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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Sep 29. 2020

장미처럼 피어나길

이름의 신비

 "어머, 이름이 장미에요? 부모님이 정성 들여지으셨나 봐요. 이름이 정말 예뻐요!”

“저도 남편이 장 씨였으면 딸 이름을 그렇게 지을 수 있었을 텐데…. 와! 이런 독특한 이름 마음에 쏙 들어요. 많은 꽃 중에서도 장미라니, 이렇게 낭만적일 수가!”


 나와 통성명을 한 사람들의 반응이다. 그때마다 난 겉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속으론 절규한다. ‘네, 그랬으면 저도 참 좋겠습니다!’


 실제 내 이름은 미정이었지만 장미라고 쓰기로 마음먹은 건 중학생 때였다. 사춘기가 한창인 소녀의 여린 감성과 자존감이 이름에 얽힌 진실을 마주하고 무너져 버렸던 그 날. 그날은 학교에서 체육대회를 준비하던 날이었다. 운동 종목과 참가자, 연습 장소, 준비물 예산 등을 정하는 회의를 마치고 선생님께 받은 회의록엔 유독 “미정”이라고 채워진 칸이 많았다. 정말로 내가 이 모든 부분을 준비해야 하는지 부담스러워서 엄마에게 도움을 구했다. 그러자 엄마는 웃으며 내 이름이면서 내 이름 아닌 "미정"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고, 이내 내 마음의 호수에는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는 작은 돌멩이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큰 바위가 쿵 떨어져 버렸다.


 어이없는 진실의 시작은 1982년 말. 엄마의 임신을 축하한다며 진숙 아줌마가 포대기와 신발, 양말 등등 선물을 한 아름 사 들고 왔다. 진숙 아줌마는 엄마의 절친한 친구이자 능력이 뛰어난 보험설계사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이미 친구라는 이유로 몇 개의 보험을 들어줬기에 이번엔 거절할 참이었다. 그러나 아줌마는 역시 보험 판매의 달인이었다. 엄마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상품을 딱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얘, 우리 공부할 때 힘들었잖아. 네 아이는 나중에 꼭 대학교 보내야지. 저기 어디 시골 알부자라도 된다면 논마지기나 소 돼지 팔아서 자식을 대학교에 보낼 수 있지만, 우리는 아니잖아. 미리미리 돈을 모아놔야 해. 대학 등록금이 얼마나 비싼데! 이 교육보험이라는 건 말이지….”


 딸 많은 집의 맏이로서 가정 경제의 기둥이 되기 위해 공부를 포기하고 일찍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엄마. 그 경험 때문에 자식은 꼭 대학에 보내겠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마침 대학 학비를 모을 수 있다는 보험이라니.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귀인이 속삭여주는 인생의 성공비법처럼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엄마가 넘어올 것처럼 보이자, 진숙 아줌마는 그 자리에서 결국 보험가입서에 서명을 받아냈다. 하지만 중간에 위기의 순간도 있었으니, 바로 피보험자 이름을 써야 할 때였다. 당시 엄마는 내가 아들인지 딸인지 몰랐던 상태라 특별히 이름을 지어놓지 않았다. 엄마가 머뭇거리자 아줌마는 모처럼 잡은 실적 하나를 놓칠세라 선수를 쳤다.


 “이름은 걱정하지 마. 일단 오늘은 내가 서류에 미정(未定이라는 의미로)이라고 쓰지만 수정할 수 있어. 출산 후에 아들이든 딸이든 잘 어울리는 이름 지어서 나한테 알려주면 돼. 아직 반년도 더 남게 남았으니 이름 지을 시간은 충분하네!”


 그렇게 엄마는 피보험자 “미정”으로 보험에 가입했다. 그 후 매달 보험료를 받으러 온 진숙 아줌마는 편의상 배 속의 아기를 “미정이”라고 했고 엄마는 어느새 “미정 엄마”로 불리게 됐다. 그리하여 반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엄마와 나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진숙 아줌마에서 동네 사람들, 그 외 지인들로 늘어났다. 여름이 오고 마침내 내가 태어났다.


 시골에서 장손의 첫 아이를 보러 올라온 증조할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 아이가 딸이라는 사실에 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이름 지을 의욕조차 없었던 이유는 그 실망감 때문이었으려나. 이미 동네에서 “미정 엄마”로 불리는데 무슨 이름을 새로 짓냐면서 그냥 그대로 하자는 게 집안 어른들 생각이었다. 계집아이니까 돌림자를 쓸 필요도 없고, 그냥 소리에 맞춰서 여자 이름에 흔히 쓰는 한자만 넣으면 쉽지 않냐면서. 엄마 아빠는 정해놓은 이름이 있었지만, 아들을 낳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할아버지의 의견에 반대하지 못했고, 결국 할아버지는 이름 칸에 아름다울 미(美)와 곧을 정(貞)을 써서 내 출생신고를 했다. 대충 지은 것이 참으로 분명하긴 하지만, ‘고모 이름 지을 때보다는 훨씬 신경 써서 지은 걸 거야’하고 생각하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참고로 우리 고모 이름은 장래식이었다. 십여 년 전에 개명했지만, 아직도 친척들은 고모를 장래식으로 부른다. 아무리 철자가 다르다고 해도 “장례식”하고 비슷한 그 이름.


 “아이가 학창 시절 놀림받을 걸 전혀 고려하지 않은 가혹한 이름이에요! 고모가 너무 불쌍해요!”


 고모가 불쌍하다며 분개했던 나도 결국은 똑같이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한 이후, 과연 나는 환영받지 못한 아이였던 걸까 의심하며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아름이, 사랑이 등 뜻이 좋고 소리까지 예쁜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워서 그들에게 심통을 부리기도 했다. 태어난 첫날부터 모두가 아꼈을 것 같은 그 친구들을 나 한 명 정도는 미워해야 세상이 공평하지 싶었다.


 이름에 관한 속설을 들었을 땐 ‘사람은 이름대로 산다는데, 그럼 아름이는 아름답게 살 테고, 사랑이는 열렬히 사랑하며 살겠네. 그럼 난? 엉겁결에 지어진 이름인데, 원래 뜻대로라면 아무것도 확실한 거 없이 그렇게 인생 살다가 가라는 소리인가!’ 하고 덜컥 겁이 났다. 물론 그런 속설을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 이름에도 어떤 희망과 기대가 스며있었다면... 그래서 그것이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신비한 힘을 불러온다면... 그런 신비한 힘에 기대어 행운을 바라는 마음에 누구나 좋은 이름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난 스스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장미정-이 세 글자가 내 이름이지만 한 글자를 떼면 장미가 된다. 물론 한자로 따져보면 꽃 이름과는 다르지만 아무렴 어떠한가. 난 장미의 탐스러운 꽃봉오리를 좋아하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 코끝에 와 감기는 진한 향기도 좋아한다. 한 글자만 떼는 간단한 개조를 통해 그 꽃과 같은 이름을 얻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나는 내 이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요즘도 업무 중에 “행사 장소 미정”, “담당자 미정”, 이런 내용의 문서를 받게 되면 얼굴이 빨개지거나 괜히 무안하다. 그런 걸 보면 나는 아직 이름 콤플렉스를 완벽히 이겨내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나를 장미라고 불러줄 때마다, 나를 장미로 소개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모든 긍정 에너지를 담아서 내게 주문을 건다. ‘장미처럼 피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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