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오늘 그녀는 정말 오랜만에 아무도 만나지 않고, 특별한 책임이나 의무 없이 하루를 보냈다.
일어나자마자 운동도 열심히 하고, 나와의 여행 영상을 편집하기도 하고,
요리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정리도 하고, 부지런하게 하루를 보냈으면서도,
정신을 차려보니 하루가 끝나버렸다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시공간을 잃어버렸다며 아쉬워한다.
나는 그 기분이 정확히 어떤 기분인지 안다.
그녀는 시공간을 뒤틀리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그녀와 시간을 보내다보면 눈 깜짝 할 사이에 밤이 오고,
그녀와 자고 일어나면 어느새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버린다.
그녀와 함께라면 12시간 이상 공복 상태여도 배가 고프지 않다.
내 입은 하나 뿐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입술에 키스하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그녀를 탐닉하다 보면, 나는 누구이고 여긴 어디인지 모두 잊어버릴 수 있다.
그녀는 그만큼 환상적인 사람이다.
아무튼 자신에게 가혹하고 만족할 줄 모르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귀여운 불평이었지만,
이 허송세월은 그녀가 더 높이 도약하기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해줬다.
나는 그녀의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고 효율적인 시간 사용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나보다 큰 일을 할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추진력이 필요하다.
나는 그녀처럼 마음이 부지런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악담 같지만, 솔직히 그녀의 몸이 따라가지 못할 때가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녀의 몸이 나만큼 덩치가 크고 건강했다면, 그녀는 자신을 더 혹사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이제 그녀의 마음과 나의 몸을 합쳐서, 더 균형 잡히고 좋은 삶을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가끔은 그녀의 몸과 나의 마음을 합쳐서, 허송세월을 보내려 한다.
그녀와의 허송세월은 그 어떤 바쁜 날보다도 의미 있을 테니까.
이런 그녀를 보면 여러가지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새빨갛게 달궈진 검이 떠오르기도 한다. 나라는 차가운 물 속에 넣어서 식혀주고 싶다.
우주로 날아가기 전 엔진을 열심히 달구며 굉음을 내는 우주선 같기도 하다. 그 안에 타고 싶다.
끝이 어딘지 모를 곳으로, 차원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기 위하여.
나는 격무에 시달리고 있지만, 몸도 마음도 컨디션이 너무 좋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니, 그녀가 푹 쉬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졌기 때문이다.
또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깊은 휴식 때문이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할 시간보다,
그녀의 삶을 유지하는 품이 더 큰 삶을 살았다.
그녀 자신을 책임지기 전에,
남을 보좌해야하는 삶을 살았다.
나는 그녀가 그 누구도 섬길 필요가 없는 삶을 주고 싶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영원한 보좌진이 될 것이다.
나는 요즘 그녀에게 '나는 너를 위해 살겠다' 는 말을 자주 했다.
사귄지 1일 된 날부터 나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상황이 어떻게 되든 결혼하기로 마음 먹었고,
이 여자는 내 인생의 마지막 여자이고 다른 사람은 필요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 때부터 이미 내 모든 생각, 행동, 스케쥴, 몸가짐을 그녀에게 수렴시켰지만,
2025년 들어서는 더욱 그녀를 위해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녀를 위해 살겠다는 나의 말에, 그녀는 그 말이 얼마나 큰 의미인가 생각해보며,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선뜻 할 수 있는지 생각해봤다고 한다.
그래서 너무 고맙고, 그녀도 나를 위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해준다.
눈물 날만큼 고마운 말이었다.
그녀가 맞다. 나에게도 선뜻 할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거짓말로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겠지만, 삶의 모든 지표와 목적을 한 대상에게 돌린다는 것은,
말하기도 어렵고, 말만큼이나 행동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위해 살고 싶다.
그렇게 살아본 결과, 그 일은 나에게 더 좋은 일이었고, 내 모든 일이 더 잘 되었고,
내가 더 기분 좋고 행복한 일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보다, 그녀와의 미래를 위해 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수월했고,
졸릴 때까지 잠을 참는 것보다, 그녀와의 즐거운 데이트를 위해 휴식을 취하는 것이 더 두근거렸고,
배채우기 위해 아무거나 먹는 것보다, 그녀만큼 건강해지고 함께 오래 살기 위해 건강하게 먹었고,
나태하게 자신을 돌보지 않는 것보다, 그녀를 상상하며 열심히 운동하니 내 몸과 마음이 나아졌다.
1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고 업무 문서만 읽던 내가, 그녀를 생각하며 좋은 책들을 읽게 됐고,
그녀에게 도움이 되고 내가 정말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것들에만 더 돈과 시간을 쓰게 됐다.
모두 그녀 덕분이다.
그래서 내 인생의 후반전은 그 누가 뭐래도 그녀를 위해서 살아보려고 한다.
다만 부작용이 없도록 해야한다.
'그녀 = 나의 연장선' 이라는 위험한 수식만 피한다면, 멋들어지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를 조종하려고 하거나, 나와 다른 부분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그녀를 괴롭히곤 했다.
그녀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클 때, '왜 나는 이만큼 사랑하는데, 그녀는 아닌 걸까' 하곤 했던 것 같다.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는데, 왜 그녀는 라떼를 마시지?' 하면서 화가 나지는 않는다.
'나는 '사랑해' 라고 했는데, 왜 상대방은 '사랑해' 라고 하지 않지?' 도 어찌 보면 같은 일이다.
상대방의 진심과, 몇십년을 다른 삶을 살아오며 쌓인 본성을 잘 알지 못하기에, 화를 내게 된다.
나는 나만큼이나 사랑해주는 그녀의 본심을 알고, 그녀가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마음 뿐이란 걸 알았다. 그녀를 더 사랑해주기 시작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 간에는 기본적인 예의와 신의가 있어야 한다.
나는 살면서 그녀만큼 나에게 예의와 신의를 지켜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나를 위해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
아무리 내가 정말 괜찮다고 해도, 둘이서만 자주 만나던 이성친구도 만나지 않고,
좋아하던 술도 줄이고, 자신의 프라이드가 있는 커리어도 나와 더 행복해지기 위해 변경했고,
평생 해보지 않은 일들을 나와의 '첫 경험' 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내가 변한 것보다도 그녀가 더 많이 변했고,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춰주었는데,
별 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말투로 나를 배려해주는 그녀.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이미 그녀는 그녀의 모든 삶을 나에게 맡겼고, 내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줬다.
이제는 내가 그녀를 위해 살고, 그녀를 사랑해줄 차례이다.
요즘의 나는 그녀라는 울타리에 젖어 살고 있다.
삶의 모든 면에서 그녀와의 상승효과를 느낀다. 그녀의 영어 이름을 '시너지' 라고 부를 판이다.
날씨가 아직 쌀쌀하지만, 따뜻한 블랙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본다.
눈이 부신다.
그녀를 볼 때처럼.
나는 한국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정주행해서 완결까지 재밌게 봤던 드라마는 2019년 작 "눈이 부시게" 이다.
주인공 김혜자 씨는 드라마의 끝을 맺으며 이렇게 말했다. 갑자기 지금 이 말이 생각난다.
" ...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큰한 바람, 해질 무렵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오늘도 그녀 덕분에 나는 눈이 부시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허송세월하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허송세월을 아쉬워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눈부신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