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외국어 배우는 것이 즐거웠고 지금도 외국어는 내게서 떼어 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한국어, 영어, 독일어로 통역과 번역을 하는 게 일이고, 학생을 가르치기도 한다. 스페인어와 체코어는 중급인 B2 레벨을 마치는 시험에 합격했다. 이런저런 언어에 관심이 많아 수업을 찾아 듣거나 집에서 따로 공부하기도 하는데, 임신해서 휴직하던 기간은 언어 배우기에 최고로 알맞은 시간이었다. 첫째 때는 런던의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 매일 프랑스어를 배웠고 둘째 때는 홍콩의 베를리츠에서 일주일에 3번씩 광동어를 배웠다. 처음 홍콩의 재래시장에 가서 광동어로 물건을 사던 순간을 생각하면 내 허술한 발화가 떠올라 웃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보람은 있었다.
내 외국어 유랑기를 듣고 친구들이나 내 학생들이 꼭 묻는 첫 번째 질문은 부모님이 외교관이나 주재원이라서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자랐는지의 여부다. 그래서 아니라고 하면 그럼 외국어를 많이 하는 비결은 뭐냐고 묻는다.
외국인 구경은커녕 영어 학원도 없었던 촌동네에서 외국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조금 뜬금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나는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을 기점으로 외국어에 빠져 스스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당시 경기도 모 시의 시립 소년소녀 합창단 단원이었던 나는 미국으로 공연을 다녀왔다. 공연에 참가했던 일본 합창단 아이들과 같은 비행 편으로 돌아오면서 긴 비행시간 심심함을 달래려고 대화를 시도한 게 시작이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 중 기억나는 얼마 되지 않는 단어와 엉성한 그림으로 나누던 대화는 주소 교환으로 이어졌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나, 그때 주소를 교환했던 토모코한테 편지를 받았다. 난생처음 받아보는 영어로 된 편지. 그 친구가 쓴 편지를 이해하고 싶었고, 하고 싶은 말도 너무나 많았다. 당시 유행하던 해외 펜팔 가이드북과 영문 편지 쓰는 법 책을 사 와서 밤새워 영어로 편지를 썼다. 처음엔 답장을 쓰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그러다가 편지를 교환한 지 반년 정도가 지나자 편지를 읽고 그 자리에서 한 시간 정도면 답장을 쓸 수 있게 됐다.
손편지를 쓰며 혼자 하던 영어 공부는 고등학생이 되어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채팅이라는 더 편한 방법으로 바뀌었다. 당시에 서구에서 유행하던 메신저 프로그램인 ICQ와 AOL을 쓰면서 가까운 일본뿐 아니라 지구 반대편, 책으로만 보던 나라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채팅을 하며 만난 친구들 중 우즈베키스탄 친구와 독일 친구는 실제로 여러 번 만났고 지금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요즘은 이런 메신저 채팅도 구식이 되었고 아예 언어 교환을 목적으로 하는 채팅 앱이 많이 생겼다.
누구나 다중언어 화자가 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지금, 내가 성공적인 외국어 공부의 비결로 꼽는 것은, 특정 학원, 특정 교재, 어학연수가 아니라 흥미 가지기다. 입시나 취업에 필요해서 남들과 똑같이 하는, 시험 성적이 목표인 공부, 누군들 재미있을까. 하지만 흥미를 가지고 내 언어로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한다면 시험 성적은 자연히 따라온다.
학교에 친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지와 채팅을 하며 친구를 사귄 것은 머나먼 나라에서 내 또래는 무슨 음악을 듣고, 학교에선 무슨 공부를 하고, 음식은 뭘 먹는지, 생일 파티엔 뭘 하고 노는지, 장래 희망은 무엇인지, 그런 것들이 너무나 궁금했기 때문이다. 선물로 보내주는 주전부리 껍데기에 써진 글씨를 읽어보고, 친구가 알려주는 그들의 전통음식 레시피를 따라 요리도 해보고, 반대로 한국 요리하는 법을 밤새 사전을 찾아가며 영어로 써서 알려주기도 했다. 내게는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모든 나라의 일상이 흥미로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방랑벽이 그때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선 친구들과 같이 GOD와 조성모의 노래를 들었지만 집에 와선 우즈벡의 국민가수 Yulduz Usmanova의 노래를 들으며 이국적인 나라로의 여행을 꿈꿨으니까.
어서 독일어를 잘했으면 좋겠다던 한 학생에게 독일과 관련해서 가장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축구를 좋아했었기에, 독일 축구를 보기 시작했고, 첫 단기 목표는 독일 축구 방송을 자막 없이 보기. 자막 없이 어느 정도 알아듣는 것이 가능해졌을 때 다음으로 세운 목표는 독일에 가서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보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유럽 여행을 하며 독일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팀의 경기를 봤고, 경기 후 시내 술집에서 현지인들과 그날의 경기를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독일어가 늘어있었다.
내가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 한국에서 독학으로 ZD를 따는 데엔 반년이 걸렸고, 독일에 가서 대학교 어학원에서 C1을 마치기 까지 3개월이 걸렸다. 책 붙잡고 열심히 쓰는 대신, 놀면서 공부하기를 택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외국어를 잘하고 싶은 당신, 이제 무엇을 좋아하는지부터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