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그녀는 이미 나의 삶이 되었고, 나의 버릇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그녀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통화하지 않고 좀 더 쉬게 해주려 했다.
그래도 그녀는 애써 나에게 목소리를 들려준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사랑받는 사람이다.
그녀와 함께 살 날이 꽤나 가까워왔다. 내가 봐도 흉물스러운 물건들은 슬슬 처분하고 있다.
그녀는 내가 '정성들여 모은 건데, 아깝겠다' 라고 말해주며 신경써주고 걱정해준다.
나는 전혀 아까운 마음이 없다.
나는 오히려 마음 같아서는 가진 것을 다 버리고, 그녀와 완전히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고 싶다.
과거의 것들은 무엇이든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녀와의 미래로 어서 가고 싶다.
그리고 그녀로만 가득 채우고 싶다.
열렬한 사랑에 빠진 남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공통점이 있다.
상대방을 본 순간 '이 사람은 결혼해야 될 사람이다.' 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나도 연애를 처음 해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녀를 처음 봤을 때도 홀딱 반했고,
다시 만났을 때도 'She's the One.' 이라는 걸 곧바로 알았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라는 말처럼, 남의 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의 마음은 잘 알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고, 이렇게 사랑해본 적이 없고, 이렇게 사랑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나의 첫사랑이 되어버렸다.
마지막 사랑이 되어줌으로써.
사랑에 빠진 자에게는 같은 노래도, 같은 책도, 같은 시상도 다르게 다가온다.
나는 예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책과 시를 열심히 찾아보곤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정작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앞으로 읽을 리스트' 만 만들어놓고 실제로 읽지는 못했다.
문학소녀인 그녀를 만나서, 나는 문학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최근에는 내 리스트에 있던 알베르 카뮈의 '라 페스트' (역병) 도 그녀와 함께 시작할 수 있었다.
그녀와 커피숍에서 곁에 앉아 1초도 오디오가 비는 부분이 없이 대화하는 것만큼이나,
한 마디 말도 없이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책을 읽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었다.
내가 워낙 사랑에 빠져있고 내 눈에 분홍색 필터가 껴있어서, 그런 종류의 시상이 많이 떠오른다.
브런치에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떠오른다.
예전에 우연히 읽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시인인데, 다시 한 번 그의 시를 찾아본다.
"스무 개의 사랑의 시 6, "너 그대로의 너를 기억해"" 가 눈에 들어온다.
파블로 네루다가 원래 스페인어로 쓴 시를, 영어로 번역된 버전을 찾아, 그것을 또 내가 번역해본다.
난 지난 가을 너 그대로의 너를 기억해
너는 회색 베레모였고 고요 속의 심장이었어
네 두 눈에서는 황혼녘의 불꽃들이 싸우고 있었지
그리고 나뭇잎들은 네 영혼의 물결 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어
너는 메꽃 덩굴처럼 내 품에 꼭 매달려 있었지
나뭇잎들은 네 느릿하고 평안한 목소리를 끌어 모으고 있었어
나의 타는 듯한 목마름은 경외의 화롯불 속에서 끓어오르고 있었지
푸른 빛 달콤한 히아신스가 내 영혼 위에서 몸을 뒤채이고 있었어
네 두 눈이 움직이는 것을 느껴, 그리고 가을은 저 멀리 있었어
회색 베레모여, 새 같은 음성이여, 그리고 나의 깊은 갈망이 들어서곤 했고,
발갛게 뜬 잉걸불처럼 나의 입맞춤들이 내려앉고는 하던, 내 집과도 같은 심장이여
뱃머리에서 보는 하늘, 언덕에서 보는 들판
너의 추억은 빛으로, 연기로, 평온한 연못으로 만들어졌어!
네 눈동자 저 너머에서는 황혼이 불타고 있었지
가을의 마른 낙엽들은 네 영혼을 맴돌고 있었어
이 시의 한 줄 한 줄이 그녀 이야기만 같다.
가을이 너무 잘 어울리는 그녀가 더 보고 싶어진다.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 나무를 본다. 신기하게도 나뭇잎이 보인다. 그리고 그녀가 보인다.
그녀는 햇살이 좋은, 아주 덥지 않은 여름에, 내가 기다리는 커피숍으로 걸어오던 길에,
그녀에게 흘러오던 꽃나무 향기가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게 라일락이었는지, 무슨 나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는 가끔 그 길이 생각나곤 했단다.
날씨가 좋아서였을지, 조금은 설레서였을지.
확실한 건 나는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설레고 있었다.
이미 그 때부터 알고 있었다. She's the One.
나는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굳이 서서 기다리는 것을 좋아한다.
너무 설레서 앉아있을 수가 없다. 어느새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어떤 시를 읽어도 그녀가 생각난다.
내 일상의 모든 것은 그녀로 귀결된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에.
오늘의 그녀는 컨디션이 좋지 않은 모습을 안아주고 싶었고,
그러면서도 내게 목소리를 들려주는 모습을 본받고 싶었고,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어울리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그녀는 안아주고 싶고, 본받고 싶은, 아름다운 사람이다.