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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Nov 29. 2020

틸다, 안녕

만남과 헤어짐

 홍콩의 외국인 커뮤니티는 굉장히 크다. 그중에 대를 이어 2대, 3대째 사는 사람들도 있지만, 젊을 때 여기서 커리어를 쌓고 나서 아이들이 좀 성장하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의 아시아 지역 허브라는 위치 때문에 2~3년 간만 주재원으로 있다가 돌아가는 사람들 또한 많다. 그래서인지, 홍콩에서의 만남은 안타깝게도, 헤어짐을 동반하는 경우가 흔하다.


 아직 배우자 출산휴가 중인 남편이 첫째를 플레이 그룹 시간에 맞춰 데려다주고, 또 집에 데려오곤 하는데, 어느 날엔가 자기처럼 아기를 데려다주러 온 아빠 S를 만났다고 했다. 게다가 미국인이라 둘이 통하는 것이라도 있었는지, 그 날 바로 번호를 교환하더니 아빠들의 커피 타임이니 뭐니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나도 몇 번 같이 만났는데 친절하고 유쾌한 사람이어서, 아기들의 나이가 같다는 공통점 하나로 좋은 친구도 사귀고, 잘됐다 싶었다.


 S의 딸 틸다와 우리 첫째 딸은 바닷가 산책도 같이 하고, 일주일에 세 번 가는 플레이 그룹에서도 같이 놀고, 아이들 여럿이 집집마다 돌아가며 하는 플레이 데이트에서도 함께 였다. 첫째는 친구가 어떤 존재인지 이제 배우기 시작했다. 얼굴을 익히고 이름을 외워서, 가끔은 바람 새는 발음으로 "틸다! 틸다!" 하고 친구의 이름을 외치고, 함께 놀자고 손을 잡기도 했다. 장난감은 친구와 사이좋게 공유하는 것이라는 헬퍼 이모들의 말에 따라 공도 건네주고, 비눗방울도 같이 하고, 과자도 나눠먹고, 만나고 헤어질 때 인사를 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 감정을 나누는 것에 눈뜨기 시작했다.


 어느 날 S에게서 홍콩을 떠나기로 결정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미국 신문사에서 일하는 언론인이다. 아무래도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지난 7월부터 시행된 홍콩 국가보안법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의 짧은 친밀함엔 마침표가 찍혔다. 내가 너무 아쉬워했더니 남편은 자신은 자라면서 많이 겪어서 괜찮다고 했다. 그가 다닌학교엔 영국으로 발령 온 미국 정부 관리나 군인의 자녀, 또는 주재원 자녀가 대부분이어서, 2~3년 주기로 누군가가 새로 오고 또 누군가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일상이었단다. 오히려 그 학교엔 첫 학년으로 입학해서 대학 전까지의 과정을 전부 마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나. 여긴 많은 사람들에게 중간 기착지인 홍콩이니, 그런 짧은 교류는 이제 우리가 자주 겪게 될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 말을 들으니 괜스레 마음이 허전하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을 수 있지. 특히나 우리처럼 홍콩이 고향이 아닌, 떠돌아다니는 외국인들 사이에서라면 더더욱. 머리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지만, 마음이 맞는 누군가가 내 일상에 들어왔다가 다시 떨어져 나가는 것을 내 마음은 그리 쉬이 넘기지 못한다. 아쉬움과 그리움이 오래도록 남는다.


 이 동네에 와서 처음 만난 '또래 아기 엄마' 폴란드인 J. 그녀의 남편이 독일인이어서 그녀도 독일어를 할 줄 알았고 나는 모처럼 홍콩에서 만난 독일어 대화 상대가 기꺼웠기에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기들이 함께 놀며 커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J의 가족도 지난여름에 독일로 돌아갔다. 그녀는 떠나면서 내게 독일어로 된 소설책을 한 권 남겼는데, 지금도 그 책을 보면, 책 내용보다 J와 그녀의 딸이 떠오른다.


 오늘 저녁, S와 그의 가족이 제3 국으로 떠났다. 틸다가 오늘 떠났다는 이야기를 해주려고 같이 놀던 친구들이 나온 사진을 첫째에게 보여줬다. 사진을 보자마자 아이는 신이 나서 방방 뛰며 "틸다! 앨리스! 예나! 내일 같이 놀자!"를 외쳤다. 틸다가 이제 없다고. 틸다는 비행기 타고 멀리 갔다고 이야기해줬는데, 아직 어린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첫째처럼 꼬불꼬불한 머리. 금발이라는 게 다르긴 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라면머리라서 볼 때마다 귀엽다고 그랬었는데. 사진이랑 비디오를 더 찍어 놓을 걸. 아쉽다. 너의 어린 날, 거의 매일 함께 했던 친구라고, 언젠가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해주고 싶다. 그때쯤이면 기억에선 사라졌을 틸다라는 이름의 친구. 이 아이들이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이 있을까? 아마도 없을 테지만, 그래도 함께 했던 즐거운 날들은 기억하기를...


 S, 틸다, 안녕! 새로운 곳에서도 건강하고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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