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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Mar 28. 2020

언제까지나 테크닉은 음악성의 하위개념이다!

손은 뇌와 가슴의 오더를 벗어날 수 없다



 작년에 나를 찾아온 취미 레슨생의 이전 선생님 이야기를 들어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한두 마디 가지고 레슨 한 시간 내내 끌지를 않나, 테크닉이 부족하다고 딱 못을 박으며 뜬금없이 체르니 40번을 소환하지를 않나, 거기다가 “나는 되는데 넌 왜 안돼?”냐는 식의 고압적인 스탠스까지…이 선생의 영향일까? 그 레슨생은 미스터치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이 대놓고 보였다. 음악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인데 피아노에 대해 정이 떨어질까봐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 사람이 나에게서 레슨을 받기 시작하자, 나는 레슨 중에 테크닉적인 것은 거의 지적을 하지 않았다. 대신 철저하게 음악성 위주로 수업을 했다. 그러니 어느 순간 그가 스스로 “바흐 평균율을 다 배워보고 싶다”고 나에게 요청해 왔다. 이 요청을 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나까지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저 그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바흐 평균율을 테크닉적으로 접근하면 속된 말로 정말 “갈굴 꺼리”가 많다. 음대생들이 바흐에 대해 애증의 감정을 강하게 느끼는 것은 십중팔구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스스로 이렇게 요청했다. 저 사람한테서는 적어도 얼굴 붉힐 일은 없을 것 같은 믿음이 있었기에 그런 요청을 한 것 아니겠는가?


 네이가우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음악적 확신이 커질수록 기교적인 어려움은 줄어든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는 이 발언을 종교처럼 믿는다. 물론 계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리스트 에튀드를 당장 떡 주무르듯이 쳐낼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기본적인 테크닉을 어느 정도는 체득한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본인 피아니스트 우에다 아스시는 “체르니 30번을 마쳤다면 당신은 이미 피아니스트”라는 책을 쓴 적이 있는데, 물론 나는 체르니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목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핵심은 체르니 30번(정확하게 말하면 30개의 기계적인 연습곡 op.849)에서 다루는 수준의 테크닉을 익혔다면 작품을 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 주변에서 외국어를 현지 영화나 드라마로 배웠다는 썰들은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이 들을 수 있는데, 그것과도 같다. 교과서에 허구헌날 나오는 영어인지 한자어인지도 모를 문법용어들에 치를 떨다가, 방과 후면 집에 와서 계속 미드를 보다 보니 영어 마스터가 되어 결국 직업이 영어교사가 되고, 미국인과 결혼했다는 지인도 내 주위에 있다. 그리고 대학 시절에 많이들 가는 어학연수에서, 도서관에 틀어박혀 단어만 외우는 것보다는 현지인 친구들과 하루가 멀다하고 놀러 다니는 것이 영어가 느는 데 훨씬 좋다는 것은 상식이다. 전자는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니까. 피아노도 마찬가지다. 기초 테크닉이 뭔지를 안다면, 그때부터는 작품을 통해 응용된 테크닉을 자연스럽게 익히는 것이 정상이고, 이것이 테크닉적으로도 더 빨리 실력이 향상되는 지름길인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실 정답은 나와 있다. “선 테크닉 후 음악성”은 허구요, 잘못된 접근방법이다. 정확히 말해 잘못된 방법이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흥미를 떨어뜨리는 주범인 것만은 확실하다. “필요조건”은 어떤 조건이 확립되기 위한 최소한의 자격요건이고, “충분조건”은 그것을 풍성하게 채워주는 선택적인 요건이다. 당연히 필요조건이 우선이다. 그런데 한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서는 필요조건은 테크닉이 아니라 그 음악의 심상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테크닉을 필요조건으로 여기는 레스너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그것이 무조건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수많은 고난도 테크닉들이 몸에 자연스럽게 체득되어 있으면 어떤 곡이든 치기가 수월해지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니까. 그러나 여기에 불편한 진실이 하나 더 있다. “How to”를 질문했을 때, 많은 레스너들의 답은 그냥 “하농 쳐라, 붓점연습 해라, 체르니 쳐라” 이것이 전부인 경우가 너무 많다. 그들은 자세한 방법을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이정도 되면 그들부터 “How to”를 모르는 것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좀더 나아가면 무의식적으로 본인들의 레슨생들이 본인보다 더 잘 치게 되는 것을 질투해서 미리 벽을 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삐딱한 생각이 올라올 수도 있다. 


 원리는 간단하다. 손의 움직임이란 뇌와 가슴의 오더를 절대로 벗어날 수가 없다. 그것이 뇌이든 가슴이든 손은 수동적인 존재다. 뇌와 가슴의 이상을 따라가지 못해 낙오될 수도 있지만, 낙오된 걸로 끝이 아니다. 독려하면서 끌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딸려 오는 것이 손이란 녀석이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기초부터 배울 때는 선생님의 말씀이 곧 법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원리를 안다면 그 때부터는 선생의 역할은 방향성을 잡아주는 것이면 족하다. 테크닉은 그 음악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파악한 다음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즉, 테크닉이란 음악성이란 전체집합 안의 하나의 부분집합 또는 음악성의 하위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순위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물론 높은 수준에서 테크닉을 유독 강조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도 어디까지나 주어진 음악을 음악적으로 더욱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목표가 설정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효과적인 것이지, 테크닉을 위한 테크닉 연습은 정말 안 하는 것만도 못하다. 더욱이 이것을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한 목적이 된다면 그것은 최악 오브 최악이다. 연주하는 자의 임무는 작곡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정확하게 해석해서 전달하는 것이지, 연주자 본인의 곡예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배우는 선생님이 테크닉만을 강조하는 느낌이 든다면, 당장 그 선생님에게 질문하자. 공격적인 질문을 할 필요도 없다. 그저 치다가 막히는 테크닉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자세히 질문하면 된다. 평소에 테크닉을 강조하는데, 그에 대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하라는 대로 하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이런 식으로 나오는 선생님이라면, 일말의 의심도 없이 확신컨데 그 날로 손절해도 좋다. 그리고 음악의 방향성을 제대로 제시해 주는 선생님을 찾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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