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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Jan 29. 2020

우리의 상식과 조금 다른 작곡가들의 진짜 모습들

후속편에 계속....

https://youtu.be/Ah392lnFHxM

바흐 :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

글렌 굴드, 피아노


1. 바흐는 엄격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자유롭다

 바흐의 별명은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음악의 아버지”다. 그런데 “아버지”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이 통상적으로 어떠한가. 싫든 좋든 엄격하고 쉽게 마주하기 어려운 존재의 이미지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래서 바흐의 음악들 역시 엄격하고 규칙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는 느낌이 있다.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바흐는 엄격한 만큼 자유롭기도 한 인물이고, 음악도 그러하다. 바흐가 만든 서양음악의 틀은 엄격하기는 하지만 울타리가 결코 좁지 않다.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서 최대한 자유롭게 움직인다. 이것은 바흐 음악이 가지는 엄청난 범용성과도 연관성이 있다. 아무 곡이나 한 곡 골라 원래 지시한 악기가 아닌 다른 악기로 편곡해도 멋진 음악이 나오고, 금성과 화성의 차이에 비유할 수 있는 각기 뚜렷한 개성의 연주자 두 명이 같은 곡을 자신의 해석대로 연주해도 역시 멋진 음악이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이며(예: 로잘린 투렉과 글렌 굴드가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심지어는 뒤에서부터 거꾸로 연주해도 완벽한 음악이 나오는 것이 바흐의 음악이다. 엄격한 규칙은 있으되 역설적으로 그것에 대한 완벽한 자유로움이 없으면 이런 무한한 범용성이 나올 수가 없다. 바흐의 키워드는 “엄격한 규칙 속의 무한한 자유로움”이며, 이것에 눈을 뜨고 제대로 느끼는 순간 누구나 바흐의 포로가 된다.


https://youtu.be/13ygvpIg-S0

베토벤 : 현악 4중주를 위한 대푸가 op.133

알반 베르크 쿼텟


2. 베토벤의 방향성의 종착역은 자유이며, 키워드는 웅장함이 아니라 슬픔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베토벤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어 있다고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은 베토벤의 음악이 고전적이고 단정하기만 하다고 여기거나, 무조건 웅장한 이미지로만 기억한다. 사실 이러한 점들은 베토벤의 음악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징들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베토벤의 음악을 꿰뚫어 설명할 수 있는 서술은 결코 되지 못한다. 베토벤은 서양음악 형식의 완성자임과 동시에 그것을 스스로 깨부숴버리기도 했던 인물이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베토벤이라는 인물은 평생 동안 최대의 자유를 이상적인 방향으로 음악 속에서 구현하는데 평생을 바친 인물이라는 증거다. 젊은 시절부터 소나타 형식이 한 악장도 없는 피아노 소나타(12번,13번)을 쓰기도 하고, 그 이전까지는 반주 악기에 불과했던 비올라의 역할 비중을 교향곡에서 대폭 확대시키는가 하면 만년에 가서는 쇤베르크도 울고 갈 전위적인 작품(예:현악 4중주를 위한 대푸가 op.133)을 쓰기도 했다. 베토벤의 지향점이 “완전한 자유”였음을 말해주는 뚜렷한 증거들이다. 또한 베토벤의 핵심 키워드는 웅장함이 아니라 슬픔이다. 이것은 귀머거리가 되어 고군분투했던 그의 하드캐리 인생을 반추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이것을 피아니스트 임현정은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베토벤은 알면 알수록 측은한 마음이 드는 작곡가다. 왜 그를 케어해 준 여인 한 명 없었을까? 그의 음악을 공부하다 보면 그를 돌봐주고 싶은 마음이 계속 생긴다”. 이러한 인생을 산 베토벤은 슬픔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고, 자신의 음악을 빌드업해가는 중심 축으로 삼는다. 이것이 눈에 보이면, 베토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온다. 


https://youtu.be/Bprpxux68hg

슈베르트 : 교향곡 9번 C장조 D.944 "더 그레이트"

게오르그 숄티, 지휘

빈 필하모닉


3.슈베르트의 지향점은 가곡이 종착역이 아니다

 31세의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600곡이 넘는 엄청난 양의 가곡을 남긴 슈베르트는 당연하게도 “가곡의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그가 독일 예술가곡이라는 필드에 남긴 업적의 무게감은 양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엄청나다. 그러나 슈베르트의 지향점은 결코 가곡이 종착역이 아니다. 가곡의 양이 워낙 많아서 그렇지 슈베르트의 작품 목록을 보면 기악곡들의 숫자도 결코 적지 않은데, 이 기악곡들을 큰 그림으로 보면 아직 완성되지 못한 그 어떤 지향점을 향해 나아가는 느낌이 분명히 있고, 그것의 종착역이 가곡이 아니라는 점이 느껴진다. 단지 가곡을 많이 썼기 때문에 가곡의 어법이 기악곡들에 많이 적용되어 있을 뿐이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슈베르트는 베토벤을 극히 존경했고 베토벤이 완성해 놓은 틀을 계승하며 발전시키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았다. 실제로 베토벤은 사망하기 불과 일주일 전 슈베르트 작품들의 악보를 받아들고 감탄하여, 자신을 찾아온 슈베르트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베토벤에게서 직접 인정을 받은 슈베르트의 인생에 꽃길이 펼쳐지나 싶었는데, 정작 슈베르트는 1년 뒤에 베토벤을 따라가고 말았고, 슈베르트가 추구했던 베토벤의 계승은 훗날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등의 몫이 되었다. 저승의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이란 자신의 별명을 크게 달가워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슈베르트의 목표는 가곡이 끝이 아니었다는 게 확실하기 때문이다.


https://youtu.be/NioAFJe5avg

멘델스존 : 현악 4중주 6번 f단조 op.80

아르테미스 쿼텟


4. 멘델스존은 자신의 배경이 오히려 명줄을 잡아당겼다

 동서고금 음악가들 가운데 멘델스존만큼 배경이 좋은 인물은 달리 없을 것이다. 집안에 돈도 많고, 주위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사회에서 한가닥 하는 거물들이었다. 그래서 멘델스존의 음악은 깊이가 없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것은 상당히 피상적으로 멘델스존을 이해한 것이다. 멘델스존의 인생을 큰 그림으로 놓고 봤을 때 그의 배경은 오히려 그가 음악가로서 대성하는 데 크나큰 장애물이 됐고, 결국 명줄도 잡아당겼다고 봐야 한다(38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 그는 살아서는 아버지의 완고함과 엄격함에 시달렸고, 자신보다 더 좋은 재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는 누나가 아버지의 완고함에 막혀 음악의 길을 제대로 걷지 못하고 결혼부터 한 것을 지켜봐야만 했던 안타까운 남동생이었다. 조금만 그의 음악을 자세히 들어보면 이러한 상황에서 방황했던 멘델스존의 격정과 번뇌가 이빨을 드러낸다. 언급하기가 민망해서(?) 뒷소문으로만 돌아다니는 느낌이 있지만, 멘델스존과 그의 누나 파니는 서로를 이성으로 봤다는 증거들이 상당히 많다. 완고한 아버지에게 맞서기 위해 남매가 각별하게 뭉친 것이리라. 어찌됐든 누나 파니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음악 활동을 재개하려고 했으나, 42세의 젊은 나이에 뜬금없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고 여기에 충격을 받은 멘델스존은 얼마 안되어 누나의 길을 급히 쫓아가고 말았다. 이러한 멘델스존의 비극은 죽어서도 계속되었으니, (돈많은)유대인의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바그너에게 난타를 당하고 세월이 지나서는 히틀러에게 매장을 당하고 말았다. 이정도 되면 금수저라고 부러움을 받는 배경이 발목을 잡다 못해 명줄도 잡아당기고 확인사살까지 해버린 셈이다. 멘델스존을 깊이가 없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자. 멘델스존을 한 번 더 죽이는 일이다!


https://youtu.be/gHZHy2B6MCc

쇼팽 : 피아노 소나타 2번 Bb단조 op.35

이보 포고렐리치, 피아노


5. 바흐와는 반대로 쇼팽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엄격하다

 언론이나 잡지 등이 만드는 프레임과는 별개로, 실질적으로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작곡가는 내가 보기에는 쇼팽이다. 자유로우면서도 섬세한 감성이 주는 그 독특한 맛은 중독성이 대단히 높다. 그러나 이 감성을 결과물로 만들어내기 위해 쇼팽이 사용한 방법은 사실 원래 엄격하다고 인식되어 있는 바흐가 울고갈 정도로 엄격한 감이 있다. 쇼팽의 작품들은 음 하나하나에 깊은 의미가 부여되어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테크닉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조금만 어긋나면 엉뚱한 음악이 나오기 일쑤인데, 잘못 연주하면 저렴한 느낌이 나는 음악이 나오거나 질서가 실종된 카오스 상태의 음악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내가 보기에는 서양음악사상 가장 엄격한 음악이 쇼팽이다. 자유를 표현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가장 엄격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작곡가인 것이다. 쇼팽이 엄격한 작곡가라는 사실은 전 세상을 요란스럽게 했던 피아니스트 이보 포고렐리치의 쇼팽 콩쿠르 결선 진출 실패에서 유추해 낼 수 있다. 연주곡의 제한이 없는 다른 콩쿠르와 달리 쇼팽 콩쿠르는 오직 쇼팽의 작품만으로 우승자를 가리는데, 1980년 대회에서 포고렐리치의 파격적인 연주는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크게 논란이 되어 심사위원마다 극과 극의 점수를 준 끝에 결선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쇼팽이 유무로 강조한 전통의 수호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쇼팽 콩쿠르의 성격이 포고렐리치의 개성적인 연주와 크게 충돌한 셈이다. 비록 포고렐리치는 이 사건으로 인해 해당 대회 우승자 당 타이 손보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스타덤에 올랐지만, 정작 포고렐리치는 아직 큰 트라우마가 남아 쇼팽 콩쿠르 본부에 채점표 공개를 요구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그냥 재미있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하고 넘기기에는 의미가 너무 크다. 쇼팽의 엄격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기에.

https://youtu.be/PfPBq_-6T7k

슈만 : 크라이슬러리아나 op.16

김규연, 피아노


6. 슈만은 밝아보이려고 노력할 때 오히려 더 슬프다.

 슈만의 음악은 변수가 워낙 많아 한두 가지로 꿰뚫어 정의하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최대한 압축하면 슈만의 내면 속 두 개의 자아,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의 병치 또는 대립에 아내 클라라의 존재가 주는 영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기서 플로레스탄은 밝고 충동적이고 외향적인 캐릭터를, 오이제비우스는 차분하고 사려깊고 내향적인 캐릭터의 아이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 또한 이분법으로 딱 구분하기가 어렵다. 앞서 언급했던 엄청난 변수들이 수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기할 점은, 밝아보이려고 애쓰는 듯한 플로레스탄의 캐릭터가 오히려 더 슬픔을 자아낸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밝아보이는 부분들을 자세히 보면 의외로 제한된 음역 안에서 음악이 맴도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극적인 다이내믹과 세세한 악상지시로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마디로 제한된 음역과 급격한 악상지시라는 모순되는 개념을 병치하고 있는 것이다. 여타의 음악들은 음역의 폭이 넓으면 자연스럽게 다이내믹의 지시도 폭이 넓은데, 슈만은 반대다. 밝은 분위기를 띤 악상이 좁은 음역 안에서 급격한 다이내믹의 변화를 지시한다. 이것을 찬찬히 음미하다 보면 최종적으로 남는 감정은 슬픔이다. 뭔가 응어리져 있는 감정의 오마쥬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은 내가 생각하기로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을 만났던 아내 클라라와의 연애시절과 관련된 응어리로 보인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선천적으로 타고난 강박적인 성격의 그림자라고도 볼 수 있겠다. 


https://youtu.be/K3pv6jebdFw

브람스 : 운명의 노래 op.54

에른스트-쉔프 코러스

베를린 필하모닉

클라우디오 아바도, 지휘


7. 브람스는 열등감을 자신의 음악의 모멘텀으로 쓴다

 내가 생각한 브람스는 선천적으로 열등감이 많은 사람이다. 일단 음침한 기후로 악명높은 함부르크가 고향인 브람스는 그 음악도 근본적으로 회색빛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람스가 위대한 음악가로서 이름 석 자를 새겨넣은 원동력에는 열등감을 창작의 모멘텀으로 삼는 지헤가 있었기 때문이다. 브람스는 자신의 성격과는 달리 밝은 음악을 쓴 모차르트, 비제, 요한 슈트라우스를 매우 존경했고 음악에 체코의 소박하고 밝은 정서가 듬뿍 담긴 후배 드보르작의 출세길을 직접 열여주기도 했다(드보르작이 자신의 악보를 짐로크 출판사에서 출판할 수 있도록 후원). 물론 브람스는 모차르트, 비제, 요한 슈트라우스 스타일로 음악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음악을 접하고 자신의 음악에 깊이를 더하는 지혜로움을 보여줬다. 거기에 브람스는 스승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를 평생 사모했는데, 이것은 사회 통념상 “금지된 사랑”이었기에 브람스에게는 또 하나의 열등감 요소였다. 이것까지 브람스는 자신의 음악의 깊이를 이루는 요소로써 활용했다. 브람스의 음악이 처음에는 친해지기 어렵다가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빠져드는 이유다.


<다른 작곡가들은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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