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친구 작가님이 예전에 쓴 글 중에 생존배낭이란 글이 있다. 긴박한 상황은 상황대로 이해를 했고, 그것과는 별개로 그렇게 짐을 꾸려두는 행위를 글로 접하며 웃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게 내게 닥친 현실이 됐다.
내가 생존배낭을 싸게 된 이유는 바로 강제 격리. 해외에서 홍콩으로 유입된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견됐고, 그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들의 감염경로를 확인할 수 없었다. 여행을 한 적이 없는 필리핀인 헬퍼가 양성으로 판정됐고, 그녀가 돌보는 아기도 양성. 고용주인 아기의 엄마 아빠는 음성이었다. 홍콩 정부가 그들이 사는 아파트 한 동 전체 거주자를 강제 격리하기로 결정했다는 뉴스를 읽은 날 저녁 지인에게 받은 사진엔 주민들이 모두 정부 격리 시설로 떠난 후 불빛 없이 텅텅 빈 초고층 아파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큰 아파트 단지라서 옆의 불빛이 반짝이는 건물들과 더욱 대비되어서 그런 거였는지, 불빛이 지워진 그 아파트는 마치 유령 아파트라도 되는 듯했다. 홍콩 내 필리핀 헬퍼 모두 강제 검사를 받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같은 변종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발견됐다. 그들이 사는 아파트 건물 또한 봉쇄... 며칠 간격으로 이런 이야기만 들리니 겁이 안 날 수가 없었다.
홍콩 내 격리 서포트 온라인 그룹에선 불평글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왔다. 인터넷도 제대로 안 터지는 환경, 티브이도 없고, 21일을 버티는 것이 고문이 되게 한다는 음식 퀄리티, 여러 번 지적이 됐던 청결도 문제 등. 그런 곳으로 한 살도 안된 아기들을 데리고 들어가야 하기도 하고, 노인이 들어가야 하기도 하고, 개와 고양이 같은 반려 동물을 집에 남겨두고 들어가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 상황에 놓이면?이라고 생각하면 다른 생각은 아무것도 나지 않고 그냥 소름이 돋을 뿐이었다.
내가 사는 이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어디를 다니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당연히 모른다. 누가 밀접촉을 했을지 어쩌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감염되어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다닐지, 그건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변종 바이러스 확진 판정이 나서 정부 사람들이 우리 집 문을 두들긴다면? "격리시설로 가야 하니 나오세요."라는 말을 듣게 됐을 때 아기 둘을 데리고 내가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결론은 단 하나. 생존배낭뿐이다.
'21일간 인터넷 없이 지내려면 심심할 테니, 일단 책을 두어 권 넣자...'
'아니, 컨테이너 방에 애기 둘을 데리고 들어가는데, 책이라니. 읽을 시간이 어딨다고!'
'그것보단 21일이나 되는 기간 동안 아기들 이유식 먹이는 것, 심심해하지 않게 놀아줄 장난감이 더 중요하지!'
생존배낭을 싸는 동안,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짐 싸는 게 신혼여행 갔을 때 보다 오래 걸렸다. 가방에 물건을 집어넣었다 빼고, 다시 넣었다 빼고. 가장 중요한 물품들만 챙기려는 계획으로 일부러 작은 가방을 선택했는데 왜 이리 필요한 물품이 많은지... 아기에게 필요한 용품은 끝도 없었다.
여차저차, 생존배낭을 완성했다. 남편과 내 물건은 정말 꼭 필요한 것들 위주로, 나머지는 아기들 옷과 장난감들을 넣었다. 그렇게 까다롭게 고르고 골라 최정예 물품 군단을 만들어 포장했건만, 정말 이것만 들고 집에서 나가야 할 일이 생길 까 봐 조마조마했다.
정부가 조사를 해서 감염 경로를 알아내고 나자, 강제 격리에 묶였던 사람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됐다. 그런 뉴스를 봤는데도 내 생존 배낭은 여전히 존재한다. 방 한편에 자리 잡은 생존배낭... 그것을 쓸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