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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Dec 24. 2020

코로나가 불러온 자급자족 라이프

 코로나 이후 일상답지 않은 일상을 보내는 사이 2020년이 지나가 버렸다. 1월 설에 한국에 다녀올 때까지만 해도 벚꽃이 필 때쯤 다시 한국에 갈 생각만 했지, 14일 자가격리니, 비행기 탑승전 코비드 테스트니 하는 것 따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초반에 화장지와 쌀 사재기 현상이 잠잠해지면서 곧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줄만 알았다. 하지만 제2, 제3의 웨이브로 급격히 확진자가 늘어나자 학교, 관공서, 공공시설을 닫고, 아파트 클럽하우스도, 헬스장도 닫았다. 이젠 식당에선 한 테이블에 2명까지만 앉는다든가, 저녁엔 포장만 된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확산에 대응하고 있다. 그러니 내 일상생활에도 많은 것이 달라질 수밖에. 가장 큰 변화는, 집에서 셀프로 해결하는 것이 많아졌다는 점. 이 시국을 살아내려니 참으로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가장 기본 적인 것, 요리. 자가격리라면 당연한 이야기이겠고, 그렇지 않더라도 외출을 줄였기 때문에 집밥 시간이 늘었다. 우리 동네의 경우, 확진자가 나온 아파트에는 음식 배달을 오지 않는다. 배달 주문도 할 수 없고 식당에 직접 가서 포장해 와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면 요리하는 것이 더 낫기에 그냥 집에서 해 먹는다.


 아기 보며 먹기 편한 배달 음식의 최강자, 바로 피자. 한 손으로 들고 서서도 먹을 수 있다는 편리성 때문에 아기가 생긴 후 피자 시키는 횟수가 늘었다. 우리 집 셀프 피자 담당자는 내 짝꿍. 피자 챔피언들의 유튜브 채널을 보며 우리가 좋아하는 도우 재료 비율을 찾고, 반죽 숙성에 토마토소스, 오븐 안 피자 스톤의 충분한 예열 등등. 그냥 돈 내고 한판 시켜 먹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만큼 온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긴 하지만 이제 남편이 잘 만드는 메뉴 중 하나로 등극했다. 취향에 따라, 남편은 나폴리 스타일 피자, 나는 뉴욕 스타일 피자. 맛? 있다. 정말 맛있다. 남편이 그 비율로 피자를 구워낸 이후 피자집에 가지도 않고 배달도 안 시킨다. 장하다, 남편! 수제버거, 만두, 쌀국수, 인도 야채 커리, 버터 치킨, 차파티, 어느 날엔가는 감자를 삶아 직접 뇨끼를 만들기도 했다. 놀랍다. 이 모든 걸 집에서 만들 수 있다니. 하면 되는구나.


 요리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집에서 하게 되는 것, 머리. 미용실이 많은 동네도 아닌 데다가 예약하기도 귀찮고, 또 정부 방침 때문에 문을 닫을지 어쩔지 모르는 불확실성 때문에 그냥 집에서 자른다. 코딱지만 한 욕실에 남편이 긴 다리를 접고 앉으면 내가 발 디딜 곳 밖에 남지 않는다. 앞에 거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 시야에 한 번에 들어오게 물러나서  확인할 수도 없는 거리에서 요리조리 봐 가며 살살 깎다 보면 대충 모양이 만들어진다. 어쩌면 대충 모양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내 눈엔 '이 정도면 성공했네!'로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한 번은 좁은 욕실 문에 팔꿈치를 부딪히는 바람에  머리 양쪽을 짝짝이로 밀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코로나 덕 아닌가. 다행이다. 남편이 재택근무라 한동안 밖에 나가지 않고 머리를 길렀다.


 홍콩에 와서는 미용적인 부분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 보니 참 편하게 살았다. 요즘 셀프로 해결하기 시작한 다른 것은 스파. 정부 규제 때문에 데이 스파 같은 경우 아예 문을 닫은 곳도 있고, 호텔 스파의 경우 제한적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나름 일상에서 즐기던 소소한 즐거움이었던 스파에 가는 대신, 향기 좋은 로즈 오일이 들어간 풋 스파용 소금을 따뜻한 물에 한 줌 넣고 욕조에 걸터앉는다. 뜨끈한 물이 온몸에 퍼지듯, 피가 화악 통하는 느낌이 드는 발을 조물조물해본다. 그다음 코스로는 무려 한국에서 모셔온 공기압 마사지기. 튜브로 다리를 감싸고 중간 강도로 30분간 마사지기를 작동시키면 공기가 빵빵하게 차올랐다가 빠지면서 다리 마사지가 된다. 마사지사가 해주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한 기술이지만, 지금은 이것도 감지덕지다.


 또 셀프로 하는 것, 네일. 길고 예쁜 손은 아니지만, 비행하면서 손을 많이 써도 광택이 유지되는 젤 네일을 더 자주 하게 됐다. 살롱에 가서 전문가에게 받는다면 더 아름다운 장식을 할 수 있겠지만, 아기 키우면서는 큰 장식이 필요하지도 않기에 집에서 해도 충분하다. 한 달 정도 살롱들이 영업을 안 하고 있으니 동네 친구들도 "색깔이 반만 남은 이 손톱을 어찌하리오..."라며 걱정이 많다. 내 손을 보고 집에서 혼자 했다니까 도와달라 해서 벌써 동네 아기 엄마들 둘이 우리 집에 와서 손톱을 재정비(?)하고 갔다. 하다 보니 이것도 혼자서 할만하다.


 이 외에도 생각해보니 여러 가지를 집에서 해결하고 있다. DIY를 더 많이 하게 됐고, 파도 키우고, 허브도 키우고. 건축 현장에서도 여러 명 확진자가 나오고, 식당이나 시장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니, 걱정을 하자면 끝이 없긴 하다. 이러다가 집도 내 손으로 짓고, 그 집 앞에서 닭도 키우고 싶어 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아아, 그런 날, 안 왔으면 좋겠다. 자급자족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고, 나름 즐겁게 지내고 있지만, 예전처럼 남이 해주는 서비스 편하게 받고 싶은 속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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