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16, 2025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by 헤매이는 자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그녀는 일요일에도 아침부터 열심히 운동한다.

열심히 오르면 무섭게도 천국을 미리 볼 수 있다는, 천국의 계단을 무려 1200개 오른다.

그렇잖아도 다리가 예쁜데, 더 예뻐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덜컥 든다.


그녀는 싱싱한 간을 위해 오늘부로 술을 안 마시겠다고 선언했다.

나는 곧바로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술을 먹일 수 있을까 계략을 짠다.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닮아가나보다. 술을 전혀 못 하는 나를 만나더니 그녀는 술을 끊기 시작했고,

그녀를 만나더니 나는 그녀와 술 한 잔을 기울이며 대화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워졌다.


그녀는 오늘 가족들과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오랜만에 부모님 댁에 가니, 그녀를 환영하며 잔치상을 차려주신다.

상상만 해도 흐뭇하다. 매일이 '그녀가 오신 날' 이고, 어딜 가나 VIP 였으면 좋겠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그녀를 사랑해주도록.


가족들의 정성도 바리바리 싸들고 무거운 손과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온다.

주유도 하고, 세차도 한다.

다음주에는 부모님께 옷도 사드리기로 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다.


나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는 한없이 친근하고 진실된 모습을 보이는 그녀.

수더분한 이야기도 두서없이 잘 받아주는 그녀이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격조 있게 예술을 논해본다.


그녀와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를 보고 싶다 했다.

독일에 있는 작품이지만, 지금은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특별 전시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녀에게 어울리는 그림이라 생각했다.

광대하게 펼쳐진 자연과 거친 세상에 맞서서, 다른 사람들에게 등을 보이고 서서 리드하며,

인간의 정신을 보여주는 모습이 그녀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왜 거칠고 척박한 그림에서 그녀를 떠올리냐고 웃으며 타박한다.

대체할 이미지의 작품을 들이민다. 처음 보는 작품이다.

페테르 세베린 크뢰위에르의 '"힙 힙 호레이!" 스카겐에서 열린 화가들의 파티' 라는 작품이다.

따뜻한 마음으로 사물을 늘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과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파티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우정과 동질감이 느껴지고, 초목과 햇빛이 충만하다.


보면 볼수록 그녀와 참 어울리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스웨덴에서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녀와 언젠가 독일 뿐 아니라 스웨덴도 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격조 높은 그녀와 소통하다 보면 나의 매일이 배움일 수밖에 없다.

최근 그녀는 나에게 조선시대의 재밌는 역사에 대한 기사를 즐겁게 읽었다며 보내줬다.

나의 성씨와 본관에도 관련이 있는 기사여서, 더욱 눈이 갔다.


기사 내에서 보여진 가문의 형성과 확장에 유독 여성의 활약상이 두드러진 점이 흥미로웠고,

'우리 가문은 여성이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야' 라며 사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온 바였다.

'우리 성씨 여자들은 대부분 미인인 편이고, 남자들은 대부분 그저 그렇다'.

'우리 성씨에서 왕은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왕비는 엄청나게 나왔다. 조선왕가의 사돈이었다.'

'여자연예인들조차 일부러 우리 성씨를 가명으로 쓰는 편이다'. 시골에 가면 항상 듣는 얘기였다.


우리 집안 어른들은 '가문에서 여자들이 너무 득세했으니, 남자들이 분발해서 눌러야돼' 라고 했다.

어린 나였지만, '왜 남자로서 여자를 이겨야하지?' 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우리 성씨 여자들이 성공했다면 우리 가문의 영광 아닌가?' 하고 의문을 가졌다.


역사를 아무리 이분법으로 남자 vs. 여자로 나눠 살펴봐도, 사과하고 합력할 일밖에 보이지 않는데.

나는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협동할 수 있을때 협동하여, 좋은 가정을 이루고 싶다고 생각했다.


잘못한 것에 대해 '미안하다' 고 진심으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찌질한 사람은 없다.

나는 사랑하는 그녀와 같이 살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과한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세상 이치라는 것이, 100번 좋은 일을 해도, 1번 나쁜 일을 하면 그르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서로 좋아하는 것이 비슷한 것도 중요하지만, 싫어하는 것이 같아야한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을 더 잘하되, 그녀가 싫어하는 것도 잘 알고 피하려고 한다.


그녀는 나의 진심을 알아준다. 나의 작은 변화를 '사소한 결심' 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그녀와 좋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마음을 바꾼 것을 알아준다.

술을 딱 한 잔 정도만 기울여본다. 잠옷을 입기 시작한다. 바디로션을 발라본다.

그리고 그녀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본다.


그녀의 원래 이상형이었던 '진보와 보수를 구분 못 하는 사람' 은 될 수 없지만,

이젠 살면서 그딴 거 신경 안 쓰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녀도 나만큼이나 변했다.

그녀는 '밥 뭐 먹었어' 라는 안부인사에 짜증을 내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로맨스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일터에서 일해온 사람이었다.

'사랑해' 라는 말에 인색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를 향한 사랑의 말로 가득찬 사람과, 마음 가는대로 사랑하고 있다.


그녀는 출장을 가든 일정을 소화하든 1부터 100까지 디테일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이었다.

단체로 밥을 먹으러 가면 누가 어디에 앉아야하고, 어느 자리에서 어떤 음식을 먹어야하는지,

몇번 출구로 들어가서 몇번 출구로 나와야하는지 동선을 짜야하는 사람이었다.

누구보다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사람이었다.

타인을 챙겨주고 신경써주느라, 그녀를 챙겨주고 아껴주고 신경써주는 사람이 부족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제 나를 믿어주고 의지하고 있다.

내 손을 잡고 따라와서, 곁에 붙어 밥을 먹고, 운전대에 손을 못 대게 하는 사람과 사랑하고 있다.

그녀는 일 중독이라, '집에서 놀고 쇼핑이나 다니라' 는 말을 들으며 거절해야하는 삶을 살고 있다.

갓난아이처럼 나를 의지하고 내 품에 폭 안겨, 영원히 사랑받고 있다.


그녀와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잘 이해하게 되고, 사랑이 깊어진 이후로,

나는 그녀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관용의 아이콘인 그녀가 뭔가를 '싫어' 할 때는 언제나 굉장히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그녀가 알려준 바대로, 내 자신을 조금씩 개선해나간다.

그녀는 언제나 나를 완벽한 존재라고 불러주며,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하지만,

그녀를 닮아가는 일은 나의 천성이며, 나의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약속과 고백들을 그녀가 철썩같이 믿어주기 때문에, 그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


그녀는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다 믿어주는 사람은 아니다.

평생 몸 담은 업계의 특성 상, 나보다 10배, 아니 100배는 많은 인간 군상을 마주쳐 왔고,

거짓말하는 사람들, 속고 속이는 사람들, 정치질하는 사람들, 사실과 다른 프레임을 씌우는 사람들,

시커먼 욕망의 덩어리들의 집합체가 끓어오르는 곳에서, 자신의 Integrity 를 지켜온 사람이다.


그 덩어리들이 한 지점으로 빨려들어가는 모습을 본다.

그게 뭔지도 알 수 없고, 언제 생겼다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이리저리 쓸려가다 보면, 누군가는 감옥에 가있기도 하고, 말할 수 없이 뻔뻔해지기도 하고,

괴물처럼 변해있기도 하고, 몸과 마음이 많이 소모되기도 한다.


그 난리통에서, 그녀는 휩쓸려 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고, 나름대로 예측하려고도 해보고,

간혹은 힘을 빼고 휩쓸려 가보기도 하고, 그런 복잡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일상을 시끄럽게 보냈다.


그렇지만 그녀는 상사, 동료, 은사, 그 외 그녀가 모셔야할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하는 삶이 진짜 값진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었다.


이런 삶을 살아왔으니, 그녀는 명확한 증명을 보기 전엔 행동 없는 말을 쉽게 믿지 않을 사람이다.

책을 많이 읽고, 만사에 있어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의심을 갖춘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처음부터 나와 결혼하겠다고 말해줬다.

나를 그 누구보다 믿어줬다.


그녀는 나에게 그 누구와도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다.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그 누구보다 믿음직스럽고, 그 누구보다 나의 삶을 맡기고 싶은 사람이다.

타인에 대한 헌신과 충성으로 유난스럽다 못해 호들갑 떨며 살아온 그녀와 나.

평생을 물먹은 휴지처럼 서로에게 착 달라붙어, 유난스럽지 않은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다.


나는 아직도 그녀와 같은 성격의 사람이, 나와 결혼하기로 마음 먹어주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쌓아온 자신의 삶을 나에게 맡겨준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말로 형용할 수 없이 행복하다.


나는 세상이 날 버렸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세상은 날 가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고 눈물이 날 때도, 나 자신만을 욕하고, 다시 일어나서 싸웠다.

이제는 그녀가 나를 가졌고, 내가 그녀를 가졌다. 손잡고 싸워가려 한다. 두 쌍의 손발로 무쌍을.


오늘도 그녀와 살 날을 차곡차곡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런 준비가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일이다.

그 어떤 놀이보다 재미있는 일이다. 깃털보다도 가벼운 짐이다.


그녀와 평생 살아야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가족들에게 사랑받는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교양이 넘치는 대화로 나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휴일에도 아침부터 위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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