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13,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오늘도 치사하게도(?) 내가 하고 싶은 대사를 먼저 가져가서 멋지게 말한다.

내가 그녀의 구원자라고 말해준다.

내가 아니었으면, 그녀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은 언감생심이라 말해준다.


그녀를 구원한 것은 그녀 자신이 쌓아온 길인데.

그녀에게 구원받은 것은 나인데.

그녀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감히 이렇게 완벽하도록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점심을 픽업하는 길에, 조금 따뜻해진 날씨에 날아와 건물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비둘기들을 봤다.

최근에 그녀와 걸어가다가, 노숙자 분께서 던진 빵조각을 보고 비둘기들이 일직선으로 날아와서,

그녀가 비둘기 날개에 얼굴을 맞았던 일이 기억났다.


나는 굉장히 당황했었다. 혼비백산해서 그 뒤엔 바지에 커피를 쏟고 난리를 쳤다.

그녀가 다치거나 한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비둘기가 분명 비위생적이기도 한데,

내 손으로도 잘 안 만지려고 조심하는 그녀의 깨끗한 얼굴에 닿아서 그녀가 신경이 쓰일법했고,

뭔가 그녀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갑자기 들었다. 차라리 내 얼굴에 맞았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조심스러운 성격이었다.

남자다운 척하느라 말과 행동이 시원스럽고 거칠 때도 있지만, 평소 섬세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길을 갈 때도 주변에 위험한 것이 있는지, 이상한 사람이 있는지, 뭔가 떨어지지 않을지 계속 보는데,

노숙자 분께서 빵조각을 던지는 것을 포착하고, 분명 비둘기가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일부러 발걸음의 속도를 최대한 늦췄는데도, 그녀의 얼굴에 비둘기가 날아들게 됐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일도 있었지' 하고 웃음이 번질 수 있는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내가 미래에 올 사고를 미리 알고, 최대한 조심하고, 대처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가끔은 그런 악운을 겪을 수밖에 없고, 그녀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날 때가 있으니,

그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내가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전수전 다 겪어온 그녀라서 더 심한 일에도 혼자 일어났겠지만,

그 어떤 작은 일에도 나와 함께 손잡고 일어날 수 있도록.

똑같은 불행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내가 더 주변을 살피고, 그녀의 눈과 얼굴이 되어줄 수 있도록.

비둘기가 내 얼굴에 대신 날아들도록.


그녀와 시간을 보내다보면, 이런 작은 해프닝들에서도 '삶' 을 배우고 무언가를 깨닫는다.

그녀와 함께 공연을 보다가, 옆에 앉은 사람들이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나 나가버린 것을 보고,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왜 나가버렸을지, 그녀와 깔깔거리며 웃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 웃긴 해프닝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아무리 재미없는 공연을 보더라도, 그녀가 곁에 있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에 감사하다.

같이 있으면 단 1초도 지루할 새가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행복하다.


그녀는 아무리 재미없는 공연이라도 주최측이나 주선자의 정성을 봐서라도,

일어나지 않을 사람이다. 그런 성숙한 사람을 내 배필로 두고 있어서, 우월감을 느낀다.


그녀는 3부작으로 길디긴 뮤지컬/연극을 '강제로' 단체로 보러 간 적이 있다.

내가 같이 보러 가지 않았고, 그리 흥미로울 주제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녀는 몸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자리를 마련해준 리에종의 얼굴을 봐서라도, 단체생활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 때문에라도,

동료들이 예의없게 자리를 박차고 떠날 때도, 에어컨 바람이 불어도, 그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아마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결정했던 것 같다.

그녀와 결혼해야겠다고.

이런 사람은 내 사람이어야 한다고.


매일 그녀를 보고 배운다.

그리고 믿음은 부족하지만 기도한다. 그녀와 같은 인내심을 달라고.

쓰러질 것처럼 아파도, 그녀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사랑 가득한 웃음 지을 수 있는 끈기를 달라고.

그녀의 예쁜 엉덩이를 닮되, 나는 무거운 엉덩이를 갖게 해달라고.

그녀와 같은 공기를 마시고, 그녀를 닮게 해달라고. 그녀로 물들게 해달라고.


그녀에게 비둘기든 뭐든 날아들 때 내가 대신 맞게 해달라고.

그녀처럼 '예(禮)' 가 넘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그녀와 같은 사랑을 하게 해달라고.


그녀를 만나기 전의 나는 미래를 기대하지 않았다.

오늘의 생계에만 혈안이 되어, 내일의 계획, 앞으로의 한 달, 내년, 10년 계획 따위 세워본 적이 없다.


그녀는 나의 미래를 구원해줬다.

앞으로 더 배우고 싶게 했고, 더 성장하고 싶게 했고, 그녀에 대해 더 알아갈 시간을 갈구하게 했다.

죽을 때까지 공부해도, 그녀라는 사람의 깊디깊은 됨됨이를 다 헤아리지 못할 테니까.


그녀는 나의 스승이다.

나보다 어리지만, 나의 선생(先生) 이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우리의 계획에 따라 노력하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예의와 인내심이 가득한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오늘도 나를 가르쳐주고, 나를 구원해주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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