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타임 홍콩 살이 시작한 지 일 년 반. 홍콩에 발 걸쳐 놓고 산지 정확히 6년째. 오늘 드디어 여기에 적응 완료했다고 참 잘했어요 도장을 나 혼자 꽝 찍었다.
홍콩은 참 신기한 곳이다. 국제적인 도시, 외국인들이 넘치는 곳. 광둥어 한마디 못해도 영어만 쓰면서 익스팻으로 살 수 있는 곳. 하지만 자세히 보면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잘 섞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영어로 소통하는 외국인, 광둥어로 소통하는 로컬.
어쨌든, 광둥어를 못해도 홍콩에서 충분히 살 수 있다. 지인 중에 부모님의 홍콩 이주 후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란 영국인도 있는데 평생 홍콩에서 살았지만 광둥어를 하지 않는다. 그렇게 보면 굳이.. 그 어려운 걸 배워야 하나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배우지 않는다면 영어로 소통하고 살아야 한다는 뜻인데... 홍콩에서 영어로만 소통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외국인 버블? 에 살게 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정보를 구하려 해도 외국인들이 모이는 곳에서 구하게 되고, 미용실이든, 마사지든, 뭐든 영어가 가능한 곳을 찾다 보면 다른 곳 보다 비싸고(?) 깔끔한(?) 곳, 외국인들이 모이는 그런 곳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딱히 홍콩스러운 것을 고집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사는 곳이 홍콩인데, 홍콩스러운 생활도 경험해보고 싶어서 광둥어를 조금 배웠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버벅거리는 광둥어로 생활의 한편을 채웠다.
언제나 그렇듯, 나를 슬프게 한 것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주문한 롱 원피스.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다들 길이가 긴 것이야... 어째서. 그리고 나는 왜 여전히 긴 옷만 이리 좋아하는지. 여름 맞이로 멋지고 화려한 프린트가 있는 옷을 샀지만, 그 프린트가 나오는 부분부터 잘라내야 한다는 사실은 아쉽기 그지없다. 한 뼘이 넘는 옷 길이를 수선하기 위해 수선집을 찾았다. 홍콩에 널린 것이 테일러 샵이라 외국인 커뮤니티에서 인기 있는 그런 곳에 갈 수도 있었지만, 수선비가 옷값보다 많이 나오기 때문에 물어 물어 재래시장에 있는 수선집을 찾아갔다. 영어로 인사를 했건만 대답으로 돌아오는 것이 광둥어인 것을 보니, 아주머니가 영어를 못하는가 보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원피스 세 벌을 꺼내서 펼쳤다. 펼치는 동안 머리는 팽팽 돌아간다. '길다가 광둥어로 뭐였지? 자르다를 뭐라고 하더라?'
"이 치마 아주 길다."
광둥어로 이 한 문장 하고선 손은 가위 모양을 만들어 치마에 대고 싹둑싹둑. 그리곤 가져간 줄자를 꺼내서 15 센티를 집어 표시했더니 아주머니 표정은 심각해진다. 그 부분은 프릴이 달려서 그렇게 짧게 남기면 모양이 안 난단다.(그 뜻인 것 같았다.) 치마를 들고 요리조리 훑어보곤 이내 내게 치마를 몸에 대고 잡고 있어 보란다. 자를 대고 이리저리 재어보고선 거울에 비친 나를 보며 이게 더 낫지 않냐고, 이만큼만 줄이자고 제안했다.(이 역시 내 짐작이다.) 그렇게 하기로 하고 나머지 두 벌도 디자인과 프린트 모양에 따라 재단을 했다. 이렇게 섬세한 옷 리메이크로 원피스 세 벌을 고치고 수선하는 데 든 비용은 약 만 오천 원. 아, 역시!! 런던에서 옷 수선이 너무 비싸 친구네 재봉틀로 바지를 줄였던 것 과는 천지차이다. 요만큼의 돈을 주고 남이 줄여주는 옷을 입다니 감사할 따름. 내 허접한 광둥어가 재미있었는지, 아주머니는 이것저것 묻는다. 어디서 왔는지, 홍콩에 언제 왔는지... 별건 아니지만 재래시장 한편에서 재봉틀을 가운데 두고 아주머니와 웃으며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아, 여기가 내 집이구나!'
이 곳 사람들과 말이 통했다는 것이 기쁘다. 옷 수선 같은 자질구레한 일은 계속 반복될 텐데 그럴 때 어디로 가야 할지 알게 되었으니, 난 이제 홍콩 적응 완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