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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Dec 04. 2020

그냥 구글 번역기 쓰세요.

번역, 할까 말까.

 독일에서 학부생 때 우연히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주말에 나이트클럽에서 바텐더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받던 시급보다 훨씬 좋은 시급이어서, 일거리가 있을 때마다 거절 않고 하다 보니 몇몇 번역 에이전시와 연이 닿았고 그렇게 반쯤은 주기적인 아르바이트로 하다가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 때 인하우스로 일하면서 번역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업무는 번역이 주였지만 어쩌다 한번씩 컨퍼런스가 있을 땐 통역도 했다. 독일어-한국어 언어 조합으로 일하는 계약이었는데 영어로 된 일거리가 많으면 나한테도 영어 일거리가 왔었다. 영어-한국어 번역 직원이 한 명 있었지만, 영어 자료는 많고, 한 사람을 더 뽑으면 인건비가 더 들어가니까. 내가 영어를 할 수 있더라도 계약서 조항 따지면서 안 한다고 했어도 될 텐데 왜 그냥 주는 대로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땐 처음 해보는 회사 생활이라 내가 너무 모르는 것이 많았다.

 

 외국어와 한국어를 주물럭 거리는 일 자체는 즐거웠다. 혼자 하는 업무이다 보니 팀에서 받는 압박이나 회의 압박 따위도 없었고. 야근도 물론 없었다. 일 시작 초기엔 나에게 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즐겼으나 반년도 되지 않아서 내가 이 일을 오래 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와 맞닥뜨렸다. 그건 바로 내게 번역 의뢰를 맡기는 직원들, 회사 사람 대부분이 번역을 바라보는 인식이었다.


 번역하는 사람은 책상에 앉아서 구글 번역기를 돌리고 그 결과를 윤문 하는 게 아닌데, 의외로 많은 직원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였다. 실제로 여러 번 겪은 일이다.


 오전에 100페이지가 넘는 전문 기술 서류를 의뢰받고, 오후에 점심 먹고 오면 전화벨이 울린다.


 "번역 이제 다 됐죠?"

 "부서별로 의뢰 주신 순서대로 번역 작업 들어갑니다. 다음 주에 결과물 보내드릴게요."

 "에이.. 구글 번역기에 복사 붙여 넣기 하면 일분도 안 걸려서 답 주던데요."

 "저는 구글 번역기 안 씁니다."라고 말했지만 목까지 차올랐던 말은 따로 있었다.


 "그럼 구글 번역기 쓰세요. 저한테 의뢰하지 마시고요." 

 

 이런 식의 무의미한 설명 따위가 몇 번이나 오가자, 나는 성질이 나서 내 책상 전화선을 확 뽑아 버렸다.


 가장 큰 현실의 벽은 인식이었다. 사람들이 번역이라고 하면 "오~ 외국어로 된 어려운 것들을 한국어로 바꾼다니. 배경지식도 필요하지 않나요? 지적으로 보여요. 멋있어요."라고 하면서도, 기계 번역이 나오고, 번역 툴들이 많이 나왔으니 이젠 "아~ 구글 번역기가 말이 좀 이상하게 나오기도 하니까, 그거 돌린 다음에 검토하시면서 말 다듬는 거죠?"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구글 번역기나 네이버 파파고 등의 기능은 초기에 비해 정말 아주 많이 좋아졌다. 종종 시험 삼아 이런저런 말을 쳐보고 번역 엔진별로 결과를 비교해보기도 하는데, 감탄할 만큼 결과물이 잘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은 오류가 많기에, 번역기를 돌린 다음에 검토하고 문장을 다듬는 것이 원문을 보고 바로 번역하는 것보다 더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어쩌면 사람들은 정확한 의미를 전달받는 것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빨리 해주세요. 뜻만 대충 알면 돼요."


 이렇게 의뢰를 하지만, 내가 뜻만 대충 알 것 같은 결과물을 주고, 그 결과물 덕(?)에 비즈니스에 차질이 생기면, 책임은 내게 의뢰한 그 직원이 아닌, 번역을 한 나에게 물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나는 뜻만 대충 통하는 결과 문서를 절대로 만들 수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빨리빨리, 뜻만 알 수 있게" 해달라고 한다.


 내가 한국의 회사에서 일한 것은 거의 십 년 전 일이다. 그런데 며칠 전 인터넷에서 구인공고를 보았다. 내가 일했던 그 회사가 번역직을 뽑는다고. 세상에. 박봉에, 계약직인 자리인데 지원자격이 석사학위 이상이다. 통대 나온 사람이 기대할 만한 대우를 해주는 곳이 아닌데도 이런 조건을 내거는 것을 보면 씁쓸하다. 통. 번역 가능한 수준으로 외국어를 하기 위해 우리가 들이는 시간과 노력의 가치는, 여전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그저 언어가 좋아서, 언어들 사이의 징검다리를 건너며 느끼는 희열, 단지 그것을 위해 이 일을 더 해야 하는가. 쉽게 결정을 못 내리겠다. 애증의 관계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아직도 놓을 수 없는 건, 그래도 내가 즐겁기 때문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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