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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Dec 18. 2020

5개월의 배우자 출산 휴가가 끝났다

아쉽다. 그의 도움이 너무 절실하다.

 열흘 전, 남편이 마침내 회사에 복귀했다. 그 후 글을 한 편도 쓸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아기 하나를 키우는 것과 둘을 키우는 것. 어떠냐고 주변에서 물을 때마다 이러나저러나 힘들고 정신없기는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건 내 오만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2020년 연초부터 재택근무 + 5개월의 배우자 출산 휴가였던 남편이 있어서 그나마 그 정도였다는 걸, 남편의 복귀 열흘이 지난 지금 아주 확실히 알았다.


 내 육아 기대치는 그리 높지 않다. 첫째를 낳을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육아책 몇 권과 인터넷에서 읽은 육아 칼럼들 몇에서 뽑아낸 내용 약간, 그것에 더한 내 개인 취향. 거기에 마무리로 상황에 따른 약간의 융통성. 그게 내가 원하던 전부였다. 이렇게 쉬운 육아 방침이 또 있을까 싶었는데, 그것마저도 내 짝꿍에겐 버거운 일이었나 보다. 뭘 하든 내 성에 차지 않았으니. 


 "아니, 아니, 그건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저번에 말했잖아! 까먹었어?"

 이건 첫째를 키우며 남편이 줄줄 외운 내 주요 대사.


 “벌써 하나 키웠는데, 아직도 모르겠어? 기억 안 나? 일 년밖에 안 지났는데 어떻게 다 까먹을 수가 있니!!! 이렇게 해야지!!!” 

 이건 둘째를 키우며 내 어록에 새롭게 등극한, 제일 자주 쓰는 대사.


 내가 그런 말들을 쏟아낼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 남편의 육아라고 말은 했지만, 지금 고백하건대, 나는 남편 도움의 가치를 너무나도 저평가 해왔다.


 내가 주장이 강하고 고집도 세다 보니, 남편은 무엇을 하든, 그게 내 맘에 안 들면 어차피 한 소리 듣게 될 테니 미리 묻는 방법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어떻게 하길 원해?"


 목욕을 예로 든다면, 남편의 질문에 대한 내 답은 간단하다.

"맨날 하는 아기 목욕인데, 그걸 또 나한테 물어보는 이유는 뭐니? 기억 안 나요? 그냥 매일 씻기던 그대로 목욕시키세요!!!"


 우리끼리 버블 배스 게이트(bubble bath gate)라고 농담하는 사건이 있다. 첫째 때, 남편이 내 앞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건식 욕실 바닥에 목욕 거품을 흥건하게 흘리고 큰 손을 부들부들 떨며, 아기가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져 내리는 것 같다며 패닉 했던 일. 그 일 이후 남편은 아기가 몸이 커지기 전까지 일절 목욕을 시키지 않겠노라 선언했다. 회사 갔다 와서 목욕만 시켜주면 되지 않느냐, 그게 제일 쉬운 건데 그것도 안 하면 그대는 육아에서 뭐할 건데? 라며 불만을 터뜨린 건 당연한 결과였다. 아기 목욕 포비아인 남편 덕에 목욕은 내가, 이유식도 내가 만들고 내가 먹이고, 아기 옷 빨래, 기저귀, 다 내가 한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것 말고도 점점 자라나는 아기의 성장 단계에 따라 할 일이 산더미라서, 남편이 여러 가지를 도와주고 있었던 거였다. 그가 아기들과 놀아주고 아기들을 데리고 장 보러 다니지 않았더라면, 난 하루에 한 번 샤워할 시간도 없었을 테니까. 매일 아침 아기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가고, 공놀이도 해주고, 플레이 그룹 수업에도 데리고 다녀주고. 지금 생각하니 내가 육아라며 하던 일만큼이나 남편이 한 일도 많다.


 나는 첫째를 낳고 출산 휴가 1년 막바지에 둘째를 임신했고 바로 연달아 무급 휴직을 했다. 그리고 올해 다시 둘째를 출산하고 1년간 출산 휴가. 남편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1월 설에 한국을 다녀온 이후엔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했고, 7월에 둘째가 태어나고선 바로 5개월간 배우자 출산 휴가에 들어갔다. 원래 남편 회사의 직원 복지가 그 정도로 좋은 곳은 아닌데, 올해 새로 생긴 16주 배우자 출산 휴가를 다 쓰라고 하는 바람에(감사하게도!) 다 쓰고 거기에 4주간의 육아 휴직도 붙여서 함께 썼다. 한마디로 2020년, 남편은 일하던 시간에도, 일하지 않던 시간에도, 육아 우렁각시였던 것이다. 내 육아 스탠더드에 미치지 못한다며 이래저래 구시렁 대긴 했어도, 아기 둘이 스테레오 돌림 노래로 울기 시작할 때 하나씩 분담(?)할 수 있다는 것은 진정 감사한 일이었다. 


 잠귀가 밝은 첫째 덕에, 이것저것 시도 후 우리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밤 육아 스케줄은 이렇다. 남편이 저녁 8시에 첫째를 재우러 작은방에 들어가서 옆에서 함께 자고, 나는 안방에서 자는 둘째가 깨는 시간에 맞춰 수유를 하기 위해 깨어 있는다. 이때가 바로 내가 온라인 수업을 듣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시간이다. 새벽 3~4시쯤 작은방에 들어가 남편을 깨워서 바통 터치. 그때부터 남편은 깨서 둘째를 보고, 나는 첫째 옆에서 자다가 첫째가 아침 먹으러 나간 후에도 그 방에서 낮 11시까지는 잠을 잤다. 내가 자는 동안에도 남편이 아기를 돌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벌써 5개월간 이렇게 해왔는데, 남편이 복귀하고 아침부터 서재에서 일을 해야 하는 몸이 되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나의 수면이다. 새벽 3시까지 깨어 있다가 다시 아침 7시부터 일어나서 아기를 보면 내 잠이 반토막 나니까. 복귀 후 첫날부터 아침에 커피를 줄줄이 들이켜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나마 정신을 차리고 아기들과 놀아준 후, 저녁에 아기들이 잠들면 너무나 피곤해서 글을 쓸 시간 대신 쪽잠을 택했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돌고래인 둘째이기에, 한번 으앙~ 하기 시작하면 바로 첫째가 깨서 동생 운다고 계속 걱정하며 잠을 자지 못한다. 그래서 둘째가 우는 것을 첫째가 듣기 전에 캐치해야 하기에, 잠귀가 어두운 나와 남편은 둘 다 매번 조마조마 마음을 졸인다. 옆에서 쪽잠을 청했지만, 걱정 때문인지 나도 20~30분마다 한 번씩 깬다. 잠도 모자라고, 글 쓸 시간도 모자라고. 한나절씩 잠자게 해 줬던 남편의 도움이 너무 아쉽다. 이제 그럴 날은 없을 테니 새로운 육아 스케줄에 맞춰 글쓰기와 공부시간을 찾아야 할 텐데, 그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아기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외출을 하고, 공부를 하던 것에 너무 익숙해졌나 보다. 남편의 도움이 너무너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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