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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드뮤지션 Feb 24. 2020

슈만의 숨겨진 캐치프레이즈-일감 몰아주기는 NO!

조화와 공존을 추구한 음악계의 이상주의자



 음악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슈만의 음악은 “가성비가 안 좋다”는 말들이 가끔 들린다. 그래서인지 낭만주의 작곡가들 치고는 상대적으로 인기도가 없는 감도 있다. 그런데 이건 전혀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이 문장은 슈만 음악의 어떤 중요한 특징 하나를 정확하게 표현한 워딩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드시 정확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슈만의 음악들을 잘 보면, 그 어떤 곡들도 특정한 악기나 성부가 확 돋보이게 되어 있지 않다. “일감 몰아주기”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 의 경우 막판에 1분이 넘는 피아노 솔로가 나오는 등 피아노 반주의 비중을 대폭 높여놨고 따라서 피아니스트와 성악가가 똑같이 중요한 비중을 가진다(이는 다른 가곡들도 마찬가지다). 또한 피아노 곡들을 봐도 슈만의 음악은 과시적인 기교가 사용된 곳이 거의 없다. 그 뿐인가, 협주곡들의 경우는 협연 악기가 오케스트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끔 되어 있다.

https://youtu.be/cor-5Cps3uU

슈만 :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 op. 48

이안 보스트리지,테너

쥴리우스 드레이크, 피아노


 이러한 경우들을 잘 보면, 슈만은 분명 의도적으로 뭔가가 튀는 것을 절대적으로 틀어막고 있다. 이것은 그의 음악관과 인생의 행보들에 기인하는 것이다. 슈만은 바흐와 베토벤, 슈베르트를 존경했으며 그의 활동기간 당시 유행했던 과시적인 음악이나 연주들을 혐오했다. 그리고 또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 것이 있다. 일단 슈만이 정신질환자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주변의 음악가들에게 용기를 주고 그들을 알뜰살뜰 챙기는 모습을 보였으며, 슈만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음악가들이 으쌰으쌰하며 아름다운 콜라보를 많이 만들었다는 사실은 의외로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이것은 확실하게 짚어놓고 넘어가야 슈만의 음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슈만이 “음악신보”라는 잡지를 발간하여 그가 쓴 글빨로 음악계에서 자리 잡은 동료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많다. 일단 쇼팽과 브람스, 베를리오즈가 그 최대의 수혜자다. 뿐만 아니라 슈만은 그간 묻혀 있던 음악가들과 작품들을 발굴하고 그것들을 열심히 알린 업적도 수도 없이 많다. 일례로 슈베르트가 온당한 대접을 받게 된 건 슈만의 “하드캐리”에 힘입은 바가 크다. 간추려 말하면, 슈만은 자신이 뛰어난 음악인이었으면서도 결코 “내가 낸데” 컨셉으로 살아가지 않았으며, 항상 동료들을 챙기려고 노력했던 따뜻한 인성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의 인생은 언제나 조화와 공존이었으며, 이 철학을 바탕으로 한 음악을 쓰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성격을 가진 슈만은 가상의 음악가 동맹 “다비드 동맹”을 통해 과시적이고 외향적인 음악 사조에 날카롭게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심지어 그 대상에는 리스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슈만은 리스트의 능력을 충분히 인정하고 높이 평가했지만, 그의 음악 사조에 대해서는 뚜렷한 반대 입장을 취했다. 늘 조화와 공존을 추구하던 슈만에게 극단적인 비르투오시티를 추구한 리스트는 노선이 완전히 반대였던 것이다. 이러다 보니 슈만의 음악에선 특정 악기의 맹활약이나 특정 성부의 몰아주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슈만이 존경한 바흐의 경우는 한 번씩 특정 악기가 돋보이는 곡들을 쓰기도 했다. 예를 들어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여섯 곡의 경우 각 곡별로 다른 악기들이 자신의 명인기를 마음껏 뽐내기도 한다. 그런데 슈만은 아니다. 강박적이다 싶을 정도로 특정 악기나 특정 성부가 부각되는 것을 경계하고, 심지어는 알토 성부에 코어한 자신의 의도를 슬쩍 숨겨놓기도 한다(이러한 방법은 슈만의 영향을 받은 브람스가 아예 대놓고 쓴다!).

https://youtu.be/Ynky7qoPnUU

슈만 :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54

마르타 아르헤리치, 피아노

리카르도 샤이, 지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이러한 슈만 음악의 특징에서 내가 느끼는 건, 참 민주적인 음악이라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비정함이 보이지 않아 음악이 참 따뜻하게 느껴진다. 아무리 격정적이거나 슬픈 분위기가 지배하는 음악이라도, 슈만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따뜻한 느낌은 어느 곡이든 전혀 반감되지 않는다. 사실 이러한 덕목은 모차르트와 베토벤이 이미 즐겨 쓴 바(특히 실내악에서)인데, 슈만은 낭만주의의 시류에 편승해 이것을 버리기는커녕 더 정교한 방법으로 충실하게 계승하고 발전시켜 놓았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낭만주의 시대는 확고한 자기 PR이 미덕인 시대였다. 이런 사조 가운데 슈만은 모든 성부와 모든 악기가 고르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고 그것을 성공적으로 자신의 음악에 구현해 냈다. 혹자는 슈만의 교향곡이 관현악법적으로 좀 설익었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고, 그 근거도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슈만은 조화와 공존이라는 철학을 교향곡에서도 너무 강박적으로 구현하려고 한 나머지 결과물이 조금 유연하지 못했다고 본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만이 남긴 네 곡의 교향곡들은 충분히 뛰어난 음악들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슈만이 추구한 조화와 공존은 슈만 음악을 표현하는 데 가장 최상의 도구였을지도 모르겠다. 슈만만큼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어 하는 작곡가가 어디 있는가? 나는 다른 사람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 많은 이야기를 다양한 내용과 다양한 목소리로 다 해내려면, 반드시 조화와 공존이 필요했을 터.


 조화와 공존으로 설명할 수 있는 슈만 음악의 특징은 알고보면 축복 그 자체다. 이 캐치프레이즈 아래 예술가곡 분야의 획기적인 패러다임이 만들어졌다는 건 특기할 만한 사실이며, 다른 분야에서도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명작들이 대거 만들어졌다는 데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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