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킬로스의 노래; 그대, 빛나기를
그대, 빛나기를
<세이킬로스의 노래>는 서기 150년 경 남겨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지중해 문화권의 음악이다. 영어로는 Seikilos Epitaph, 즉 ‘세이킬로스(의) 경구시’ 혹은 ‘세이킬로스(의) 비문’으로 불린다. 악보와 가사 전체가 남아있고 복원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으로는 인류 음악사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시리아에서 확인된 기원전 1400년경 추정 악보 ‘니깔을 위한 후르리인의 찬가Hurrian hymn to Nikkal’ 등이 더 오래된 것이지만, 악보와 가사 전체가 남아있지 않고 언어의 번역 등이 원활치 못해 온전한 음악으로 복원은 어려운 상황이다.
세이킬로의 노래 비문이 새겨진 묘비석은 현재 터키 아이딘Aydin 인근에 위치했던 고대 그리스 도시 트랄레스Tralles 유적지의 한 무덤터에서 발굴되었다. 트랄레스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위치했던 당시 주요 도시 에페수스와 멀지 않은 곳이다.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고대 그리스 문자로 새겨져 있다. “나는 묘비이며, 이미지이다. 세이킬로스가 나를 여기 세웠다. 죽음 없는 기억의 영원한 상징으로서.”
묘비석에 새겨진 각각의 가사 위에 고대 그리스 악보 표기체계에 따라 문자와 부호로 멜로디가 표현되어 있다. 음악은 아주 짧은 편인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그대 살아있는 동안, 빛나기를
너무 슬픔에 젖지 말기를
삶은 찰나와 같고
시간이 마지막을 청할지니
이 음악과 묘비 문구는 세이킬로스라는 사람이 사랑하는 ‘유테르페Euterpe’를 기리며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시와 음악의 뮤즈였던 유테르페에게 공헌된 음악으로 판단되기도 한다. 묘비 마지막 부분은 ‘세이킬로스로부터 유테르페에게’ 혹은 ‘유테르페의 세이킬로스’로 판독될 수 있다. 여신을 위한 의례라기보다는 아내 혹은 어머니를 위한 음악이라는 해석이 더 힘을 받는데, 아마 그 가사와 멜로디에서 느껴지는 묘하게 아련한 감성을 연구자들도 느끼는 게 아닐까 싶다. 짧지만 많은 것을 담아낸 듯한 가사를 잘 되새겨보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가 격렬한 슬픔에 오랜 시간을 힘들어한 후 다다른 초연함 같은 것이 느껴지는 듯하다. 다음은 필자가 상상해본 세이킬로스의 이야기이다.
[술에 찌들어 폐인도 그런 폐인이 없었다. 먹는것 자는것 일하는것 어느하나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그런 나날들을 보내며 세상을 원망도 했고 살아갈 이유에 대한 존재론적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죽는다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두려워했으며 삶의 덧없음에 한탄도 하였다. 시나 음악, 술이나 친구가 잠깐의 위로는 되어도, 금세 몰려드는, 밤만 되면 커지는 그리움과 허함에 몸부림쳤다. 그러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나자, 삶이 궁금해 깨달음을 좇기 시작했고, 죽음이 궁금해 신앙에 의지하기도 했다. 그런 방황을 하길 오래, 그 모든 슬픔과 허탈함을 초월한 상태에 가까워진 한 사람은, 깊어진 눈동자와 부드러워진 얼굴로, 수천년을 넘나드는 짧은 음악 하나를 남기게 된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세이킬로스의 노래를 커버하였는데, 그중에 가레스 코커(Gareth Coker)가 편곡하고 에럴리 브라이튼(Aeralie Brighton)이 부른 버전을 추천하고 싶다. 가레스 코커는 대중 비디오게임 OST분야의 대표적인 작곡가이며, 에얼리 브라이튼은 게임 음악의 목소리로 잘 알려진 가수이다. 에얼리는 특유의 음색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잘 살리기 때문에 고대 배경의 판타지 영화음악에 어울리는 색깔을 지녔다. 다양한 분야에서 OST 가수 및 성우로 활동 중인데, 디즈니사 정글북, 태양의 서커스, 헝거게임 테마파크 등에 그녀의 목소리가 등장한다. 가레스와 에얼리가 함께한 세이킬로스의 노래는 정보평등, 도시계획, 교육 등에 사회공헌도가 높은 비디오게임 ‘마인크래프트’에 삽입되었다.
이 음악은 고고학도로서 부끄럽지만 최근 유학생활을 하며 알게 되었다. 채사장의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라는 책을 통해 접했는데, 듣자마자 세이킬로스의 깊은 슬픔과 고뇌, 그리고 초연함이 느껴지는 듯했다. 과거 연구자가 흔히 하는 고대에 대한 막연한 선망과 미화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우리는 알고 있다. 만든이 혹은 부른이의 감정과 인생, 메시지가 깊이 스며든 음악은 왠지 모를 공감과 감동을 절로 일으킨다는걸..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는 반드시 읽어보길 권해드린다.
채사장이란 사람은 한때 돈벌기에 혈안이 된 사람이었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에서 아버지의 죽음, 교통사고에서 눈앞에서 죽어간 회사 동료들, 이런 사건들을 겪으며 의식과 윤회 등을 공부하게 된다.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우울증을 겪어내며 각종 분야에서 종합한 자신만의 철학을 대중들과 나누게 되었다. 그가 참여한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지대넓얕) 팟캐스트도 꼭 들어보길 권해드린다. 채사장 같은 이들이 하고있는, 인류의 다양한 세계관, 이야기 그리고 삶에 대한 발굴과 대중들과의 나눔.. 필자가 고고학을 통해 하고 싶은 바이기도 하다.
다시 세이킬로스의 노래로 초점을 돌려서, 사랑과 죽음에 대해 필자가 해온 생각을 풀어내보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필자를 보며 걱정을 하지 말길 부탁드린다. 유학생활하며 우울함에 시달리는 것도, 이상한 세계관에 빠진 것도 절대 아니니까 말이다. 고고학을 시작한 것도, 계속하며 보람을 느끼는 지점도, 바로 사랑과 죽음에 대한 계속되는 건강한 고민이 원동력 중 하나이다. 고고학을 전공할 것인지 고민하던 대학생 때, 어떤 책에서 “고고학은 죽은 이가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를 살려내는 학문이다”라는 구절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수천년전 유물과 생활 흔적을 살펴보며 그 당시 사람이 어떤 모습과 생각, 어떠한 사랑을 했을까 그려보곤 한다.
인류 역사 수백만년, 현재 살아가는 수십억명의 사람들, 모두 다양한 사랑을 하고 저마다의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져왔다. 영원성을 탐닉하고 갈망하며 신앙에 기대고 종교를 구축하며 신과 전생과 사후세계와 윤회와 부활과 아트만과 영혼과 천국을 그려내었다. 이렇게 나름 탄탄하게 구축했다 믿은 한 사람의 믿음의 성은, 가장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의 슬픔과 상실감으로 인해 순식간에 송두리째 휩쓸려 버린다. <맛지마 니까야> 경전의 한 이야기에서, 붓다는 자식을 잃고 모든 의욕을 잃어 미친사람처럼 떠돌아다니며 울기만 하는 한 남성을 만난다. 부처님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는 사랑과 행복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절망, 그리고 고통이 생겨나게 된다”라고 말해준다. 남성은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며 부처를 무시한다.
<슬픈 불멸주의자>라는 책에서처럼, 인간의 불멸에 대한 아련한 추구는 파멸적인 상황을 이끌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동력이 되기도 했을까? 중세의 암흑을 걷어낸 단테의 작품들은 너무도 사랑한 베아트리체의 죽음과 그에 대한 승화가 없었으면 만들어지기 어려웠을까? 삶은 찰나와 같다..너무 슬퍼하지 마라..그대여..빛나라! 세이킬로스는 괴테(‘파우스트’ 인용)처럼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싶었을까?
[오, 이 미혹의 바다에서 벗어나길..이 보배롭고 아름다운 시간을 그런 우울한 생각으로 망가뜨리지 마세! 오, 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대지를 박차올라 언제까지나 태양을 쫓아갈 수 있으련만! 순간이여, 멈추어라! 정말 아름답구나!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장엄한 감정들은, 지상의 혼란 속에서 마비되어 버리는 것을..환상이 기대에 넘쳐 대담하게, 영원을 향해 활짝 나래를 펴다가도, 행복이 시간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하나둘 좌초하면, 작은 공간에 만족하기 마련..그러면 수심이 금방 마음속 깊이 둥지를 틀고서, 남모를 아픔을 만들어 내고, 불안하게 요동치며 기쁨과 평온을 방해하노라..]
부처님과 괴테, 그리고 세이킬로스의 말을 생각해본다. 너무 슬픔에 젖지 말기를, 찬란히 너 자신의 빛을 가꿔가길, 따스히 위로하며 이야기해 주는 듯하다. 석가모니는 자신의 마지막을 지키며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그리 슬퍼하느냐,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것이다. 마음을 잃지 않고, 자신과 올바름을 등불 삼아 매일 정진하면, 누구나 평온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따스히 말해주었다. 베르베르의 <신>에서 죽음의 공포와 맞서며 주인공들은 “사랑을 검으로, 유머를 방패로”를 외쳤다.
걱정의 안개에 휩싸여 아름다운 순간을 놓치지 말고, 지금 마음껏 사랑하고, 빛나는 삶을 같이하라! 세이킬로스의 당부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