못지않게 많다. 이런 면이 있었기에 수많은 다른 견해에도 불구하고 그 음악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정치나 종교의 이념적 대립은 화두가 “지금 현재”이다. 그러니 미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란 필드는 말 그대로 “빅데이터의 집합체”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흘러오면서 쌓여 있는 데이터들이 알아서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해오면서 현재까지 전해져 왔다. 그렇게 살아남은 데이터들이 서로가 화학작용을 해서 정반합의 결론이 나온 것들로만 현재 남아 있는 것이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음악적 견해가 다른 것은 서로 존중하면서, 왜 정치, 종교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들 헐크로 변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가. 나부터 반성할 문제다. 그리고 구조적인 문제도 있다. 이걸 디테일하게 언급하면 또 이념갈등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으니 자세한 언급은 생략한다. 다만 음악사를 좀 더 거시적으로 바라보자는 얘기는 꼭 하고 싶다. 현재의 이념갈등 따위는 아무것도 아닐 수준의 세부적인 대립들을 거치면서 살아남아온 음악들을 접하는 마당에 당장 1미터 앞에 보이는 이념적 이슈 따위로 서로 처절하게 물어뜯는 행위, 좀 유치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