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에 실패하는 눈높은 구직자들이 으레 그렇듯 나도 눈만 높았다. 런던의 좋은 대학에서 석사를 땄다는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연봉 얼마 얼마 이하 직장엔 시선도 주지 않던 나는 금융권 취업에서 연달아 실패했고, 번역하다 알게된 교포 친구의 제안으로, 되면 되는거고 안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항공사에 지원했다. 얼떨결에 합격해서 트레이닝을 받고 시작한 일은 예상보다 훨씬 힘들었다. 5년 전 영국으로 오기위해 독일에서 거절했던 연봉의 반절도 되지 않는 봉급에 몸을 고되게 움직여야 했고, 밤낮이 뒤바뀌어 수면장애까지 얻었다. 결국 퇴사를 여러번 고민했었지만 그럴 때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을 자주 만날 수 있다는 절대적 장점 때문에 떠날 수가 없었다. 연차가 쌓이며 일과 시차에 좀 적응이 되고 난 후엔 그 밖에 다른 장점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퇴근 하고 집까지 일거리 생각을 가져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 매일 출근하지 않으니 내 시간에 계속 공부를 하고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 게다가 매번 비행 때마다 홍콩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이 즐거웠다.
어쨌든 애증의 대상이었던 회사. 그 애증이 걱정으로 변한 건 코로나 바이러스로 여행, 항공 업계가 큰 타격을 입기 시작한 2020년 3월 즈음해서부터다. 몇 달을 버티고 버텼지만 결국 홍콩 신문에도 크게 발표가 났다. 8500명 감원. 정리해고 대상인 직원들은 이미 오늘 이메일로 해당 사항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나는 해외 베이스 직원이기 때문에 오늘의 정리해고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전체 감원 인원의 10퍼센트는 해외 직원이라고 하니 마음 놓을 상황은 아니다. 회사에서 베이스를 닫는다는 이메일이 오지나 않았을까 매일 아침 이메일 앱을 열어보는 손가락이 불안함을 가득 담았다.
겨울옷을 꺼내려 창고 정리를 했는데 유니폼이 나왔다. 전엔 일하는 날이 돌아오면 그저 피곤하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이 유니폼을 입고 비행하는 날이 다시 돌아올까 하는 생각뿐이다. 블라우스도, 치마도, 재킷도 꺼내서 손으로 쓸어본다. 육아 휴직 중이라서 지금까지 창고 안에서 잠자고 있던 내 날개옷. 손으로 전해지는 그 촉감이 오늘따라 차갑고 생경하다. 비행하며 했던 일들을 곱씹어 보았다.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하는 안전 장비 체크부터 안전 방송, 식음료 서비스, 착륙 후 승객이 모두 내리고 나서 하는 분실물 체크까지. 어느새 당연하게 내 일상의 부분으로 스며들었던 비행. 두 나라에 발을 걸쳐놓고 살며, 뭉게뭉게 퍼지는 구름 아래 새하얀 설산의 꼭대기, 구름을 가르는 천둥번개, 오로라를 바라보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 순간이었는지,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에서야 알았다. 실직자 후보가 된 지금, 비행이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