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 년에 한 번 2주씩 집을 나간다. 물론 남편과 싸우고 나가는 것이 아니다. 나를, 그리고 우리를 위해 나간다.
친구 커플을 보고 거기에서 착안한 남편과 나의 약속이었다. 남편 친구 K네 부부는 대학교 시절 연애 때부터 독특하기로 유명했다. 주위에서 모두 운명이라고 할 정도로 알콩달콩했는데, 여행에 관해서라면 각자의 개성이 너무나도 강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동남아시아로 휴가를 가면 정치와 인권에 관심이 있는 여자는 태국, 미얀마 등지에서 열린 인권 관련 집회에 참석했고, 바다에서의 휴양을 좋아하는 남자는 그 시간에 리조트에서 유유자적 파도와 석양을 즐겼다고. 그렇게 따로 놀 거면 같이 비행기 타고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지금 보니 그들이야말로 '따로 또 같이'의 묘미를 제대로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오롯이 나를 찾는 시간을 허락함으로써 서로에게 더 충실할 수 있기에.
집 떠나 있는 시간이 긴 승무원이다 보니 출산 전에는 남편에게 미 타임(Me-Time)하러 가겠다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자연히 내 시간이 생겼다. 홍콩으로 비행 와서 지내는 시간이 전부 나를 위한 시간이었으니까. 하지만 출산 후 1년의 육아 휴직 기간을 지내며 어느덧 사라져 가는 '나'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자기, 우리가 예전에 했던 약속 기억해? 일 년에 최소 한 번씩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 거 말이야."
"물론 기억하지. 우리 부인, 이제 자유 시간이 필요합니까?"
"응,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아."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각각 최소 2주씩 혼자만의 시간을 보장할 것이라는 약속을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처음 가출(?)했다 돌아온 지 이제 거의 일 년, 나는 21개월, 4개월 아기들을 뒤로하고 또다시 집을 나왔다.
안타깝게도 2020년은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여행길이 다 막혀버렸다. 수시로 여행책과 블로그를 보며 만든 나만의 리조트 위시리스트에서 하나하나 지워 나가려던 당초의 계획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영국집에 가서 오래간만에 친구들이라도 볼까 했더니 록다운, 독일에 가서 동생이라도 만날까 했더니 록다운, 한국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려 했더니 자가격리 두 번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남은 선택은 홍콩 안에서 돌아다니기.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사실 장소는 상관없다. 나에게 집중만 할 수 있다면.
센트럴에 내려서 셩완까지, 기내용 캐리어 굴러가는 소리가 돌돌돌. 겨우 10여분 걸어가는 동안 끈질긴 추적의 시선을 받았다. 때가 때이다 보니 길에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사람이 나 혼자였는데, 날 보던 사람들은 십중팔구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어디에 갔다가 어디를 거쳐서 여기에 온 사람일까?', '원래 이 동네 사람인가?', '14일 격리 대상자일까?', '코로나 걸렸으면 어떻게 해!'. 심지어 금은방 아주머니는 문을 빼꼼 열고 저 멀리에서 가방 끄는 나를 보다가 내가 점점 가까워져 오니 문을 꼭 닫아 버렸다. 하지만 유리문을 뚫고 내 뒤통수까지 따라오던 시선은 너무 뜨거워서 눈치를 못 챌래도 그럴 수가 없었다.
편의점에서 구해온 보물들. 거기에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 출출할 때 먹으라며 아줌마가 챙겨준 치차론도 함께.
모퉁이 편의점에서 컵라면 둘, 맥주 두 캔, 싸구려 치즈 소시지 한팩을 사들고 호텔에 체크인했다. 방에 들어와 문을 닫는 순간, 빈방의 찬 공기와 적막함이 피부에 닿는 순간, 긴장이 풀리듯 후우- 긴 숨이 터졌다. 옷을 꺼내 옷장에 걸고, 세면도구도 욕실에 가지런히 정리하고, 그렇게 일주일을 보낼 준비를 마쳤다. 경건하게 산미겔 맥주 한 모금 걸치고 어릴 때 먹던 불량 식품 같은 치즈 소시지를 한 개 두 개 벗겨 먹었더니 이제 슬슬 정신이 든다. 우리 집에서 겨우 45분 거리인 이 곳에서 나는 이렇게 다시 방랑자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