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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Nov 18. 2020

홍콩의 산후조리

 한국의 산후조리원이 이슈가 될 때마다 많이 보이는 댓글의 내용은 이렇다. '외국엔 산후조리가 없다더라, 왜 우리나라 여자들만 이것이 꼭 필요한 것처럼 생각하는가'부터 '동양인은 신체 구조가 달라 서양인보다 출산이 힘들고 회복이 어렵다, 그러니 산후조리를 꼭 해야 나중에 병이 안 생긴다' 등. 후자에 관해선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내가 밝힐 재간이 없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해외에도 산후조리가 있다는 것. 영국에서도 산후엔 집안의 여자 어른, 또는 이웃 여자들이 요리를 해서 가져다준다거나 집안일을 도와주는 산후조리 개념이 있다. (식단에 관해선 딱히 없었지만!) 그리고 특히 아시아, 중화권에서의 산후조리는 한국보다 더 철저한 것 같다.


 홍콩에는 산후조리원이라는 기관은 없지만 Confinement lady(광동어로는 pui yuet)라는 산후도우미를 집으로 들인다. 기간은 최소 1개월부터 3개월까지이지만 내 주변에는 CL이 아기를 너무 잘 다룬다며 6개월까지 고용을 연장한 경우도 종종 있다. CL을 고용하는 비용은 천차만별인데 올해 내가 출산을 하면서 알아봤을 당시의 시세로 영어가 좀 통하는 CL이라면 한 달에 한국 돈으로 750만 원 정도. 인기 있는 할머님이나 아주머니들을 예약하려면 임신 사실을 알자마자 연락을 해야 한다고 한다. CL은 보통 신생아와 한방을 쓰며 24시간 아기를 돌보고, 산모가 회복할 수 있게 보양식을 만들며 생강 목욕물을 준비한다.(잠은 언제 자나 궁금하다. 이래서 비싼가 보다.) CL들은 보통 굉장히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무서운 CL을 만났을 경우 그녀의 방식에 이렇다 저렇다 할 수 있는 권위(?)를 가진 사람은 아기를 낳은 산모의 시어머니뿐이라고 한다. CL은 생강을 한참 달여 산모의 목욕물을 준비한다. 그렇게 목욕을 하면 회복이 빠르다고 하는데, 정말인지는 모르겠다. 매일 그들이 만드는 보양식에는 약재를 비롯한 재료가 참 다양하게 들어간다. 한 친구는 비둘기 탕을 받았는데 CL이 무서워서 차마 남기지 못하고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다 먹었다고 한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한 동네 친구는 2개월이 지나고 CL이 떠나는 날 눈물을 펑펑 흘렸다. 그 할머니 없이 아기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막막했다나.


 이곳의 산후조리는 CL이 전부가 아니다. 원래 인도네시아의 전통이라고 하는데, 자무 Jamu 마사지도 보편적이다. 마사지사가 매일 집으로 와서 복부를 중심으로 전신 마사지를 하고 여러 약재를 섞은 페이스트를 배에 바르고 천으로 몸을 꽁꽁 싸맨다. 가슴 아래부터 엉덩이까지 매듭을 지어가며 하는 방식도 있고 붕대같이 둘둘 마는 방식도 있다. 표지의 참고사진은 자무 마사지 업체 중 한 곳인 belly and bloom의 사진이다. 나도 이렇게 붕대로 감는 방식을 택했다. 이 마사지 또한 꽤 고가인데, 인기 있는 마사지사를 예약하려면 역시나 몇 달 전부터 연락을 해야 한다.


 그 외에 CL을 들이지 않고 음식만 도움을 받는 경우도 있다. 가장 널리 추천되는(홍콩 엄마들 그룹챗에 음식 업체 물어보면 거의 매번 언급되는 곳이다. 고소득 외국인을 타겟으로 하는 회사가 아니기에 영문 홈페이지도 없다.) 메뉴는 일반 산후조리, 중의학 산후조리, 오가닉 중의학 산후조리 세 가지였다. 문의해본 결과 음식을 배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매일 와서 3시간 정도 부엌을 쓰며 직접 요리해주고 가는 서비스였다.

일반 메뉴
오가닉 중의학 메뉴

 일반 메뉴라면 4주에 약 270만 원, 오가닉 중의학 메뉴로 하면 4주에 약 450만 원이다. 비싸다. 재료가 얼마나 몸 회복에 도움이 되는 것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맛에 맞을지 아닐지도 모르는 음식을 이 가격에 신청할 수는 없으니 이건 패스.


 홍콩의 산후조리라는 걸 한번 경험해보자 싶어서 CL을 찾던 때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지는 바람에,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 들어오는 CL들의 입국이 불가능해졌고, 갑자기 늘어난 수요에 도무지 기간이 맞는 CL을 찾지 못해서 나는 이번 출산에도 산후조리 서비스라는 걸 경험해보지 못하게 됐다. 아쉬운 김에 자무 마사지에 도전, 다행히 가능한 마사지사를 찾아 10일간 마사지를 받아보았다. 


 매일 아침 9시에 우리 집에 도착한 마사지사는 한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마사지를 했고, 3겹의 붕대로 내 몸을 미라처럼 둘둘 감았다. 붕대를 감을 때 모양을 잡는 것인지 꽉꽉 동여매는데 밥을 못 먹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렇게 감아야 출산 전 몸매로 돌아간다며 마사지사는 그 붕대 묶은 몸으로 잠자기 전까지 생활하기를 강조했다. 한여름이라 덥고, 걸음을 걷거나 앉았다 일어서기가 불편해서 저녁밥을 먹자마자 풀어버렸다. 사실 몸을 칭칭 감은 후엔 의자에 앉기도 힘들기 때문에 서서 밥을 먹었다. 밥은 평소 먹던 양의 반 밖에 안 들어갔다. 마사지사는 매일 조금씩 더 타이트하게 강도를 높여서 몸을 동여맨다. 긴 시간 동안 묶고 있지 않아서 효과가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매일 한 시간씩 마사지받으며 쉬는 것, 갈라진 배 근육 사이가 좁아진 것 말고는 드라마틱하게 몸의 변화를 느끼지는 못했다. 


 산후조리라는 명목으로 내가 별걸 다 해봤구나 싶다. 이런 산후조리 서비스를 다시 받을 것인지 묻는다면 아마도 내 대답은 No. 새로운 것을 체험해 본 것으로 만족한다. 런던에서 첫째를 낳았을 때에도, 이번에도 가장 든든한 산후조리 도우미는 남편이었다. 올해엔 남편이 쓸 수 있는 육아 휴직 기간도 늘어나서 16주 동안 육아와 요리를 함께했으니, 이 정도면 황송한 산후조리다.


 사실 한국의 산후조리가 궁금했었다. 한국에서 출산 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신기하고, 나도 한번 그런 데서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특히 매일 국에 반찬도 여러 가지인 밥에 마사지와 요가 클래스라니... 안 부러울 수가 없는 조합이지 않은가! 응급 제왕절개로 첫째를 출산한 영국 병원에서 새벽 5시에 수술을 하고 같은 날 아침 11시쯤 되자 미드와이프들이 들어와 어서 걸어 다니라고 재촉했던 것과 천지차이다. 수술 후 받은 음식은 찬 우유와 말라비틀어진 토스트였고 회복실에 머무르는 동안 남편이 집에서 데워온 미역국을 제외하고는 '산후조리 식단'이라고 할만한 음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한편 홍콩 병원에선 매일 아침 콘지가 나와서 따뜻한 음식이 고팠던 나한테는 최고였다. 비교대상이 영국 정부 병원 출산 경험뿐이라서 내 눈높이가 낮았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홍콩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은 산후조리 기간, 나는 감사하고 행복했다.



*추가*

외국의 출산, 산후조리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영국과 홍콩에서의 제 경험을 토대로 비교해 보았습니다.

https://brunch.co.kr/@byjangmi/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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