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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Nov 14. 2020

마지막 백일

이젠 다시 없을 소중한 순간

 2020년 10월 18일, 둘째가 태어나 100일째를 맞는 날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충실한 딩크로 살 생각만 했었는데, 그 3년 사이에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3년이 지난 지금 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유럽에서 지구 반을 돌아 아시아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이 짧은 시간에 생긴 여러 변화에... 참 놀랍게도 적응을 잘 하고 있다. 때때로 런던 생각이 나지만, 어느새 이곳을 집으로 여기는 나를 보니 사람은 역시 적응의 동물이다.


 4인 가족이 내 가족 플랜의 완성형이기 때문에 더 이상 아기를 낳을 일은 없다. 100일의 기적이라는 걸 기다리며 지새우는 밤도 이제 마지막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 이 순간 으앙하고 울어대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


 첫째를 낳고 책으로 배운 육아와 현실의 차이에 매 순간 당황하곤 했었다. 이미 아이를 낳은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의 맘카페라는 곳에서 수많은 글을 정독하며 배운 100일의 기적이라는 컨셉. 한때는 매일 밤 100일의 기적은 뭘까 궁금해하고 기대했었더랬다. 현실은 전혀 달랐다. 요즘 줄임말로는 사바사라고 하던가. 사람마다 다르다는... 아기도 사람인지라, 이것도 아기마다 다른 거였다. 내겐 100일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100일이 지나고 나서도 달라진 게 없는데? 육아하는 엄마의 프로세스 중에 나만 뭔가 놓친 건가? 작년엔 그렇게 생각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100일의 기적은 아기가 어느 날 갑자기 아침까지 밤새 자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닌 것 같다. 태어나자마자 보였던 모습과 달리 벌써 훌쩍 커버린 모습.. 그 모습 자체가 100일의 기적이 아닐까. 하루에 몇 번 액체만 마시고서 이렇게 잘 크는 게 너무나 신기하다. 이렇게 자라는 것이 자연적이라니, 자연이란 얼마나 신비로운지!


 첫째의 백일에 특별한 축하를 하지는 않았다. 한국에 있었다면 달랐을 수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전통적인 것을 따르는 편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번엔 왠지 뭔가 하고 싶다. 내게 다시는 없을, 내 아이의 백일. 한국처럼 떡을 돌리고 잔칫상을 차리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아기가 커 가는 모습을 보며 기뻐해 주는 친구들 몇과 함께 조촐하게 이 기억을 장식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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