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18,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오늘 조금 더 건강을 찾았다.

아직 목은 쉬어있고, 24시간의 절반 이상을 밖에 나가서 일하는데도,

나에게 연락하랴, 한 시간 이상 목소리를 들려주랴, 고생이 많다.

어서 쉬게 해주고 싶다.


오늘은 그녀의 제일 친한 동료가 몸살로 아프단다.

그녀가 얼마나 힘든 일터에서 어려운 일을 하고 있는지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상상 이상이란 걸 알 수 있다.


내가 능력이 없고 일이 없고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보다는,

내가 좋아하고 해낼 수 있는 일을 하며, 먹고 살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특권임을 많이 느낀다.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요즘과 같은 세상엔 특히 그렇다.


하지만 모든 자동차는 일정 수준이 되면 오일을 갈아줘야 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은 휴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행복한 장수의 비결이 아닌가 싶다.


그녀를 만나고 나서 나는 죽음이 두려워졌다.

그녀를 만나기 전의 나는, 내일 죽어도 상관없었다.

삶에서 이루고 싶었던 모든 것을 이루었고, 모든 만반의 준비를 마쳤으며,

유서도 써놓았고, 마음 또한 초연했다. 건강을 신경쓰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그녀와 1분 1초라도 더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니,

1초라도 더 살고 싶어졌고, 건강해지고 싶어졌다.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먹는지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Memento mori" 라는 말을 좋아한다. 영어로는 "Remember you must die."

"죽음을 잊지 마라",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정도로 번역될 수 있겠다.


어렸을 때의 나에게 '죽음' 이란 충격적인 일이었다.

사람이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변을 보고, 종족 번식을 하는데,

그리고 도대체 어떤 구조인지 그 작디 작은 머리에서 온갖 철학, 종교, 정치, 문학을 논하고,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싶은 건물과 기계와 과학 문명을 쌓아놓았는데,

정말 별 것도 아닌 일로, 혹은 아무 이유도 없이, 삶이라는 것이 스러져 가는 것을 본다.


그리고 우리는 흙으로 돌아가고,

몇몇 사람만 '이름' 을 남긴다.


나이가 들다보니, 친구가 죽거나, 친구의 친구가 돌아가시거나, 친척이 돌아가시거나,

잘 모르는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할 일이 생겼다.

관 속의 사람을 보면, 분명 내가 생전에 봤던 사람인데, 뭔가 다른 사람이 누워있었다.

그리고 남아서 울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들 다른 사람들이 되어있었다.


청년 때의 나의 성격과 행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두 명의 배우가 있다면,

Robin Williams 와 Matthew Perry 이다.

나는 로빈 윌리엄스의 영화들을 편집증적으로 섭렵하며 자랐고,

매튜 페리가 연기한 '프렌즈' 시트콤의 '챈들러' 라는 캐릭터의 매너리즘을 공부했다.


'프렌즈' 의 주인공은 남자 셋 여자 셋이고,

제일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인기가 있던 사랑 이야기는 '레이첼' 과 '로스' 이겠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진' 주인공이자 제일 중요한 사랑 이야기는 '모니카' 와 '챈들러' 였다.

나는 챈들러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고, 모니카와 챈들러 같은 사랑을 하고 싶었다.


이젠 로빈 윌리엄스나 매튜 페리는 이 세상에 없다.

어렸을 적 나의 우상이었던 사람들이 서서히 세상과 작별하는 모습들을 본다.


로빈 윌리엄스가 프렌즈에 카메오 출연을 한 적이 있다. 1997년 5월 8일이다.

프렌즈 시즌 3, 에피소드 24, The One with the Ultimate Fighting Champion.

아주 짧은 출연이고 실없는 내용이지만,

로빈 윌리엄스와 매튜 페리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기 위해 가끔 이 에피소드부터 틀어본다.


예전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치 앞도 예상하지 않은 채,

오늘에만 집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장한 삶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의 일에 있어, 심지어 인간관계에도, 콘크리트보다 차갑게 굳은 표정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녀가 내 삶에 들어온 이후에, 너무 겁이 많아졌다.

지킬 것이 너무 많아져버렸고, 원하는 것이 너무 커졌다.

마음이 너무 말랑말랑해졌고, 이유없이 눈물이 차오르고 호르몬이 널뛴다.

무슨 주제의 이야기를 하다가도 끝말은 사랑고백이 되어버린다.


죽고 싶지 않다.

살고 싶다.

그녀와 함께 살고 싶다.


그녀는 오늘 오랜 친구들에게, 이번해 나와 삶을 합치기로 한 이야기를 했단다.

친구들이 기뻐해주고, 축하해주고, 부러워해줬단다.

그녀의 삶에 이런 좋은 기회를 줘서 고맙단다.


내게 기회를 준 것은 그녀이다.

나는 살면서 이렇게 큰 기회를 받아본 적이 없다.


제각각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정말 좋은 기회란 인생에 몇 번 오지 않는다.

그 기회가 왔을 때, 그 미꾸라지보다도 더욱 미끌거리는 기회란 놈이 왔을 때,

그것을 놓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잡아내는 것이 능력이고, 실력이고, 운이다.


그녀는 내가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에서, 주인공을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욱 기뻐해주고, 축하해주고, 부러워해줄 삶을 만들어가겠다.


아무에게도 그 어떤 증명도 할 필요 없는 그녀이지만,

그러므로, 더욱, 보란 듯이.

지나치는 그 누가 0.1초만 봐도, '아아, 저 여자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받고 있구나' 하도록.


내 평생에 다시는 오지 않을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몸이 힘들어도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나와의 삶을 자신의 삶의 큰 기회로 여기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나를 더 사람답게 살고 싶게 만드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전 21화January 17,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