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과소평가된 인물을 위한 변론
리스트 : 단테 소나타
클라우디오 아라우, 피아노
일단 고해성사하듯 고백한다. 나는 리스트를 “극혐”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외적인 효과만 노린 듯한 그의 작품들은 내게 있어 잔뜩 꾸미고 나오는 아이돌들의 이미지와 하등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전공자와 비전공자의 시절을 모두 경험한 나의 인생 가운데 비전공자 시절에 한정된 이야기다.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선생님은 자유곡 영역에서 리스트의 2개의 연주회용 연습곡 “숲속의 속삭임”을 내 주셨다.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 높은 곡이라는 이유로. 거기에 선생님은 하나의 이유를 더 더붙였다. “너의 음악성을 믿는다”. 전자의 이유는 이해가 갔다. 그때만 해도 리스트는 윗소리만 쨍쨍 잘 내주면 정말 잘 치게 보인다는 철석 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그런데 후자의 이유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리스트에 음악성이?? 그런데 입시 연습이 시작되고 1주일도 안 되어 이 생각은 산산조각이 났다. 어떻게 보면 무지였고, 어떻게 보면 교만이었던 것이다. 이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리스트는 알려진 바대로 “날라리 딴따라”가 결코 아니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리스트를 그렇게 취급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죄악이다. “날라리 딴따라” 였더라면 지금 이 시간 현재 그렇게 막중한 비중으로 이름이 남아 있겠는가. 여기에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은 자신의 저서 “뮤직, 센스와 넌센스” 에서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중부 유럽, 네덜란드와 북유럽의 청중들은 리스트의 이름이 연주회 포스터에 오르기만 해도 짜증을 내는 경향이 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베토벤 소나타가 연주될 경우 청중은 귀를 닫아버리고 자신들이 리스트에 대해 갖고 있는 모든 편견을 그 연주에 투사하는 것 같다. 소위 그의 허장성세라는 것, 피상성, 싸구려 감상성, 형식 없음, 효과만을 위한 효과를 얻으려는 노력 등. 그래서 청중은 리스트를 찬양하는 피아니스트를 진지한 고전주의의 해석자로 여길 수 없다고 여긴다. 사람들은 리스트 본인이 자기 시대의 베토벤 헤석자로서 최선봉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내가 리스트를 싫어했던 원인은 알고 보면 8할 이상이 앞서 브렌델이 언급했던 허장성세, 피상성, 효과를 위한 효과 등등에 포커스를 맞추어 리스트를 치는 경향 때문이었다. 심지어 일급 피아니스트들에게도 그런 부분을 수없이 느꼈을진데,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아노 전공생들이나 손가락 꽤나 돌린다는 취미생들은 말해 무엇하랴. 아예 그들의 생각은 리스트는 그냥 과시용이라는 생각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박혀 있는 것 같았다. 단지 개인별로 “자기 PR”에 능하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나도 입시곡을 받기 전까진 정확하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나는 성격상 근본적으로 외향적이고 요란하고 질서 없는 것을 몹시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당연히 리스트가 싫을 수밖에 없었다.
리스트 : 2개의 전설 중 "물위를 걷는 성 프란치스코"
알프레드 브렌델, 피아노
그런데 입시곡으로 내 손에 주어진 그 에튀드는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정서적으로 섬세하고 깊은 면이 있었다. 도저히 꽝꽝거리면서 칠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곡이었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이 곡은 리스트 작품들 가운데 테크닉적으로는 상당히 쉬운 편에 속한다. 그렇지만 리스트가 여기서 만들어 놓은 이야기들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것이 못 된다. 파리도 미끄러질 듯한 매끄러운 레가토를 잔뜩 먹이고 존재감 있게 나오는 주제선율을 그 누가 가볍다 할 것이며, 산속 깊은 곳에서 아기자기하게 흐르는 계곡물을 표현한 16분음표 셋잇단음표 음형들은 비록 계속 반복되는 단순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그 어느 누가 가벼운 마음으로 뽑아낼 수 있는 심상이던가. 그리고 리스트의 작품들을 큰 틀에서 쭉 살펴보면, 말년으로 갈수록 그 깊이가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각별하다. 예를 들어 대규모의 캐릭터피스의 집합 “순례연보”와 같은 경우 외형적으로 너무 화려해서 부담스럽기보다는 오히려 문학적이고 암시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쉽게 친해지기 어렵다고 봐야 한다. 이 곡집 안에 들어 있는 “단테 소나타”의 경우는 음대생들의 졸업연주에서 정말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곡인데, 개인적으로는 졸업연주에서 함부로 다뤄서는 곤린한 곡이라고 본다. 제대로 연주하면 물론 더없이 좋지만, 이 곡이 품고 있는 깊이를 간과하고 외형적인 화려함으로만 승부를 보려는 생각들이 너무 티나게 보일 떄가 많기 때문이다. 역시 순례연보 안에 들어 있는 “에스테 장의 분수”, 10개의 시적이고 종교적인 선율, 2개의 “전설”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찬란한 영감, 종교적인 거룩함, 문학적인 사색이 짙게 뭍어나오는 엄청난 깊이감을 가진 곡들이다. 낭만주의 피아노 소나타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b단조 소나타는 더 말해 무엇하랴. 리스트 작품들 가운데는 이렇게 음악 자체의 존재감부터 “나는 차력쇼용 음악이 아니다”며 강력하게 역설하는 곡들이 즐비하다. 여기에 리스트의 인성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스트를 난잡한 사생활에 허세만 가득한 캐릭터라고 오해하고 있는데, 절대로 아니다. 낭만주의 시대 뿐만 아니라 전 서양음악사를 통틀어봐도 리스트만큼 인성적으로 나무랄 데 없는 사람은 드물었다. 리스트는 자신과 음악적 견해가 달라 자신을 끊임없이 질투하고 공격했던 슈만, 브람스, 클라라 등등에 대해 언제나 존중을 잃지 않았으며, 자신의 제자라고 허위광고를 하고 리사이틀을 열려던 한 여자를 직접 찾아가 무료로 정성스럽게 레슨을 해 주고는 “이제 진짜로 내 제재가 된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했다는 훈훈한 일화도 전해진다. 이러한 일화들을 조금이라도 알고 공감한다면 리스트를 “날라리”처럼 연주할 수가 없다.
리스트 : 피아노 소나타 b단조
조성진, 피아노
알프레드 브렌델이 자신의 저서에서 날카롭게 지적한 바처럼, 리스트는 전설로 남은 인물임과 동시에 지나치게 과소평가되어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연주자들의 책임도 크다. 이 점을 역시 브렌델은 정통으로 저격한다. “리스트의 작품 가운데 신체적 기술이 주된 목적인 작품이 단 하나라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작곡가의 작품에서 손을 떼는 편이 좋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도 “가성비”라는 단어를 상당한 반도로 쓴다. 그런데 이 개념은 좀 신중히 사용할 필요가 있다. 물건을 살 때도 싸게 살 때는 싸게 사야겠지만, 제값을 지불해야 타당할 때가 있듯이, 리스트도 원래의 가치에 값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맞다. 그를 과시적이라 여겨 그런 방식으로 치는 행위는 좀 지양하자. 이런 풍토가 여태껏 만연해 왔으니, 이제부터는 리스트를 칠 때 그의 변호사가 되겠다는 마인드를 가져보자. 사실 어느 작곡가이든 마찬가지지만, 클래식 연주자는 청중의 편이냐 작곡가의 편이냐 사이에서 갈등될 때 초지일관 작곡가의 편에 서야 한다. 나는 아직까지 입시곡 한 곡 외에는 리스트의 작품들을 진지하게 장기간 다뤄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철저하게 리스트의 변호사가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