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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Feb 10. 2020

다비드 동맹을 피부로 체험하다

슈만의 마음에 한 발 더 가까이...



 슈만의 음악세계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개념인 “다비드 동맹”은 어떻게 보면 황당하고 썡뚱맞고 4차원적이기까지 한 개념이다. 다비드 동맹이란 슈만이 당시의 음악계의 보수성과 피상성을 공격하기 위해 가상으로(현실이 아니다!) 만들어 낸 동맹이다. 당연히 이 동맹 안에 실존하는 인물은 슈만 본인밖에 없다. 쇼팽, 부인 클라라, 베를리오즈, 베토벤 등이 이 동맹 안에 들어 있는데, 이 작용은 모두 슈만의 상상으로 이루어지고 실제로 이들이 이 동맹을 목적으로 만난 적이 없다(심지어 슈만이 활동할 당시 베토벤은 오래 전에 사망한 상태였다!). 그리고 이 동맹 안에서 슈만의 자아도 그 유명한 2개의 자아, 플로레스탄과 오이제비우스로 분리된다. 가히 잘 만들어진 SF영화나 판타지소설도 울고 갈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는 음악활동이다. 당연히 눈으로 뻔히 보이는 실체가 전혀 없고 따라서 이 개념들도 단번에 이해하기는 힘들다. 

https://youtu.be/sPgBDDSmsw4

슈만 : 다비드 동맹 무곡집 op.6

빌헬름 켐프, 피아노


 그런데 슈만의 곡들을 치는 것이 평생의 내 운명이라고 여기고 사는 나에게, 세상 돌아가는 모양새는 이 아리송한 다비드 동맹의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돕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슈만은 내 운명이다”는 생각을 굳혀주는 굵직굵직한 이벤트는 몇 번 있었다. 일단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교 시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날 몰입하게 만든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는 판타지슈티케 op.73을 비롯해, 어린이의 정경에 나오는 “트로이메라이”가 유명 피아니스트가 아닌 평범한 지방대 음대생의 연주로 내 숨소리를 하나하나 통제하기도 했고, 판타지를 치면서 가슴 아픈 사랑의 실패를 경험했고 그것을 해당 곡을 완성하는 영감으로 삼았으며, 독일 여행 중에는 예정에도 없던 슈만의 고향 츠비카우에 “상황이 그렇게 돼서” 자석처럼 끌리듯 발을 내딛은 적도 있었다. 특히 츠비카우에서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 자체가 한 명도 안 보이는 상태에서 슈만의 생가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그 벅찬 느낌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2020년 현재, 슈만이 다비드 동맹을 외치는 그 심경을 나는 연습실에서 체험한다!


 내가 피아노를 연습하는 장소는 전국 체인의 성인 피아노 학원이다. 전국에 지점이 있는 만큼 타지에 방문해도 짬을 내서 지점 찾아 연습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날 레슨해 주는 강사는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을 정도로 나와 케미가 잘 맞는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내가 피아노를 똑바로 치고 있는지 수시로 체크하기에 이보다 좋은 환경이 없다. 그런데 이런 장점이 있는 만큼 몹시 견디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다. 그 학원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는 몇몇 수강생들의 분위기다. 이들은 취미생들 가운데 나름대로 피아노를 좀 친다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피아노 연습보다는 친목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친목 그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지만, 이들을 옆에서 계속 보면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보다는 그저 겉으로 멋있어 보이는 데만 신경쓰는 것이 너무 눈에 뻔하게 보인다. 아무런 쓸데없는 스몰토크만 시끄럽게 오고 가고, 로비에 있는 피아노는 한마디로 난타를 당하고 있다. 그저 꽝꽝거리고 화려하게 치는 데만 관심이 있는 분위기란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박자고 악상지시고 처참하리만큼 무시하기가 일쑤다. 이렇게 치느니 차라리 체르니를 뚱땅거리는 것이 훨씬 낫다. 영혼이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고 그저 과시하려는 의도만 느껴지는 소음공해들. 그런데 더 환장할 노릇은 이렇게 꽝꽝거리고 빠르게 치는 영혼없는 연주들을 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한다 잘한다 하며 한껏 추켜세워 준다. 대체 뭐하는 짓인가?  정말 이런 광경을 볼 때마다 작곡가들의 무덤 앞에 가서 내가 대신 무릎꿇고 사과하고 싶은 심정이다.  물론 그런 행위도 그들의 즐거움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행위이기에 대놓고 비난을 할 수는 없다. 다만 좀 씁쓸할 뿐이다. 취미건 직업이건 간에, 음악이든 문학이든 미술이든 뭔가를 깊이 음미하고 이해하는 행위는 찌질한 행위로 전락해버린 건가? 그것을 초지일관 추구하고 그것만이 예술가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나 같은 사람은 시대에 동떨어진 꼰대인 건가?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예술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경외가 있는 자가 결국 위대한 예술가로서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이고, 그들의 공로에 힘입어 정신문화가 발전해오면서 이 세상의 정신적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슈만의 다비드 동맹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약간 분위기가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에 대한 성토로 갔는데, 결론은 이런 상황으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슈만의 본심에 더 가까이 접근한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달콤쌉싸름한 맥주처럼, 돌아가는 상황이 영 못마땅하다가도 거기서 발견하는 슈만의 마음이란! 슈만이 다비드 동맹을 통해 그랬던 것처럼, 내 마음 속에서도 여러 개의 음악적 자아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다만 그 토론의 결론들이 빨리 내 머릿속으로 전달이 되면 좋겠다. 그 컨셉에 맞춰서 잘 연습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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