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6,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잔기침 기운이 있고, 처음으로 쉰 목소리가 들린다.

낭랑하고 당당한 목소리가 더 어울리는 그녀이지만, 열심히 일한 자국이 남은 목소리마저 좋다.

곁에서 간호해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해준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랑을 더 부어주고 싶다.


그녀는 간식으로,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몸에도 좋을 귤을 오랜만에 먹는다.

귤의 브랜드 이름이 '불로초' 이다.

지금의 그녀는 아직도 우리가 처음 만났던 2003년 즈음을 떠올리게 하는 모습인데,

불로초까지 먹다니,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오늘 아침 그녀는, 아주 애기 같은 목소리의 여자 분께서 갑자기 전화를 걸어오더니,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그녀의 차에 운전자 부주의로 사고를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 보험 처리를 한다 해도 시간과 노력도 들어가고, 귀찮을 수 있는 일인데,

그녀는 그 짧은 순간에, 그녀가 예전에 어떤 아저씨의 주차된 차를 긁었을 때를 먼저 떠올렸다.

그녀에게 많이 놀랐겠다며, 참 다정하게, 괜찮다고 이야기해주신 따뜻한 아저씨의 호의에,

그녀는 자신의 차에 실수한 다른 사람에게, 괜찮으니 놀라지 말라고 훈훈하게 토닥여준다.


그 다정한 아저씨와, 그녀와 같은 사람들이야말로 이 사회가 필요한 'Pay Forward' 의 정석이다.

누군가 나에게 보여준 호의를 잊지 않고, 그 당사자에게 직접적으로 갚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도 같은 호의를 보여줄 때, 사람 사는 사회는 더욱 따뜻해진다.


나는 그녀에게는 내 사랑의 마음이 흘러가는대로 계산 없이 행하는 사람이지만,

그녀 외의 존재들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계산적인 사람이다.

나 같으면 차를 고치느라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지부터 생각할텐데,

그녀가 이렇게 당하기만 하고 살다가 '눈탱이 밤탱이 사람' 이 될까부터 신경이 쓰이는데,

모르는 사람에게도 다정함을 베풀고, 잘 털어내는 그녀의 차분함과 따뜻함에 감명 받았다.


오늘과 같은 삶의 크고 작은 사건들에서, 그녀의 인성을 느낀다.

한국에서 그녀만큼 '감사합니다' 와 '죄송합니다' 를 많이 말하는 사람을 본 적 없다.

그녀와 함께 손잡고 다니다보면,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그녀의 말과 행동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그녀는 내가 더 예의범절을 갖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줬고, 내 실수를 사려깊게 줄여줬다.

돌이켜보면, 사소한 순간들이 수천 마디 말보다 더 가치 있었던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점점 닮아간다고 한다.

나는 그녀를 닮아, 더욱 포근한 사람이 되련다. 특히 그녀에게만은.


나는 그녀가 기분이 좋으면 기분이 좋다.

그녀가 행복하면 행복하다.

예전에는 그녀를 만족시켰다는 알량한 성취감 때문에 그랬나 싶었다.

다시 잘 생각해보면, 그녀를 닮아 한 몸과 한 마음이 되어간다는 기분이 좋은 것 같다.


그녀도 나를 닮아가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그녀는 심지어 나의 성대모사까지도 잘 한다.

그녀가 나에게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는지 느껴진다. 사랑을 느낀다.

우리가 일심동체인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듯, 그녀는 오늘도 나를 너무 닮고 싶다고 말해준다.


그녀는 내가 그녀가 잊을만한 사소한 말들까지 다 기억하고 노력하겠다는 마음에 감동받았단다.

나의 모든 약속을 다 안 지키더라도, 이미 넘치는 사랑을 받아, 마음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나란 사람은 결심하면, 금방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그것을 꾸준히 해내는 사람이라 말해준다.

그녀가 너무나 닮고 싶은 모습이라 말해준다. 마음이 포근해진다.


나는 독서광인 그녀를 만나고 말과 글이 많아졌다.

내 집에는 책이 늘어났고, 내 머릿속에는 사랑의 언어가 많아졌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땐, 그녀와 어울리는 격조 있고, 배울 내용이 꽉 찬 대화를, 예쁜 말로 하고 있다.

매일 그녀에게 짧은 사랑의 말을 남기고,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좋은 연습이 되고 있다.


나도 그녀도, 녹음한 듯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진 못하지만,

내가 처음 그녀에게 '왜 나의 사랑을 받아줬어?' 라는 못난 질문을 했을 때,

그녀가 이야기해준 이유 중 하나는, 내가 그녀에게 쓰는 단어를 신중하게 선택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그 이후 내 본색이 드러나서 그녀에게 말로 상처를 준 적이 많지만,

내 자신을 더 알고, 그녀를 더 알고, 우리를 더 알게 된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그녀를 사랑해주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단어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언어로 사랑해주고 싶다.


그녀를 따라 책을 많이 읽다보니,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기승전결' 이 중요함을 느낀다.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음악이 내내 크레셴도일 순 없고, 영화 내내 화끈한 액션일 순 없다.

그리고 나는 '수미상관' 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기승전결 중 '기' 와 '결' 이 같길 바란다.

그래서 브런치에도 매일 첫 줄과 마지막 줄을 똑같이 쓰고 있다.


우리네 삶은 책과도 같고, 그녀와 나의 사랑도 한 편의 영화와 같다.

몸이 아픈 날도 있고, 오해가 쌓이는 날도 있고, 서로 만나지 못하는 날들도 있다.

하지만 건강을 찾는 날이 오고, 이해를 쌓는 날이 오고, 다시 만나서 안아주는 날이 온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 눈부실 정도로 찬란했듯이, 결말은 Happily Ever After 가 될 것이다.


어느날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지금 자기의 삶은, 자기란 책의 몇 막이야?'

어렸을 때 읽었던 홍정욱 씨의 "7막 7장" 이 떠올랐다.

그 후 여러 논란이 있던 홍정욱 씨이지만, 어렸을 때의 나에겐 분명 배울 점이 많은 책이었다.


지금 나의 삶은, 나란 책의 클라이막스이다.

그녀라는 새로운 주인공이 나타났고, 인쇄지가 갑자기 흑백에서 총천연색으로 변했으며,

모든 등장인물들이 복선을 회수하고 있다.

무슨 막이냐고? 클라이'막'스이고, 마지'막'이다.


그녀는 나의 알파와 오메가이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쉬어버린 목소리를 안아주고 싶었고,

다른 사람에게 받은 다정함을 또다른 사람에게 갚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나란 책의 마지막을 책임져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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